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실학

▲ 곽호룡 기자

마흔넷 무직. <열하일기>를 남긴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 사신 일행에 오를 당시 그런 상태였다. 청나라 사절단에 뽑힌 것도 총책임자인 8촌 형 박명원의 힘, ‘빽’이 컸다. 요즘이야 실학이 조선 중기에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는 듯이 자세히 다룬다. 하지만 당대에 대부분의 실학자들은 주류에서 밀린 재야학자 신세였다. 하지만 연암의 글에서 그런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는 전혀 없다. 유쾌한 풍자를 잊지 않으면서, 사회 비판에도 날을 세운다. 천하다고 여기는 직업을 가지고도 자신만의 철학으로 건실하게 살아가는 삶을 치켜세운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상관없이 연암은 당당하다. 그에게 ‘조선’은 아직 ‘헬조선’으로 표현되는 절망적인 나라는 아닌 듯하다.

▲ 문장가이자 북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로 알려진 연암 박지원은 쉰 살이 가까운 나이에 처음 벼슬에 올랐다. ⓒ 실학박물관

지그문트 바우만은 실업자를 ‘잉여’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실업’은 일시적으로 직업이 없는 상태다. 현재 실업자는 그보다 심각하다. 언젠가 직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없기에 더더욱 ‘잉여’다. 이런 변화는 노동력이 더 이상 기업의 생산에 기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은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출렁인다. 하지만 고용불안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려도 꿈쩍하지 않는다. 단순하게 말해 사회는 예전보다 노동자를 요구하지 않는다. 경제는 ‘소비자’인 그들을 필요로 할 뿐이다. 이렇게 된 원인으로 바우만은 세계화, 고도기술화, 노동유연화를 꼽는다. 하나같이 성장과 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의 슬로건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지옥을 빠져나올 수 없는 불구덩이로 그린다. 무기력한 ‘잉여’들이 넘치는 세상. ‘헬조선’이다. 잉여로 남지 않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다. 글로벌 기업에 취직하고, 심지어 그저 ‘한국이 싫어서’ 이민을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는 한류산업 육성과 더불어 ‘창조경제’를 외치며 국민들을 해외로 등 떠민다. 기업들도 앞다퉈 해외로 나간다.

그런데 ‘탈조선’에 성공한 사람들이 진정 승리자일까?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자신의 신분적 배경을 ‘중상계급’으로 봤다. 영국 명문 이튼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그곳에서 더 상위계층 학생들과 격차를 본 것이다. 그가 택한 직업은 당시 영국 식민지 버마 경찰관이었다. 오웰과 같이 상위계급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기회의 땅’ 식민지로 떠났다. 그곳에서 경찰, 의사, 목사로서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권력을 누린다. 그가 식민지 버마에서 본 건 권력에 기생하는 자신의 모습이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며, 갈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근대를 설명한 루카치의 명구. 연암이 살았던 시대는 성리학이란 별이 떠 있었다. 그는 별이 빛을 잃어감을 직감하고 캄캄한 하늘에 떠오를 다른 별을 마음속에 그렸다. ‘헬조선’에서는 여유 있게 밤하늘을 볼 여유조차 있기나 할까? 연암은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다가 중국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오웰은 식민지 경찰관에 회의를 품고 저널리스트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이 가는 길이 잘못됐다고 느낄 때 새로운 별을 그리며 미련 없이 돌아 나왔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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