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상징

▲ 박진홍 기자

한 여인이 칼과 저울을 들고 눈을 천으로 동여맨 채 서 있다. 섬뜩하지만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여인의 이름은 유스티티아(Justitia). 여러 나라에서 정의(Justice)의 상징으로 통하는 동상이다. 이름만큼 의미도 심오하다. 칼은 엄격한 법 집행, 저울은 공정한 법리 논쟁, 가린 눈은 공평무사. 세속적 관계에서 벗어나 양심의 눈으로 판단하라는 의미가 담겼다. 사법부 구성원들이 법을 다루면서 새겨야 할 금과옥조(金科玉條)다.

유스티티아의 온전한 위상은 사법부의 완전한 독립에서 가능하다. 법원이나 법관이 정치‧경제 권력 같은 외부 입김 하에 들어가는 순간 정의는 사라진다. 가인(街人) 김병로는 이를 너무도 잘 알았다. 그가 대법원장으로 있던 시절, 판사들은 사무실에서 추위에 떨며 언 잉크를 녹여 판결문을 썼다. 정부에서 내려온 예산을 모조리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대통령 이승만의 지속적인 사법부 간섭 시도에 굴하지 않고 “이의 있으면 항소하라”며 일갈한 힘은 여기서 나왔다.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한 국보법·뇌물 사건은 줄줄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 정의의 여신상이 대법정으로 가는 길목을 내려다보고 있다. ⓒ 대법원 홈페이지

가인이 걸은 길이 계속 이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영섭 전 대법원장은 전두환 정권 초기 퇴임하면서 자신의 사법부 재직 시절에 대해 “회한과 오욕으로 얼룩졌다”고 고개 숙였다. 그의 말대로, 군사정권 하에서 사법부(司法府)는 행정부의 일개 부처(司法部)로 전락했다. 법관 임면권을 쥔 권력에 짓눌려 인혁당 사건 등 중정, 안기부가 각본을 쓴 수많은 ‘사법 살인’이 재판정에서 벌어졌다. 시위에 나섰다가 피고인이 된 학생의 “민주화를 위해 무엇을 하셨나?”는 꾸짖음에 아무 답변도 하지 못했던 법관들의 재판정에는 유스티티아의 그림자 한 조각 드리우지 않았다.

서초동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뜨고 앉아있다. 정의를 올곧이 바라보는 눈이란다. 그래서 그랬나. 지난날 판사들은 두 눈 부릅뜨고 세속적 관계에 너무도 많이 물들었고, 나아가 양심을 저버린 채 권력에 앞장섰다. 정권이 바뀌면서 권력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으로 정의를 되찾았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피라미드식 승진구조로 법관이 상부의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실은 여전하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문제를 자각한 법관들의 사법 개혁 움직임을 저지하려던 법원행정처 차장이 직무에서 배제됐다. 여기서 그칠 게 아니라, 인사관리실을 두고 사사건건 법관들을 간섭해온 후진적 법원행정처 체계부터 손봐야 한다. 윗사람들의 근무평정에 눈치를 보지 않게 될 때, 법관들은 완전한 독립을 찾고 정의의 상징으로 거듭난다. 그렇게 해야 우리 대법원의 유스티티아도 눈을 감을 수 있지 않을까.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고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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