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이별과 이별할 때

▲ 고하늘 PD

자살이었다. 19살 소녀, 홍수연 양은 지난 1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유서도 없었다. 그녀의 죽음을 가족도 친구도 학교 선생님도 믿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죽기 직전까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한다. 당시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지만 콜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했다. 그녀가 다니던 특성화고등학교 현장실습의 일환이었다. 활발했던 그녀는 과도한 업무와 불친절한 고객을 응대하느라 퇴근도 제때 못하고 힘든 나날을 보냈다.

마지막 통화였다. 현장실습을 나간 김동준 군은 엄마와 통화를 마치고 출근 대신 죽음을 선택했다. 그에게는 죽음보다 출근이 더 두려웠던 것이다. 그는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사회에 나가고 싶어 마이스터고등학교를 선택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던 분야가 아닌 공장 생산직으로 현장실습을 나갔다. 그는 현장실습을 하는 내내 고된 노동과 나이 많은 직원들의 괴롭힘과 폭행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기록적인 폭설이었다. 3일 내내 내린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공장 지붕이 무너졌다. 지붕 밑에는 고등학교 졸업을 이틀 앞둔 김대환 군이 있었다. 그는 반복되는 야근과 고된 노동을 악착같이 버텼다. 함께 실습 온 친구들은 버티지 못하고 학교로 돌아갔지만 그는 그만둘 수 없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효도라고 생각했던 일이 가장 큰 불효가 됐다.

이명박 정권 당시 엘리트기술인을 양성한다는 목표로 특성화고등학교와 마이스터고등학교를 활성화하며 직업교육을 강화했다. 그러나 학교는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취업률을 올리는 데 혈안이 되었다. 이들에게 학생은 취업률을 올리는 도구에 불과했다. 학교는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들이 도움을 요청해도 참고 버티라고 했다. 말을 잘 듣던 착한 학생들이 참고 버티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현장실습을 버티던 학생들에게 우리는 알려줬어야 했다. ‘참고 버텨라’가 아니라 ‘참지 말고 나와라’라고. 학생들이 무조건 참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참고 무엇을 참지 말아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줘야 한다. ‘세상은 다 그런 거야’라는 편협한 시선 대신 세상이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우리가 먼저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 잔디밭에 앉아 꿈을 꾸는 학생들. ⓒ 고하늘

래퍼를 꿈꾸는 고등학생들이 자신의 실력을 뽐내는 ‘고등래퍼’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고등학생 최하민 군이 부른 <Come For you>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세상이 우릴 비추니까 그래서 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요.” 현장실습을 나갔던 학생들도 하고 싶은 꿈,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이제 막 피어나는 한 떨기 꽃이 힘없이 지지 않게 우리 손으로 지켜주자. 꽃이 활짝 피어나는 봄날, 온천지에 봄꽃 향기 가득하도록.


편집 : 민수아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