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협치

▲ 유선희 기자

미국 건국 초기 정당(party)의 모체는 파당(faction)이었다. 정당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당파성이었던 셈이다. “모두의 친구는 누구의 친구도 아니다”라는 속담처럼, 정당 역시 추구하는 바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면 누구도 대변하기 어렵다. 정당은 사회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당파적 특성을 가질 때 경쟁력을 갖는다. 지향점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서로 다른 노선과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하나의 조직 내에서 불편하게 동거하는 ‘패거리’들의 존재는 온전한 정당의 모습이라고 볼 수 없다. 친박과 비박 이야기다.

분당과 사수를 선언한 새누리당 내 패거리 정치는 정권창출만을 탐한 결과물로 비친다. 당의 이념이나 노선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권력쟁취에만 혈안이 된 모습은 당의 정체성까지 흐린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책임이 큰 친박계는 사과는커녕 초지일관 버티기다. 보수의 가치나 이념은 찾아볼 수 없다.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의 정체성 혼란은 사실 이번만이 아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소신을 밝힌 유승민 의원은 ‘배신의 정치’라는 낙인이 찍혀 물러나야 했다. 국회의원들 손으로 정당하게 선출된 원내대표가 대통령 한 사람의 의중으로 사실상 쫓겨났다. 오로지 한 인물만을 위해 존재할 거라면 차라리 ‘친박당’으로 탈바꿈하는 게 솔직한 태도다. 최근 비박계의 대거 탈당은 보수 분열이라기보다 당이 추구하는 노선, 즉 박근혜 대통령 줄서기냐 아니냐를 명확히 하려는 의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29명이 지난달 27일 집단탈당하고 '개혁보수신당(가칭)' 창당을 공식 선언했다. ⓒ KBS뉴스 화면 갈무리

‘명확한 정체성에 따른 분열’은 협치의 시작이다. 조선시대 패거리 정치인 붕당(朋黨)정치는 균형을 맞추려는 임금의 판단 때문에 묵인된 측면이 있다. 선조의 당초 목적이 붕당을 적절히 이용해 왕권을 강화하는 데 있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조는 동인이든 서인이든 어떤 한 세력이 지나치게 강성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가 서인에 힘을 실어준 것은 어디까지나 동인을 견제하는 의미다. 앞서 성종도 훈구에 대항할 수 있는 사림의 힘을 키우는 데 앞장섰다. 어느 한쪽의 힘이 커지기를 원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물론 붕당 간 이권다툼으로 피바람이 부는 폐해가 있었지만 서로 다른 세력이 노선경쟁을 벌이는 풍토가 조성된 의미를 간과할 수 없다. 적어도 사람 따라 부화뇌동하며 무리한 동거와 반목을 일삼는 현 정당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다름을 어떻게 하나로 통합하느냐는 결국 지도자 역량에 달렸다. 조선시대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에서 해결의 열쇠가 보인다. 인재등용 시 포용정책이다. 노론·소론을 가리지 않고 등용하되 어느 한 쪽을 판서에 앉히면 다른 쪽은 참판에 앉혀 견제시키는 쌍거호대 방식이 그 실례다. 중립적인 인사정책은 공존과 협치를 가능하게 하는 동력으로 뿌리내렸다. 촛불국면에서 우리 국민은 다양한 의견을 표출, 반영할 수 있는 다당제로의 정치 시스템을 구축시켰다. 새해 국회에 교섭단체만 4개 정당으로 분화됐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철 지난 노래를 되풀이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정치권이 ‘누구 때문’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뭉치고 흩어질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협치는 싹튼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곽호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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