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연정

▲ 김평화 기자

'헌법, 대통령을 파면했다.'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다음 날 실린 <중앙일보> 1면 문구다. 지난해 비선 실세 의혹으로 출발해 헌정 사상 초유의 국가적 위기를 맞았던 대한민국이 새로운 희망의 순간을 맞았다. 벚꽃 대선이 현실화하면서 정치권에서는 개헌과 연정 논의가 봇물 터지듯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안희정 충남지사의 ‘대연정’ 논쟁이 불거진 상태다. 연정의 필요성에는 후보자들 모두가 동의하지만, 여당인 자유한국당까지 포용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안 지사는 새롭게 거듭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당까지 포함한 대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은 바른정당과 여당에 국정농단 사태의 책임을 물은 후에야 통합과 연정 논의가 가능하다며 선을 긋는다. 다른 당의 대선 후보들 역시 의견이 엇갈린다. 바른정당에서는 유승민 의원이 대연정에 찬성하지만 남경필 경기지사는 반대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연정론을 편다. 대선 주자들 간에 대연정의 범위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연정 자체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대한민국 국가 위기를 연정으로 극복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3월 11일 자 <중앙일보> 1면.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문 전문을 실어 화제를 모았다. ⓒ 중앙일보 홈페이지

먼저 국내 정치 지형이 거대 양당으로 나뉘었던 과거와 달리 다당제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연정(연합정부)은 본래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다수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을 때 다른 정당과 과반수를 채워 구성한 정부를 가리킨다. 보통 다당제 폭이 큰 국가일수록 연정을 구성할 확률 역시 높다. 연정은 참가하는 정당의 의석수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뉘는데, 안 지사가 제시한 대연정은 이념적 성향이 다른 2개 이상의 정당이 연정을 구성하는 형태다. 독일의 우파 기독민주연합당과 좌파 사회민주당이 연정을 구성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국회가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고루 반영해야 하는 임무를 제대로 실현할려면 서로 머리를 맞대는 연정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둘째, 국회선진화법 도입이다. 국회의장 직권 상정과 다수당의 날치기 법안 통과를 금지하도록 마련된 이 법안은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인 180석의 동의가 없으면 법안 처리가 불가능하다. 즉 여야 합의 없이는 예산안 외에 어떤 법안 처리도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현 국회에서 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의석수를 합쳐도 166석에 불과하다. 32석인 바른정당이 합류해야 180석을 넘어 신속처리안건 지정이 가능해진다. 신속처리안건을 지정하더라도 해당 상임위와 법사위에서 최장 180일과 90일 동안 논의해야 하는 절차상의 문제도 남는다. 이 경우 자유한국당과의 논의가 법안의 신속한 통과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 대연정 논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싹을 틔운다.

진영재 연세대 정치학 교수는 자신의 저서 <정치학총론>에서 “어떤 경우에도 제도 논쟁은 전지전능한 해답이 없으며 단지 어떤 조건이 주어진 경우 그 조건을 가장 잘 만족시키는 논리가 있을 뿐”이라고 짚는다. 유일무이한 진리로서 제도적 해답은 없다는 얘기다. 정치 제도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변수에 따라 알맞은 해법을 도출할 뿐이다. 연정 논의 역시 마찬가지다. 현 시국을 타개할 연정의 형태는 각 정당이나 대선후보가 선택할 상황적 묘수에 달렸다. 불신의 눈을 낮추고 연정 가능성의 문을 넓혀야 하는 이유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곽호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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