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만민공동회’와 촛불

▲ 김민주 기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촛불집회는 직접민주주의의 표본인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아고라 민회와 구한말 독립협회의 종로 ‘만민공동회’와 닮은꼴이다. 거대 제국 페르시아의 침략을 아테네가 물리친 비결은 광장에서 논의된 시민 정치였다. 1898년 3월 10일 독립협회가 주최한 만민공동회 1만여 명 집회 역시 마찬가지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민중의 거대한 힘으로 제정러시아로부터 주권을 지켰다. 탄핵 운동을 전개해 친러 수구파 내각을 사퇴시키고 개혁파 내각을 세웠다. 당시 천대받던 백정 박성춘의 연설은 민주주의에 한 획을 그었다. 민중의 의견을 모아 만든 국정 개혁안 <헌의 6조>는 수정되지 않고 조정에서 받아들였다. 비록 고종의 변심으로 1년도 안 돼 강제 해산됐던 만민공동회가 118년 만에 다시 태어났다.

2월의 강추위 속에도 11일 80만 명이 모이는 등 촛불집회의 하이라이트는 ‘평범한’ 사람들의 자유발언이다. 국정교과서로 공부하게 될까 봐 심적 부담을 느낀다는 중학생, 최저시급을 요구했다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된 청년, 국민이 낸 세금이 다 어디로 갔느냐며 억울하다는 청소부 아주머니까지. 그동안 권력자가 귀 기울이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장 큰 호응을 받는다. 서울에서도, 각 지방에서도, 외국에서도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현안을 고민하며 머리를 맞댔다. 촛불민심은 이제 격을 달리한 민주주의를 찾는다. ‘직접 민주주의’로의 회귀다.

▲ 광화문 광장 9차 촛불집회에서 열린 <김제동의 만민공동회> 중 한 중학생이 발언을 하고 있다. ⓒ Ohmynews TV 갈무리

세계에서 직접 민주정치가 가장 모범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나라는 스위스다. 기본소득 도입 등 국가 주요 정책부터 마을버스 도입 찬반까지 국민 의사대로 따른다. 10만 명이 서명하면 누구나 자신이 만든 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국민투표 과정에서 국민은 새로운 의제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의사를 결정하며 주권자로 대우받는다. 직접 민주정치에 익숙한 스위스 국민은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한일 위안부 합의, 국정교과서 집필의 밀실 추진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불완전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에 부딪혔다. 대의민주주의는 국민이 자기 뜻을 대신해 공공선을 추구할 정치인을 뽑아 제한적으로 권리를 맡기는 제도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이 준 권리를 공공선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사유재로 착각하며 제한적이 아닌 제왕적 전권으로 헌법을 짓밟았다. 주권자인 시민은 감춰졌던 국정농단 실태가 드러나자 분노와 상실감에 ‘직접’ 광장으로 나왔다.

대의민주주의가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다. 광장 시민의 요구와 대안들이 정책과 법 제도에 반영됐던 대한문 앞(현 시청광장 옆 덕수궁 대한문)의 만민공동회가 오늘날에 구현돼야 하는 이유다. 국민이 실제 삶 속에서 겪는 민생문제부터 국방과 외교 정책까지 정부와 국회가 받아들여야 할 요구와 의견에는 제한이 없다. 유럽 선진국들의 국민발안제,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투표 등 직접 민주정치 도입 강화 추세가 이제 더는 강 건너 남의 집 불구경 이야기가 아니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민수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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