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권력

▲ 안윤석 기자

“아무리 선량한 사람일지라도 상황에 따라 권력이 생기면 악마로 변할 수 있다.” 미국 심리학자 짐바르도의 말이다. 권력이 사람을 바꿀 수 있음은 역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흥선대원군은 권력을 잡기 위해 자신이 간택한 명성황후와 서로 칼끝을 겨눴으며, 청나라 서태후는 조카인 광서제를 유폐시키고 죽이려 할 정도로 권력욕에 중독됐다. 조선과 청의 몰락과정에 유사점이 크다. 권력욕이 지도자의 가족을 넘어 국가의 비참한 종말을 가져온 점에서 그렇다.

조선과 청나라의 권력 핵심부가 권력을 놓고 아비규환의 이전투구를 벌일 때, 일본은 반대로 권력을 나눴다. 1854년 개항한 일본은 서양의 신문물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중국처럼 어설픈 중체서용(中體西用)이니 동도서기(東道西器)론으로 미적대지 않았다. 기술뿐 아니라 문화 자체를 바꾸었다. 정치는 핵심이다. 유럽을 배워 헌법을 제정하고, 전제군주제를 입헌군주제로 전환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의원내각제를 도입해 민심에 귀 기울이고 협치를 중요시했다. 일본은 이를 바탕으로 오키나와, 대만, 요동반도, 조선, 만주를 차례로 집어삼켰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짓밟으며 전제 군주체제의 권력독점에 집착하다 나라를 잃은 한국. 아직 정신을 못 차린듯하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말이 곳곳에서 들리기 때문이다. 성공한 엘리트들은 이 말을 자신의 지위와 서열을 확인하기 위해 쓴다.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총리 의전에 밀려 거동 불편하신 어르신들이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현실을 이를 잘 말해준다. 권력욕 견제장치가 절실하지만, 문제는 견제장치를 만드는 당사자가 엘리트라는 점이다. 권력욕에 찌든 엘리트들에게 견제장치는 말 잔치에 그친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도 행동하지 않는 견제장치로 더 커졌다. 견제장치를 국민 스스로 만드는 체제의 필요성은 여기서 나온다.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과잉의전 때문에 오송역에서 버스를 이용하려던 승객들은 밖에서 추위에 떨어야했다. ⓒ mbn <뉴스8> 갈무리

1987년 6월 항쟁 이후 독재세력이 물러난 자리에 들어선 민주세력도 결국 국민을 주인으로 삼는 시스템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여기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추진 과정의 2016~2017년 촛불민심이 요구하는 지향점이 다시 읽힌다. 박근혜를 대신하는 또 다른 권력자의 출현이 아니다. 국민이 권력 견제장치를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각 정치 엘리트들의 각개약진 식 개혁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따른다. 연대와 협치를 위해선 엘리트 스스로가 기존 방식을 ‘체념’하거나 ‘포기’하는 방법을 선택지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 내 안에 깃들 권력욕을 내려놓는 결단. 쉽지는 않다. 하지만, “너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말하는 권력자들에게 “몰라!”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 더는 권력의 옷을 입어도 악마로 돌변하지 않는 사회를 촛불민심은 지향한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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