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세월호

   
▲ 이창우 기자

세월호가 떠올랐다. 그래도 그날처럼 망연자실하다. 침몰한 지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인양했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참사다. 이런 정부에게 구조의 골든타임을 기대했던 건 언어도단이었는지도 모른다. 대통령 탄핵 소식과 거의 동시에 인양된 배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위화감을 느꼈다. 우리가 의심하는 것처럼 단 며칠 만에 그렇게 쉽게 떠오를 배는 아니었다. 그러나 인양업체 선정 과정에서 예산을 절감하려는 참담한 정부가 애끓는 시간을 바닷속에 방기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 동안 미수습자들은 가족 품에 안기지 못한 채, 캄캄한 세월 속에 우두커니 잠겼다.

▲ 3년만에 비로소 물 위로 떠오른 세월호. ⓒ JTBC <뉴스룸> 화면 갈무리

“언제까지 당해야 하나”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다음 날, 동아일보의 1면 머리글이다. 성수대교 붕괴를 겪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민들의 심정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저 물음에 답할 언어가 없다. 대형 참사는 반복됐고 희생자들은 이유 없이 생을 잃었다. 손 놓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삼풍참사 이후 실시된 전국건축물안전성 평가에서 안전한 건축물은 불과 전체의 2%였고, 대대적인 건축물 재정비가 시행됐다.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각 노선의 열차, 역사의 가연성 소재는 모두 내연재로 교체되고 정기적 방재훈련도 치른다. 운 좋게 사고현장에 없던 사람들은 참사의 교훈으로 조금 더 안전한 삶을 살아간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다시 달라진 것 없는 현실을 깨닫는다.

왜 끊임없이 참사는 반복되는가? 겉으로 드러나는 이유들은 단순하다. 이익의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회사의 이기심,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경제논리만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정부의 책임은 여지껏 반복되었던 대형 참사에서도 항상 지적되던 문제다. 이번에는 국민의 구조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마저 방기했던 정부의 무능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뿐이다. 하지만 참사의 책임이 과연 그들만의 몫인지 생각해 볼 여지가 남는다. 만약 우리 중 누군가가 세월호에 승선한 직원이었다면 인사 불이익을 감수하고 회사의 지시를 거부할 수 있었을지 쉽게 답하기 어렵다. 당위(Sollen)의 차원에서 정답이 나와 있지만 정작 입안에서 맴돈다. 존재(Sein)의 현실 때문이다. 우리들은 침묵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설계된 사회에서 유령처럼 존재를 이어왔다.

세월호 이전에도, 이후에도 참사는 매달, 매주, 매일 일어났다. 끝내 합격에 성공하지 못한 장수생의 자살, 아무도 돌보지 않는 외로운 노인의 죽음, 막걸리 공장에서 감자 하나로 하루를 버티며 노역에 시달리는 사람들, 시간에 쫓기며 에어컨을 수리하다 추락사하고 마는 A/S 기사들, 따뜻한 밥을 먹기 위해 찬 바닥에서 단식하며 죽어가는 해고노동자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죽음의 무게를 수량적으로 받아들인다. 파편화된 참사에 대한 시선은 쉽게 거두어진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가 그 중심에 있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세월호 참사와 그 희생자들은 비겁하고 심드렁한 우리의 모습에 경종을 울렸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만큼이나 중요한 일은 인식조차 못 하는 파편화된 참사에 대한 관심이다. 거대한 사회모순 속에 침몰해가는 우리네 인생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다. 파편화된 죽음이 사라진 사회에서,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일어날 리 만무하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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