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대 저널리즘스쿨 ‘14기 대학언론인 캠프’

이방인의 ‘세저리’(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의 별칭) 방문을 따뜻이 맞으려는 걸까? 새해 벽두인데도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1월 6일 오후 충북 제천 세명대 캠퍼스로 50명의 청년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3분의 2쯤은 서울에서 왔지만 멀리 일본 지바시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일하다가 캠프 날짜에 맞춰 조기 귀국한 열렬 참가자 이창우(30·부경대 대학원 졸) 씨도 끼어있었다.

먼 데서 굳이 캠프에 참가한 이유를 묻자, 이 씨는 “진학하고 싶은 저널리즘스쿨의 분위기를 미리 파악하고 싶었다”며 “사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뒤늦게 언론고시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친구들 사귀고 정보도 얻으려고 왔다”고 말했다. 이봉수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은 “언론도 박근혜 국정농단의 공범이고 실력 없는 언론인이 권력에 굴종한다”며 “짧은 기간이지만 저널리즘의 표준과 공부하는 방법을 조금이라도 익히고 나갔으면 좋겠다”고 환영 인사를 했다.

저널리스트가 중요한 이유

거의 쉴 시간을 주지 않고 이어진 열두 개 강좌 중 첫 번째로 이봉수 원장은 ‘무엇이 우리 가슴을 뛰게 만드나’라는 주제의 강의를 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 출신인 그는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쓴 <한겨레> 시민편집인 칼럼 ‘고장 난 민주주의 제도의 비극’을 소개하며 "지금의 국정 파탄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이 진보·보수 정당 체제를 토대로 수준 높은 의원내각제 민주주의를 구가하는 것은 수준 높은 진보·보수 언론이 양립해있기 때문”이라며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강의에 집중하는 캠프 참가자들 모습. ⓒ 손준수

두 번째로 KBS PD 출신인 이상요 교수는 ‘영상 저널리스트 Key-Finding’이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그는 “영상의 힘은 네 가지”라며 “감성적 소구력, 직접적·충격적 수용, 이미지 메이킹, 무의식을 지배하는 점이 그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영상의 표현력이 문자보다 풍부하고 깊으므로 PD가 돼서도 10년 넘게 영상을 배운다”며 “영상의 영향력이 큰 만큼 배우기도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나를 만든 건 정보공개청구”

기자의 자격 요건에서 기사 아이템을 찾는 능력은 빼놓을 수 없는 자질 중 하나다. ‘나를 만든 건 정보공개청구’라는 주제로 강의한 문준영 CBS 기자는 정보공개청구 분야에서 특출한 능력을 보이는 기자다. 그는 언론사 입사 전부터 제주대 총장 업무추진비, 제주도의 공공기관 연봉 상위 15명의 급여 등 100여 개가 넘는 정보공개청구를 시도한 바 있다. 저널리즘스쿨 8기 출신이기도 한 문 기자는 재학 당시에도 교육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입수한 ‘국정교과서 예비비 사용내역’을 <노컷뉴스>에 단독으로 보도해 화제를 모았다.

“정보공개청구는 계속해봐야 하고, 끈기 있게 해야 하고, 모르면 물어봐야 합니다. 이게 바로 기자의 기본입니다. 기자를 지망하는 학생은 기자가 되기 전에 정보공개청구를 적극적으로 이용해보세요.”

박정연(25·아주대 사회학) 씨는 “정보공개청구가 이렇게 좋은 기사 아이템을 많이 제공해준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기자의 자질에서 근성이란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 캠프 참가자들은 강행군으로 진행되는 강의 일정에도 피곤한 기색보다는 열의에 찬 모습들을 보였다. Ⓒ 손준수

“글은 외우지 않고 녹여서 쓰는 것”

<중앙일보> 이현택 기자는 ‘언론고시 원포인트 레슨’을 제공했다. 이 기자는 언론인을 지망하는 이라면 누구나 방문한다는 언론고시 카페 ‘아랑’의 운영자(닉네임: 술값)이기도 하다. 그는 언론사 입사에 필요한 자질을 전형마다 섬세하게 짚으며 캠프 참가자들의 질문에 실용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그는 논술에 대비해 마음에 드는 필진의 글을 필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면서도 인기 필진의 글만을 보는 것에는 우려를 표했다. 시험을 보려는 다수와 주장이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그는 또 “외우기 위해 필사하기보다는 필사한 뒤 자신의 문장과 단어로 바꿔서 재작성해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필기를 외워서 쓰면 시험 주제와 상관없이 끼워 맞춘 글이 돼 이상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는 “글은 외워서 쓰는 것이 아니라 녹여서 써야 하는 것”이라며 “(자신이) 천편인률적인 답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행사로 즐거운 밤

네 가지 주제 강의가 끝난 밤 10시 반, 저널리즘스쿨 9기 윤연정·박기완 씨 진행으로 ‘사귐의 시간’ 행사를 했다. 자기소개를 인상적으로 하는 학생도 꽤 눈에 띄었다. 장윤정(24·경희대 언론정보학) 씨는 “내 이름을 듣고 가수가 떠오르면 신세대, 미스코리아가 떠오르면 구세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몸으로 말해요’, ‘랜덤 노래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행사 분위기가 달아올랐고, 교수·강사진이 제공한 책과 각종 선물이 신명을 더욱 부추겼다.

▲ 게임과 노래를 하며 ‘사귐의 시간’을 즐기는 참가자들. Ⓒ 손준수

이날 캠프에는 김지영 <뉴스토마토> 기자, 이승주 <뉴시스> 기자, 곽영신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원(전 <국민일보> 기자) 등 세저리 3기 졸업생 셋이 찾아와 참가자들에게 언론고시 준비와 기자생활에 대한 다양한 팁을 공유했다.

기자반·PD반 나눠 심층 학습

새벽 2시가 넘어 숙소로 돌아갔지만, 캠프 둘째 날 강의는 어김없이 아침 8시에 시작했다. 기자반과 PD반으로 나뉘어 진행된 수업에서 SBS 기자 출신인 김문환 교수는 ‘레벨업! 방송리포팅’을 통해 리포팅 발성법을 지도했다. 그는 “처음에 소리를 크게 낸다, 쉴 때 떨어뜨려 준다, 어미에서는 소리가 안 나도 좋으니까 완전히 떨어뜨린다”를 기본 발성 원칙으로 꼽았다.

KBS PD 출신인 장해랑 교수는 ‘PD는 기획으로 말한다’ 강의에서 PD반 참가자들에게 기획구성안 작성방법과 성공적인 기획의 조건에 대해 말했다. 그는 “피디가 프로그램으로 말하려면 같이 울 수 있고, 같이 분노할 수 있는 따뜻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봉수 원장은 ‘기자가 된다는 것 – DB 만들기와 글쓰기’ 수업에서 개인 DB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원장은 “남다른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 데이터베이스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발로 쓰는’ 기사는 신참 기자 때 해당할 뿐 나중에는 기사를 '머리로 써야' 한다”며 “끊임없는 공부와 자료축적으로 자신만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문환 교수가 보도 영상을 보여주며 발성법을 지도하고 있다. Ⓒ 손준수

안수찬 <한겨레21> 편집장은 ‘시사현안 100분 토론 – 토론의 기법’ 강의를 진행했다. 그는 “기자라는 직업을 갖는 데 토론 능력은 별 쓰임새가 없지만 입사 평가 과정에서는 토론의 방식으로 테스트한다”며 “토론은 기자가 되기 위한 준비 단계에서 필수”라고 말했다.

그는 ‘개헌’이라는 주제로 참가자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참가자 중 구체적인 근거를 댄 박정연(25·아주대 사회학), 남다른 문제의식을 보여준 손하늘(25·카이스트 산업공학), 차분하게 의사를 개진한 박지윤(23·고려대 사회학) 씨 등 세 명의 참가자를 뽑아 토론을 잘하기 위한 기준을 설명했다.

‘역사 강좌’에서 ‘자소서 클리닉’까지

김문환 교수는 ‘만민공동회와 촛불민심’이란 주제로 시의성 있는 역사 강의를 했다. 그는 조선 후기 만민공동회 정신에서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며 탄핵 정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역사는 오늘날 우리 문제를 푸는 열쇠”임을 강조하며 “보다 설득력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배경을 탄탄히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봉수 원장은 ‘자기소개서 클리닉’을 통해 자기소개서를 잘 쓰는 노하우를 공개했다. 그는 “자기소개서는 설득 커뮤니케이션의 한 과정”이라며 “상대방을 끌어당기려면 감성으로 호소하고 이성으로 설득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요즘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다”며 “호소력 있는 글쓰기는 자기소개서를 떠나 기자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라고 말했다. 잘못된 자기소개서 예로 범생이형, 돌쇠형, 과장형, 복사형이 차례로 소개되자 참가자들은 부끄러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탐사보도 기자의 자격은 분노다”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는 ‘세상을 바꾸는 힘, 탐사보도’에서 탐사보도 기자가 갖춰야 할 자격을 설명했다. 그는 특히 “잘못된 사회에 대한 분노가 없다면 좋은 저널리스트가 아니다”면서 “분노를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열망으로 승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의 시간 마지막 10분은 질의응답에 할애됐다. 한 참가자가 “<뉴스타파>는 자금 확보를 후원에 의존하는데 불안하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그는 “<뉴스타파> 후원자 대부분이 3년 이상 장기후원을 한다는 내부 데이터가 있다”며 “좋은 콘텐츠를 만든다면 후원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답했다. 참가자들은 콜택시가 도착할 무렵 강의실을 나가려는 김 대표를 따라가며 질문을 해 탐사보도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내비쳤다.

▲ 탐사보도 강의를 집중하며 듣는 캠프 참가자들. Ⓒ 손준수

“뉴미디어 시대에도 저널리즘 기본정신 필요”

캠프 참가자들은 수료식을 마지막으로 1박 2일간 일정을 마쳤다. 캠프에 참여한 유경희(22·전북대 사회학) 씨는 “쟁쟁한 명사들이 포함된 캠프 강사진을 보고 지원했는데 폭넓게 배울 수 있어 좋았다”며 “학보사 3년간 신문을 만들어 자신감이 좀 있었지만 더욱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카이스트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손하늘 씨는 공학도다운 논평을 했다.

“주변에 뉴미디어로 창업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실무적인 부분에 치우쳐요. 언론인 캠프는 저널리즘과 실무적인 이야기를 균형 있게 다룬 점이 좋았고요. 뉴미디어 시대에도 저널리즘의 기본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습니다.”


편집 :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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