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르네상스

▲ 안형기 기자

기독교사상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중세유럽. 최고권위자 교황 율리오 2세는 한 젊은 화가에게 자신의 집무실,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림 그릴 것을 요구했다. 젊은 화가는 4년간 천장에 매달려 눈이 망가지고 허리가 휘는 고통을 인내하며 그림을 그렸다. 성당 천장을 가득 메운 그의 그림을 본 교황은 충격과 경악에 빠졌다. 그림의 웅장함과 숭고함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태어나 처음 자신의 눈으로 하느님의 형상을 보게 됐으니 말이다. 심지어 하느님의 형상은 자신과 같은 인간의 모습이고 달랑 옷 한 자락 걸친 사나이에 가까우니 놀라지 않을 수 있었을까?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이야기다. 현세의 모든 것이 내세의 이데아를 지향하는 종교 교리에 구속된 사회. 인간에게 허락된 하느님은 구름 사이로 뚫고 나오는 햇살로 표현된 은총과 기적이 전부였다. 어찌 감히 인간 따위가 교회에 하느님을 그릴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이 ‘신성모독’행위로 이상주의의 틀을 벗어던지고 인간 중심의 세상을 알렸다. 동시대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역시 다르지 않다. 전 세계가 반한 신비로운 미소를 띤 <모나리자>. <모나리자>의 미소를 바라보며 인간의 오묘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 역시 중세기독교와의 결별에서 싹튼다. 중세 화가들이 그린 여인은 오직 성모 마리아뿐이다. 그러나 다빈치는 성모 마리아가 아닌 현실 세계 여인의 모습에서 예술을 꽃피웠다.

▲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가이자 화가 미켈란젤로의 작품 <천지창조> 中 아담의 창조. 아담을 향해 손을 뻗은 하느님은 옷 한자락 걸친 사나이의 형상이다. ⓒ Wikipedia

이런 ‘신성모독’은 아시아대륙 동쪽 끝 조선에도 있었다. 성리학 중심의 유교적 유토피아를 꿈꾸고 역성혁명을 통해 철저하게 설계된 국가, 조선. 이후 교조주의에 빠져 변질한 성리학적 질서는 그것을 설계한 정도전의 민본사상(民本思想)에서 거꾸로 갔다. 모든 백성의 행동양식은 <주자가례(朱子家禮)>에 갇혔다. 심지어 왕세자마저 행실을 문제 삼아 뒤주에 가둬 죽이니 감히 성리학에 반하는 행동이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정조는 미켈란젤로와 다빈치가 그랬듯 금기를 깼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몬 노론 벽파 숙청 공신 홍국영을 내치고 서자 출신 실학자들에게 관직의 문을 열었다. 성리학적 미의식을 표현한 사대부의 자화상 사군자(四君子) 대신 백성을 그린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에 높은 점수를 매겼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새마을운동이 아니라 옛마을운동. 그동안 잊혀졌던 그 모든 것을, 정신을 되살려 오늘에 되살려…" 광화문광장에 울려 퍼진 가수 김반장의 노랫말이다. 대한민국의 르네상스를 염원하는 이 노랫말처럼 광장의 시민들이 스스로 미켈란젤로, 다빈치, 정조가 되었다. 그리고 새마을운동으로 대표되는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 신화와 세습된 박근혜 정권에 촛불을 밝히는 ‘신성모독’행위를 해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다가오는 대한민국 르네상스 시대에 시민이 중심이 되는, 진정한 민본사상(民本思想)을 뿌리내리는 일이다. 신이 되어버린 누군가의 초상화가 아닌 광장의 시민 모습을 담은 그림이 더욱 빛을 발하는 국민 주권시대의 문은 열렸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송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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