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역사

▲ 최지영 기자

세조는 부끄러웠을까? 세조(수양대군)는 단종의 삼촌이다.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을 유배 보내고 사약을 내린다. 친동생인 금성대군과 안평대군 역시 사사시킨다. 형수인 현덕왕후(문종의 왕비) 묘지까지 파헤친다. 권력을 위해 가족을 죽이고, 죽은 자까지 욕보인 세조는 자신이 부끄럽지 않았던 모양이다 “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한 번 죽는다면 사직(社稷)에서 죽는 것이다.” 『연려실기술』에서 이긍익이 전하는 세조의 말을 보면 말이다. 사(社)는 토지의 신이요, 직(稷)은 곡신의 신을 가리키니 곧 사직이란 국토를 가진 한 나라를 가리킨다. 나라를 차지하고서야 죽겠다는 세조의 그 절대 권력 의지는 양심의 가책마저도 압도해 버린다.

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책 ‘오래된 미래’에서 인용한다면 ‘역사도 오래된 미래’라는 가정이 유효할까? 국가권력의 정점에서 부끄러움을 잊어버린 박근혜 정부를 보면 그렇다. 용포(龍袍, 미르재단)를 둘러 사익을 추구하고, 모사꾼 한명회(최순실)와 권력을 나눠, 역모(헌법질서 파괴)로 국정을 어지럽힌 세조는 ‘오래된 박근혜’와 다름없다. ‘과시하기를 기뻐하며, 재물을 탐하고 색을 즐겨서, 토지와 금은보화 등 뇌물이 잇달았고, 그 부유함이 한 때에 떨친’ 한명회는 ‘오래된 최순실’과 닮은꼴이다.

▲ 광장에 모인 국민의 목소리는 민의로 다듬어진 ‘새로운’ 시민 권력으로 승화됐다. ⓒ Flickr

한 가지, 그때와 지금이 다른 건 우리 국민에게 ‘오래된’이라는 수식어가 더는 적용되지 않는다. 사육신의 목에 칼이 씌워졌고, 생육신은 전국의 재야를 떠돌고, 민의가 민란으로 치부됐다면, 지금 국민의 손에는 촛불이 들렸고, 광화문 광장에는 전국에서 온 국민이 청와대를 향해 포위행진을 벌인다. 광장에 모인 국민의 목소리는 민의로 다듬어진 ‘새로운’ 시민 권력으로 승화됐다. 시민 권력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에서 출발한다. 겸손한 시민 권력이 오만한 절대 권력을 명분에서 앞서는 이유 중 하나다.

“내가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과 석곽을 사용하지 말고, 병풍석을 쓰지 마라.” 세조의 유언이다. 세조는 권력 말기에 이르자, 죄책감에 시달렸다. 평생 고생한 피부병을 권력욕의 ‘업보’라 여겼다. 자신의 몸을 빨리 썩혀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토록 피부에 집착한 이유도 자신의 업보를 가리기 위함인지 모르겠다. 헤겔은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은 두 번 반복한다”고 썼다. 카를 마르크스는 여기에 한 마디 덧붙였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반복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업보’가 민심의 촛불로 드러난 이상, 두 번째 역사는 희극으로 끝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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