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협치
미국 건국 초기 정당(party)의 모체는 파당(faction)이었다. 정당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당파성이었던 셈이다. “모두의 친구는 누구의 친구도 아니다”라는 속담처럼, 정당 역시 추구하는 바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면 누구도 대변하기 어렵다. 정당은 사회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당파적 특성을 가질 때 경쟁력을 갖는다. 지향점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서로 다른 노선과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하나의 조직 내에서 불편하게 동거하는 ‘패거리’들의 존재는 온전한 정당의 모습이라고 볼 수 없다. 친박과 비박 이야기다.
분당과 사수를 선언한 새누리당 내 패거리 정치는 정권창출만을 탐한 결과물로 비친다. 당의 이념이나 노선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권력쟁취에만 혈안이 된 모습은 당의 정체성까지 흐린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책임이 큰 친박계는 사과는커녕 초지일관 버티기다. 보수의 가치나 이념은 찾아볼 수 없다.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의 정체성 혼란은 사실 이번만이 아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소신을 밝힌 유승민 의원은 ‘배신의 정치’라는 낙인이 찍혀 물러나야 했다. 국회의원들 손으로 정당하게 선출된 원내대표가 대통령 한 사람의 의중으로 사실상 쫓겨났다. 오로지 한 인물만을 위해 존재할 거라면 차라리 ‘친박당’으로 탈바꿈하는 게 솔직한 태도다. 최근 비박계의 대거 탈당은 보수 분열이라기보다 당이 추구하는 노선, 즉 박근혜 대통령 줄서기냐 아니냐를 명확히 하려는 의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명확한 정체성에 따른 분열’은 협치의 시작이다. 조선시대 패거리 정치인 붕당(朋黨)정치는 균형을 맞추려는 임금의 판단 때문에 묵인된 측면이 있다. 선조의 당초 목적이 붕당을 적절히 이용해 왕권을 강화하는 데 있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조는 동인이든 서인이든 어떤 한 세력이 지나치게 강성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가 서인에 힘을 실어준 것은 어디까지나 동인을 견제하는 의미다. 앞서 성종도 훈구에 대항할 수 있는 사림의 힘을 키우는 데 앞장섰다. 어느 한쪽의 힘이 커지기를 원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물론 붕당 간 이권다툼으로 피바람이 부는 폐해가 있었지만 서로 다른 세력이 노선경쟁을 벌이는 풍토가 조성된 의미를 간과할 수 없다. 적어도 사람 따라 부화뇌동하며 무리한 동거와 반목을 일삼는 현 정당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다름을 어떻게 하나로 통합하느냐는 결국 지도자 역량에 달렸다. 조선시대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에서 해결의 열쇠가 보인다. 인재등용 시 포용정책이다. 노론·소론을 가리지 않고 등용하되 어느 한 쪽을 판서에 앉히면 다른 쪽은 참판에 앉혀 견제시키는 쌍거호대 방식이 그 실례다. 중립적인 인사정책은 공존과 협치를 가능하게 하는 동력으로 뿌리내렸다. 촛불국면에서 우리 국민은 다양한 의견을 표출, 반영할 수 있는 다당제로의 정치 시스템을 구축시켰다. 새해 국회에 교섭단체만 4개 정당으로 분화됐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철 지난 노래를 되풀이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정치권이 ‘누구 때문’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뭉치고 흩어질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협치는 싹튼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
편집 : 곽호룡 기자
단비뉴스 취재부장, 환경팀
진실에 더 가까이 간다면, 그 어느 후미진 곳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