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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재생산과 재난의 교훈
[역사인문산책] 세월호
2017년 04월 16일 (일) 16:35:57 이민호 기자 wordianlee@naver.com
   
▲ 이민호 기자

강원도 화천군 북한강 ‘평화의 댐’은 북한의 수공(水攻)을 막자는 전두환 정권의 슬로건 아래 1989년 모습을 드러냈다. 86년 10월 북한이 북한강 상류에 짓고 있는 ‘금강산댐’을 불시에 무너뜨리면 휴전선 이남과 서울이 물바다가 된다고 발표한 지 3년 만이다. 방송은 연일 63빌딩이 물에 잠긴 그림을 보여줬다. 정부의 주장을 믿은 국민이 푼돈을 모았다. 기업들은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10억 원까지 걷었다. 그렇게 모은 돈이 600억 원이 넘었다. 훗날 ‘평화의 댐 사건’은 정부의 대국민 거짓말로 밝혀졌다. 정부는 금강산댐의 규모를 크게 부풀렸다. 200억 톤이라던 저수량은 최대 59억 톤이었고, 나중에 26억 톤으로 줄었다. 북한이 만약 금강산 댐을 폭파하더라도 한강 하류 저지대 일부가 침수 피해를 볼 정도로 축소됐다. 왜 정부는 무리한 거짓말로 국민을 동원했을까? 1988년 올림픽을 앞두었던 시점에 국민을 일치, 단결시킬 어떤 수단이 필요했으리라. 미얀마 아웅산 테러 사건과 KAL기 폭파 사건까지 겹치면서, 북한의 위협이라는 프레임이 잘 작동할 수 있는 기반도 갖춰졌다. 평화의 댐은 ‘정권 안보’수단이었던 셈이다. 

외부 위협을 조성해 대중의 공포에 불을 지폈던 전두환 정권은 민주화 세력에게 ‘용공’ 꼬리표를 붙였다. 86년 10월 건국대에서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가담한 대학생도 ‘용공좌익’ 세력이라 불렸다. 정권에 반대하면 공산주의자, ‘빨갱이’로 규정하는, 그때 그 수법은 지금도 이어진다. 언어의 프레임에 한 번 갇히면 그 인식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면 코끼리가 자꾸 생각나는 것처럼 말이다. 정작 재난 앞에서, 국민이 충격에 휩싸였을 때 정부는 국민의 공포를 걷어내지 못했다. 평소 굳건하게 국민을 지키겠다고 결의를 다지던 정부는 위기 때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실시간 중계됐던 세월호 사건이 그랬고, 갑작스럽게 침몰됐던 천안함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메르스 사태 때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지 못해 우왕좌왕하며 책임을 큰 병원들에 돌리지 않았던가. 정부는 재난이 있을 때마다 적절한 대응과 대책을 마련한다지만, 외부의 비판은 수용하지 않았다.

   
2016년 8월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소속 가족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위원들이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보장을 위한 틀별법 개정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 NocutV 갈무리

재난 수습이 ‘정권 안보’를 흔들 때는 여지없이 프레임을 동원하고, 진상조사도 흔들었다. 2015년 1월 당시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세월호 특조위 설립준비단의 직제와 예산을 두고 “세금 도둑적 작태를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며 매를 들었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직제와 예산안을 두고 말이다. 여당 측 조사위원들도 잇달아 비판 성명을 냈다. 정부는 특조위 시행령을 수정해 직제를 줄이고, 공무원을 핵심 자리에 앉혀 야당 측 특조위원과 유가족들의 반발을 샀다. 특조위의 권한도 정부가 조사한 세월호 결과를 검증하는 수준으로 줄였다. 정치적 중립과 객관성이 담보되어야 할 세월호 특별법과 특조위는 시작부터 흔들렸고, 해체되는 순간까지 정부와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특조위의 공식적인 활동 기간은 2015년 9월에서 이듬해 6월 30일까지, 10개월가량에 그쳤다. 특조위 조사 위원들과 유가족은 특조위 활동 기한 연장과 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왔다. 유가족과 특조위원장은 단식의 돗자리를 폈다.

3년 만에 세월호가 물 밖으로 나왔다. 공교롭게 대통령 탄핵 시기와 겹쳤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새로운 장이 열린다. 새로 구성되는 선체조사위원회가 특조위를 대신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역사적 책무를 떠안는다. 진상규명은 정권을 흔드는 게 아니라 공포를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함이다. 세월호는 304명이 죽고, 훨씬 더 많은 수의 유가족과 관련자들이 고통받은 사건이다. 실종자 수습과 진상규명이야말로 희생자와 유족을 위해 정부와 시민사회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위로가 아닐까.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송승현 기자

[이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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