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우리는 왜 불평등을 감수해야만 하는가

▲이연주PD

와아- 하는 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메우고, 하늘에 만국기가 펄럭인다. 운동장에는 하얀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자신의 몸보다 큰 공을 굴리고 있고, 운동장 한쪽 나무그늘 아래엔 아이들의 가족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있다. 가장 큰 나무 아래, 엄마들이 도시락을 펼쳐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돗자리 위 도시락은 정갈하고 고급스러웠고, 그 옆 와인병과 치즈 조각들이 화려함을 더했다.

“참, 애들 과외 선생 좀 추천해줘요. 100만 원짜리 선생 썼더니 민규 성적이 영 말이 아니야. 이번에 3등 밖에 못했어.” 체육 대회에 어울리지 않게 고급 원피스를 입은 민규 엄마가 말을 꺼낸다. “윤아네 과외 선생 좋대. 이번에 지수도 그 선생한테 시키려고. 150이면 된다던데?” 카나페를 먹으며 이야기하는 지수 엄마. 엄마들은 와인 잔을 부딪치고 와인을 홀짝 마신다. 잔을 든 엄마들의 손에는 보석이 박힌 반지와 반짝반짝 빛나는 팔찌가 가득하다. 엄마들의 주위에 앉은 다른 엄마들은 그들을 보며 부러움 반, 시기 반의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때, 엄마들의 앞으로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와 다리를 절뚝거리는 작은 남자아이가 지나간다. 남자아이는 입을 헤벌레 벌리고 실실 웃는다. 그리고 세상이 신기한 듯 이곳저곳 둘러보다 엄마들이 모여 앉아 있는 돗자리를 발견한다. 돗자리를 향해 달려와, 돗자리 위에 펼쳐진 음식들을 허겁지겁 주워 먹는 아이. “어머!!” “꺄악!” 엄마들은 기겁하며 아이에게서 떨어지려 한다. 아이의 할머니가 뒤쫓아와 아이를 도시락에서 떼어낸다. 할머니는 아이의 팔을 잡고 엄마들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미안합니데이. 석진이가 마이 아파서, 오늘 급식도 안 나온다캐서 빵만 멕였더니.” 아이는 할머니의 팔에 붙잡혀 버둥거린다. “아휴, 됐어요!! 얼른 애 데리고 가세요 할머니!” 민규 엄마가 야박스럽게 말한다. “죄송합니데이, 죄송합니데이.” 연신 사과하며 아이를 데려가는 할머니. 엄마들은 어질러진 돗자리를 정리하며 화를 낸다. “아니, 애가 아프면 잘 관리를 해야지. 쟤가 그 특수반 애죠?” “맞아요. 아니, 통합교육이니 뭐니 하면서, 우리 지수랑 같이 수업 듣는다던데, 수업시간에도 난리가 아니래요.” “특수반 애는 특수반에서 공부해야지. 우리 민규 공부 방해되는 거 아니야? 왜 우리 반에 그런 애를 넣었대.”

▲ 우리의 욕심으로 아이들의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 Pixabay


“지금부터 6학년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6학년 학생들은 출발선으로 모여주세요.” 안내방송이 울리고, 아이들이 출발선 앞으로 모인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있던 엄마들은 하나 둘 일어나 운동장으로 나간다. “지수야! 여기 엄마 봐봐” “윤아야 1등 해!” 엄마들의 응원이 이어진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출발선에서 튀어나가는 아이들. 결승선에 먼저 들어온 아이는 환호를 지르고, 꼴지로 들어온 아이는 눈물을 터뜨린다. “자, 다음” 출발선에 민규, 윤아, 지수 그리고 석진이 선다. 그것을 본 엄마들. “어머, 쟤도 달리기를 해요?” “그냥 뛰는데 의미가 있나 보지.” 퉁명스레 말하는 민규엄마.

“준비”

탕- 하는 소리가 들리고, 와아- 하는 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메운다. 총소리가 들린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결승선에 들어온 사람이 없다. 대신 석진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석진아, 뛰어! 저기 보고 뛰면 돼!” 하는 민규의 목소리, “야, 얼른 와!” 하며 석진의 옆에서 같이 뛰어 주는 지수, “조심, 조심” 하며 석진을 부축해주는 윤아. 석진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가득하다.

함께 발맞춰 걸음을 옮기는 아이들. 여덟 개의 발이 결승선을 통과하고, 뜨거운 환호가 운동장을 가득 메운다.


편집 : 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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