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로그인 회원가입
2017.9.20 수
> 뉴스 > 미디어 > 미디어비평
     
‘이유 있는’ 장르물 전성시대
[미디어 비평] 안방극장을 점령한 '장르물'이 사랑받는 이유
2017년 04월 17일 (월) 13:50:44 박수지 기자 wbdjffl514@naver.com

봄은 로맨스의 계절이다. 따뜻한 날씨가 선남선녀가 사랑을 나누기에 안성맞춤이다. 자연의 순리와 달리 안방극장은 ‘범죄’와 ‘싸이코패스’물이 점령했다.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 KBS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 tvN 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 OCN 주말 드라마 <터널>. 월화수목금토일 ‘장르물’이 방영되고 있다. ‘장르물은 망한다’던 말은 쏙 들어가고 ‘장르물의 전성시대’가 왔다. 방송사에게도 시청자에게도 외면 받던 장르물이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 OCN <터널>은 30년 전 연쇄 살인 사건을 해결해가는 타임슬립수사극이다. ⓒ OCN <터널> 갈무리

‘월화수목금토일’ 안방 점령한 장르물

시작은 <시그널>이었다. 과거와 현재의 형사들이 20년의 시공간을 무전기로 연결하며 장기 미제 사건을 해결해 가는 <시그널>은 방송 16회 내내 시청률 1위였다.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에서, 그것도 외면 받던 장르물이 평균 시청률 13.4%, 최고 시청률 15%를 기록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시그널>대본은 김은희 작가가 썼다. 그의 전작들 <유령>, <싸인>, <쓰리데이즈>가 마니아층에게 사랑 받았지만 시청률이 저조해 ‘역시나 장르물은 안된다’는 편견을 깨지 못했다. 제작비는 많이 드는데 간접광고(PPL)는 안 되고, 해외 판매도 쉽지 않았다. 내용이 어둡고, 빠른 전개와 전문적인 이야기들은 이해가 어려워 진입 장벽으로 작용했다. 돈이 안 되고 시청률도 낮은 ‘장르물’은 방송사에서 항상 찬밥 신세였다. <시그널>이 SBS에서 거부당하고 tvN으로 옮겨간 이유도 ‘장르물’이었기 때문이다.

지상파가 장르물을 외면하는 동안 케이블이 장르물의 명가 자리를 차지했다. 영화 전문 채널인 OCN은 2009년 <조선추리활극 정약용>을 시작으로 <신의 퀴즈>, <뱀파이어검사>시리즈, <나쁜 녀석들>, <38사기동대>를 연속 방영하며 장르물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3월 종영한 <보이스>는 잔인한 살인마를 쫓는 경찰들의 이야기다. 싸이코패스 기질을 가진 재벌 ‘모태구’가 벌이는 극악무도한 범죄와 비리는 시청자들을 경악케 하며 OCN 역대 최고 시청률 6.4%를 기록했다. 후속작 <터널>은 30년 전 연쇄 살인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범죄 수사물로, 4%대의 시청률을 보이며 <보이스>에 버금가는 사랑을 받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나쁜 녀석들> 시즌2와 웹툰 <세상 밖으로>가 원작인 스릴러물 <구해줘>가 이어진다.

   
▲ OCN <보이스>는 112신고센터 골든타임팀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범죄수사물이다. ⓒ OCN

케이블 채널에서 시작된 장르물의 인기는 지상파로 옮겨갔다. <시그널>을 놓쳤던 SBS가 먼저 장르물 <피고인>을 편성했다. 재벌가 후계자이자 친형을 포함해 8명을 죽인 ‘희대의 악마’때문에 사형수가 된 검사가 누명을 벗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피고인>은 8회 만에 시청률 20%를 넘더니 매주 월화드라마 1위를 놓치지 않으며 28.3%라는 최고 시청률까지 기록했다. SBS는 <피고인> 후속작도 장르물인 <귓속말>을 편성했다. MBC가 편성한 <미씽나인>도 무인도에 불시착한 9명의 실종자 이야기를 다룬 미스테리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시그널> 신드롬을 일으킨 tvN에서는 조승우와 배두나 주연의 <비밀의 숲>이 방영을 앞두고 있고, SBS는 이종석과 수지 주연의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준비 중이다. 당분간 장르물의 인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구마 같은 세태에 ‘사이다’가 필요한 시청자들

<시그널>에서 이재한 형사가 20년 뒤를 사는 박해영 형사에게 묻는다. “거기도 그럽니까? 돈 있고 빽 있으면 무슨 개망나니 짓해도 잘 먹고 잘 살아요?”, “그래도 20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 그죠?” 박해영 형사가 답한다. “예, 달라요. 그때하곤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만들면 됩니다.” 생선 배달을 하며 딸과 단 둘이 살던 한 남자는 검사장 아들을 대신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자신의 삶과 딸마저 잃게 된다. 마약에 취해 여성을 성폭행하고 그걸 덮으려다 절도와 살인까지 저지른 검사장의 아들은 변호사가 되어 잘 먹고 잘 산다. 박해영 형사는 20년 전의 이재한 형사에게 진범을 잡아 죄 없는 사람이 희생당하고 죄를 지은 사람은 잘 사는 상황을 바꿔 달라고 부탁한다. 무전기를 통해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는 권력과 금력을 넘어서 법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간절한 메시지를 담았다. 에피소드는 실제 있었던 ‘대도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법 위에 서서 횡포를 부리는 상황이 20년 이 지나도 변한 게 없는 씁쓸한 현실에 공감한 시청자들은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 tvN <시그널>은 과거 현재의 형사들이 낡은 무전기로 연결돼 장기 미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며 법정의란 메시지를 던진다. 사진은 이재한 형사와 박해영 형사가 무전하는 장면. ⓒ tvN <시그널> 갈무리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진 국정농단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분노도 ‘장르물’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드라마 속 악인들이 권력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이 현실과 동시대성을 획득하며 시청자와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시청자는 드라마를 보며 국민보다 자신과 측근들을 먼저 생각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대통령의 권력을 이용해 뇌물을 받고 딸을 부정입학 시킨 최순실, 권력자들에게 뇌물을 주며 이익을 챙기려했던 대기업들을 떠올렸다. 지난 3월 방송을 시작한 <귓속말>은 ‘법비(法匪)’를 정조준 해 법 위에 군림하며 권력을 농단한 법조인 출신 청와대인사들과 법조계의 비리를 다룬다. 이 드라마는 최순실 사태로 드러난 현실의 적폐를 그대로 담아낸다. “기다려라, 가만히 있어라,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아직도 하늘에서 진실이 밝혀지길 기다리고 있겠죠”, “국가 기밀도 서류로 들고 나가는 세상입니다” 등 현실을 꼬집은 대사들은 화제가 됐다. <귓속말>의 이명우 PD는 “국민들의 답답한 심정을 해소해줄 수 있는 진짜 같은 드라마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실제 사건들을 드라마에 반영했다”고 밝혔다.

장르물 주인공은 ‘악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들은 권력과 돈을 이용해 잘도 빠져나간다. 시청자는 현실과 너무도 닮은 드라마 속 ‘고구마’ 같은 답답한 상황에 공감하며 ‘사이다’ 같은 시원한 결말을 기대한다. 돈 있고 빽 있는 자도 죄를 지으면 법 앞에 평등하게 벌을 받는 정의로운 사회가 오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바란다. 기대에 부응해 권력과 부당한 지시에 굴복하지 않고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 검사들의 활약에 짜릿한 성취감을 느끼고, 악인이 처참한 모습으로 잡혀 들어가는 ‘권선징악’의 결말에 대리만족을 느낀다. 

공감할 영웅이 필요한 시대 

장르물이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는 ‘공감하는’ 주인공들 때문이다. 감성적인 주인공들이 흘리는 눈물에 시청자가 공감하며 장르물에 더 깊이 빠져든다. <시그널>의 이재한 형사는 피해자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움과 절박함에 눈물을 흘리고 거대 권력 앞에서 분노한다. <피고인>의 박정우 검사는 자신의 누명을 벗기는 과정에서 다른 검사 동료들과 매수된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며 좌절하고, 공권력이 지키지 못하는 딸을 지키기 위해 죽을힘을 다한다. <보이스>의 112 신고센터 골든타임팀원들은 피해자들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따뜻한 목소리로 신고자들을 안정시키고 냉철한 판단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주인공들은 권력에 짓밟힌 서러운 서민들의 삶과 죄 없이 희생당한 피해자들의 사연에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고, 법보다 권력과 돈이 정의로운 세태에 분노한다. 다시는 억울하게 우는 사람이 없도록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보려 노력하지만, 권력에 대항할수록 주인공은 물론 그 가족들까지 생명을 위협 받는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느라 몸부림친다. 눈물과 사랑, 분노와 좌절 등 감성적인 요소가 가미된 ‘한국형 장르물’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 SBS <피고인>의 박정우 검사는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진범 차민호를 체포하며 울분을 토해낸다. ⓒ SBS <피고인> 갈무리

장르물은 악인이 처벌을 받는 사이다 같은 결말을 보여주지만, 희생된 피해자들이 있기에 ‘해피엔딩’이 아니다. ‘허구에 지나지 않는 드라마’일 뿐이지만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에 허구로만 받아들일 수도 없다. tvN10 어워즈에서 <시그널>로 연기 대상을 수상한 조진웅은 “시그널... 무겁고, 아프고, 행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장르물이 사랑받는 이유는 무겁고 아프지만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권력 아래 짓밟히고 돈이 없어 죄인이 되는 우리 이야기를 보며 주인공이 비리로 얼룩진 사회를 정의롭게 바로잡아주길 바란다. 주인공이 악인을 물리치는 결말에서는 드라마를 넘어 현실에서도 정의가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갖는다. ‘고구마’같은 답답한 현실에서 속 시원한 ‘사이다’같은 결말을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매일 밤 장르물을 찾게 만들고 있다.


편집 : 황두현 기자

[박수지 기자]
단비뉴스 편집부, 환경부, 미디어부, TV뉴스부, 시사현안부 박수지입니다.
말과 언어는 세상을 바꿔 놓을 수 있다.
     관련기사
· 테니스 이덕희, 라켓으로 소리치다
· 답답한 일상을 넘어 ‘자유’를 찾는 법
· 페미니즘이 다시 필요한 이유
· 2016 단비가 적신 세상 ①
· 2016 단비가 적신 세상 ②
박수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단비뉴스(http://www.danbi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의견나누기(0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Follow danbi_news on Twitter

단비뉴스소개기사제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7136)충청북도 제천시 세명로 65(신월동 579)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413호|Tel 043)649-1557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문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환
Copyright 2009 단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nbi@danb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