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원반 던지는 남자'와 '걸어가는 사람', 네 개의 단상 ③

‘인간’이란 무엇인가. 기술문명이 발달한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종종 부딪히는 근원적 질문이다. <단비뉴스>의 PD들이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과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을 보고 ‘인간’에 대한 단상을 적었다. 각기 다른 PD들의 재기 발랄한 글을 4편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 미론 <원반 던지는 사람>(왼), 자코메티 <걸어가는 사람>(오). ⓒ flickr

① 우리는 살아있다 (이연주 PD)
② 왕년이란 향수 (안윤석 PD)
③ 못난이의 아름다움 (박경난 PD)
④ 걷지만 멈춰있고 (고하늘 PD)

▲ 박경난 PD

까만 피부에 주근깨가 가득한 ‘못난이’ 캐릭터는 한때 학생들의 학용품을 점령했었다. 못난이 인형을 가방에 달고, 못난이가 그려진 필통을 들고 다녔다. 웹툰에서는 광대뼈가 튀어나온 가분수 캐릭터 ‘조석’이 인기를 끌었다. 배우 류준열이 박보검 못지않은 사랑을 받았고, 세상에서 가장 화난 것처럼 보이는 고양이는 5만여 명에 달하는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 비쩍 마른 나뭇가지 같은 자코메티의 <Walking Man>은 경매가가 1,000억 원에 달한다.

과거에는 ‘아름다운’ 사람만이 미술 작품으로 남았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조각 작품 <원반 던지는 사람>을 보면 그 시대 미의 기준을 알 수 있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근육질 몸매의 남자. 현대에는 못난이와 조석이 작품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대의 미는 조석일까? 다양한 미의 기준이 인정받는 시대가 왔다고 기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여전히 미는 희고 마른, 아름다운 사람들의 전유물이다.

미의 기준은 바뀌지 않았는데 못난이가 유행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아름다움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변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소망하며 아름다운 형상과 순간을 작품으로 남겼다. 아름답지 못한 외모는 어쩔 수 없기에, 아름다워지기보다 아름다움을 기록한 것이다. 반면 지금은 아름다움이란 돈과 노력을 통해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됐다. 건강한 식사가 가능하고 운동할 시간이 있으며, 성형수술을 할 돈이 있다면 ‘고전적 아름다움’에 다가갈 수 있다.

경제적, 사회적 제약 등으로 아름다움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박탈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아름답게 되는 것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못나고 가난한 주인공이 부자 연인을 만나 신분 상승하는 신데렐라 콘텐츠가 계속해서 인기를 얻는 이유다. 못생긴 주인공에 자신을 이입하고 그가 아름다워지기를 갈망한다. 못난이 캐릭터는 미래에 아름다워질 자신을 대변하고 위로하는 존재인 것이다.

▲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을 상징하는 신데렐라 유리구두. ⓒ Wikimedia Commons

못난이 캐릭터는 새로운 미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MBC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시작은 못생기고 무능력한 여주인공의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였다. 시청자들은 빨리 예뻐지게 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녀는 시청자의 바람대로 예뻐졌지만, 마지막에는 다시 못생긴 모습으로 돌아갔다. 예쁜 외모를 유지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 그녀의 진정한 아름다움이었다. 그녀가 예쁜 이유는 신념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못난이 캐릭터들의 인기 뒤에는 여전히 ‘고전적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동시에 계속해서 ‘새로운 아름다움’이 고개를 내민다. 정말 못난이가 아름답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다. 당신이 이입한 못난이 캐릭터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인정받고 싶은 것은 아니냐고. 이제 생산되는 콘텐츠는 이 의문에 ‘아름답다’는 대답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도 못난이 캐릭터가 계속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다.


편집 : 고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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