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장하준 교수 초청강연 ②

문형표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이 특검에 구속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에 찬성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혐의다. 물론 특검은 그 부당한 지시의 정점에 청와대,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이 있을 것으로 보고 칼끝을 겨눈다. 아울러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그 내용을 알고 최순실 일가에 대한 지원을 지시한 것으로, 관련자 진술과 증거를 토대로 퍼즐을 맞춰간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을지는 조만간 특검 수사로 밝혀질 전망이다. 국민연금의 삼성 합병 찬성은 잘못된 것인가?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국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초청 ‘더불어 함께, 대한민국 경제’ 강연 뒤 펼쳐진 2부 행사 토론에서 이 부분을 명쾌하게 정리해 준다. 장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의 책에서 현대 자본주의의 맹점을 날카롭게 파헤쳐 주목받는다.

▲ 지난 23일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더불어 함께, 대한민국 경제’를 주제로 진행한 강연 2부에서는 이명묵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대표, 전용건 사회연대네트워크 상임대표, 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이 패널로 참여했다. ⓒ 박희영

장하준 교수는 전용건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대표가 질문한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 완화에 대한 대안을 밝히는 과정에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보인 국민연금의 행태에 대해 입을 열었다. “국민연금이 삼성 편을 들어준 게 특혜라는 논쟁이 있는데, 그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으면 ‘산업재해 노동자 보상’, ‘노조 인정’ 등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경영하라는 조건을 제시할 수 있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국민연금이 마치 외국 펀드랑 똑같이 행동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국민연금의 행태를 꼬집었다.

장 교수는 “삼성을 엘리엇 같은 외국 펀드에 넘겨줄 것이냐, 작은 지분으로 전횡하는 세습가족에 물려줄 것이냐는 질문은 쥐약 먹고 죽을래, 농약 먹고 죽을래 라고 물어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유하며 애국심 차원에 머물고 마는 논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음을 들려준다. “기업의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 커지면 사회적 존재가 되기 때문에 특별관리를 받아 마땅하다”고 사회적 중요성에 방점을 찍는다.

‘주주자본주의’, 국민경제에 도움 안 돼

장 교수는 “독일은 ‘공동결정제’라는 제도가 있다”며 “500인 이상 되는 기업에 경영이사회 외에도 노동자 측과 경영자 측이 반반인 감독이사회가 있어 기업 인수 합병, 공장 폐쇄, 구조조정 등 중요한 사안의 결정권을 갖는다”고 알려준다. 독일만이 아니다. 이상적인 복지국가의 하나로 꼽히는 스웨덴을 보자. 장 교수는 “스웨덴 최대 발렌베리 그룹은 재산을 공공재단화해 매출의 최대 85%를 스웨덴 사회에 투자한다”고 덧붙인다. 이와 관련해 이날 진행을 맡은 정승일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이사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제안한 ‘근로자이사제’가 독일의 공동결정제와 같은 개념”이라고 풀어준다.

장 교수는 “기업이 주주자본주의로 가는 것을 막고, 복지국가를 확대해 주식시장 규제와 노동 규제 강화 등 다면적으로 접근을 통해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 해소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답을 내놨다.

이어 “재벌 개혁안으로 소액주주 권한을 강화해 적은 지분으로 횡포를 부리는 재벌가를 견제하자는데, 그 주주들은 외국인이나 부자가 많아 우리나라 일반 국민의 삶하고는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이라며 재벌에 대한 실질적 규제가 이뤄지지 못한다고 ‘주주자본주의’의 허점을 짚는다.

장 교수는 “영국 노동당 대표 제레미 코빈이 핵심지지층에게는 높은 지지율을 얻는데도 판을 뒤집지 못하는 이유는 보수당 정책과 같은 틀에 머물며 돈 좀 더 준다고 하는 것일 뿐 별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한두 푼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 국민경제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성”을 부각했다.

“정경유착과 국가개입은 별개의 이야기”

장 교수는 “우리나라는 불행한 독재정치 역사 때문에 관치에서 벗어나는 것이 독재 청산과 등치 개념으로 인식되는 오해가 있다”며 “재벌에게 특혜를 주는 관치가 잘못된 것일 뿐 국가 개입을 통해 통화정책, 재정정책, 무역정책, 노동정책 4개 분야를 적절히 조율하는 것은 필수”라는 대목에 힘을 준다.

장 교수는 중앙은행 독립성 논쟁을 예로 들며 “중앙은행 독립에 반대하면 ‘관치 금융’하자는 것이냐고 비난하는데, ‘언어’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유럽에서는 우파가 중앙은행 독립성을 소리높여 외친다”며 “중앙은행이 객관적인 기술자들의 조직 같지만, 금융권과 가장 교류가 많으므로 독립성을 갖게 되면 정책이 금융권의 이익을 위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장 교수의 설명이다.

장 교수는 “중앙은행의 목표 자체가 물가 안정에만 할당된 것”도 문제라며 “금융투자자 입장에서는 물가상승률이 높으면 손해이기 때문에 물가 잡기를 원한다”고 덧붙인다. 중앙은행 독립이 자칫 금융권 투자자들과 결탁을 통해 국민경제에 해를 끼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음을 짚어주는 역설적 반증이다.

“확장재정이 다 빚으로 남는 것은 아냐”

토론회에서는 이명묵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대표, 전용건 사회연대네트워크 상임대표, 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 패널 외에 방청객 시민 질문도 쏟아졌다. 그중 김민석(18)씨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면 국가부채가 늘어나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오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서 장 교수는 “경기순환 사이클로 볼 때, 정부는 민간경제가 좋을 때 긴축재정을 하고 민간경제가 안 좋으면 확장재정을 편다”며 “확장재정으로 경제가 살아나면 세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정부가 쓴 돈이 다 빚으로 돌아오는 건 아니다”라고 들려줬다.

방청객 한상우(37)씨는 “복지국가로 나아간 선진국은 증세에 대한 국민의 반발을 어떻게 극복했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장 교수는 “초기에는 목적세를 도입해 늘어난 세수를 모두 복지에 쓰기로 약속하고 의구심을 해소하는 방법이 있다”며 “목적세가 유연성이 떨어져 장기적으로는 재정운영을 어렵게 만들지만, 국민의 신뢰를 쌓기 위해 초기에는 운용의 묘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풀어줬다.

▲ 지난 23일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더불어 함께, 대한민국 경제’를 주제로 진행한 강연 2부에서는 패널들과의 토론이 이어졌다. 이를 시민들이 경청하고 있다. ⓒ 윤연정

행동하는 시민사회가 답

올해 수능을 본 정욱재(18·죽전고)씨는 “복지국가가 형성되면 사람들이 살기 편할 것 같은데 국민으로서 해야 할 일이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물었고, 장 교수는 “국민이 복지국가 이야기를 많이 해 공론화해야 정치인들이 관심을 가진다”며 “탄핵도 계속 이야기하니까 가결되지 않느냐”고 시민 행동에 힘을 실었다.

이런 의미에서 방청객 박혜진(32·양천구)씨의 반응은 장 교수의 해답과 맥이 닿는다. “복지국가에 대해서 좋다고는 들었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됐는데, 결국 시민 사회에서 구체적인 논의가 많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비록 부결됐지만, 2016년 상반기 세계를 달궜던 스위스 기본소득 국민투표 역시 시민사회의 정책 발안으로 시작된 것 아닌가. 결국, 복지사회로의 이행 역시 정치권을 견인하는 시민사회의 행동이 답이라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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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신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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