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① 편의점 도시락 체험 일기

바쁘고 지갑 얇은 현대인을 위로하는 식당이 있다. 편의점이다. 직장인 평균 한 끼 식사비는 6000원을 웃돌고, 번화가에선 1만원이 넘는 음식도 숱하다. 그런데 편의점에선 4000원 안팎이면 따뜻한 밥과 다양한 반찬을 맛볼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삼각김밥’이 인기였다면, 이제는 ‘편의점 도시락’이다. 경제는 여전히 어렵고, 우리의 삶은 점점 더 여유가 없다. 인구 고령화와 삼포세대의 증가로 네 집 중 한 집은 혼자 사는 시대다(통계청). 나 홀로 간편하게 끼니를 때우려는 사람이 늘다 보니 ‘편도족(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현대인들은 어느 때보다도 가성비가 좋은 편의점 도시락을 찾고 있다. 20~30대만이 아니다. 편의점과 거리가 멀어 보이던 40~50대 중년층도 주요 고객이다.

궁금해졌다. 꾸준히 증가하는 편의점 도시락의 수요. 언론은 더 건강한 도시락을 만들겠다는 편의점 3사의 광고를 숱하게 전했다. 사실일까? 자주, 아니 매일 편의점 도시락만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마저 종종 들려오는 지금, 그들의 건강은 안녕한가? 우리는 ‘편도족’이 되어보기로 했다. 편의점 도시락만 먹고 살아도 괜찮은지 신체변화와 영양 상태 중심으로 알아봤다.

실험설계는 완벽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변인의 완벽한 통제가 불가능했다. 평소 우리의 식습관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건강했던가?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나? 알 수 없었다. 편의점 도시락 관련해선 흔한 영양분석 논문 하나가 없었다. 오랜 논의 끝에 자신을 ‘일반인’이라고 가정하기로 했다.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식습관을 가진 현대인에게 편의점 도시락이 끼치는 영향을 알고 싶었다.

어설프지만 나름대로 변인을 통제했다.

1. 평소 두 끼를 먹던 식습관을 유지하자.

먹는 횟수를 늘리면 몸 상태의 변화가 편의점 도시락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

2. 일상생활을 유지하자.

갑자기 운동하거나, 잠자는 시간을 바꾸는 등 생활방식을 바꾸면 몸에 영향을 줄 수 있다.

3. 대형 편의점 3사 도시락을 최대한 다양하게 먹어보자.

원래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편식하면 몸에 안 좋다. 특정 도시락만 먹는 것도 편식이다.

윤연정 기자는 평소 꾸준한 운동과 규칙적인 식사를 한다. 소식하고 건강식을 즐기며, 편의점 도시락은 한 번도 사 먹어 본 적이 없는 20대다. 강민혜 기자는 규칙적이되 평범한 식습관을 가졌다. 특별히 시간 내서 운동하지 않고, 편의점 도시락과 인스턴트 식품도 종종 접한다. 역시 20대다. 전문가들은 해당 실험 결과를 일반화시킬 수는 없으나 개인의 변화를 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했다.

실험 1주일째. 금전적인 문제와 실험설계의 한계에 부딪혔다. 3주 기획 실험이 중단됐다. 다만 이때까지 편의점 도시락 체험기사가 없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취재과정을 글로 남긴다. 일주일 동안의 체험일지(1편), 전문의 소견과 기자들의 체험 소회(2편)를 두 번에 걸쳐 넣는다.

▲ 1주일 동안 먹은 편의점 도시락 종류는 16개가 넘는다. ⓒ 윤연정

#실험 1일째

11월 10일 목요일 점심

연정 : CU 9첩반상 도시락 420g(691kcal)

태어나서 처음 편의점 도시락을 먹었다. 설렜다. 하지만 밥보다 반찬이 많았고 고기 햄 등 너무 다양한 육류가 들어있어 살짝 느끼했다. 이걸 앞으로 몇 주간 먹을 생각을 하니 실험 마지막 날이 까마득했다.

민혜 : CU 백종원의 한판도시락 435g(827kcal)

도시락 체험 첫날. 학교 내 입점한 편의점(CU)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도시락을 샀다. 어묵볶음에 간간이 섞인 마늘종을 제외하면 반찬에 채소가 없다. 육류가 대부분이라 포만감은 있다. 한 끼 식사로 나쁘지 않은 듯.

11월 10일 목요일 저녁

연정 : 세븐일레븐 7찬 도시락 424g(755kcal)

민혜 : 세븐일레븐 혜리의 간장 불고기 도시락 471g(840kcal)

세븐일레븐 도시락은 타 편의점 도시락과 달리 겉 포장에 영양성분 표시가 없다. 편의점 도시락은 현행법상 영양성분 표시 의무대상이 아니지만, 성분 표시가 없으니 찝찝하다. 흰쌀밥이 아니라 조가 섞인 잡곡밥인 건 좋았는데, 한술 떠보니 냄새가 심하게 난다. 오래 묵은 밥 냄새. 전자레인지에 한 번 더 돌렸지만, 냄새가 안 가신다. 다 못 먹고 반 정도 남겼다.

#실험 2일째

11월 11일 금요일 점심

연정 : GS25 김혜자맘 명가바싹 불고기 도시락 385g(755kcal)

먹었던 편의점 3사 도시락 중에 제일 실하고 맛있었다. 같이 주는 미역국도 좋았다. 다만 스티로폼 용기에 담겨 있어 뜨거운 물을 넣었을 때 환경호르몬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다.

민혜 : GS25 김혜자맘 6찬 도시락 348g(576kcal)

11월 11일 금요일 저녁

연정 : GS25 김혜자맘 등심 돈가스 도시락 438g(760kcal)

혜자맘 도시락이 나하고 그나마 잘 맞는 것 같다.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밥 먹는 시간이 기다려지지 않는다. 아직 물리진 않아서 괜찮았다. 옆에서 동기들이 순두부를 먹는데 박탈감이 느껴졌달 까? 맛있어 보이긴 했다. 편의점 도시락만 먹고 사는 건 정말 불가능한 걸지도 모르겠다.

민혜 : GS25 김혜자맘 명가바싹 불고기 도시락 385g(755kcal)

▲ 11월 12일에 있을 서울 민중총궐기 취재 사전 모임 가는 길. 기차 안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중이다. ⓒ 손준수

#실험 3일째

11월 12일 토요일 점심

연정, 민혜 : X

민중총궐기 취재 때문에 점심을 걸렀다.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다. 기자가 이런 체험을 시도하는 것은 아무리 작정해도 힘들다는 사실을 처음 느꼈다.

11월 12일 토요일 저녁

연정 : 세븐일레븐 혜리의 11찬 도시락 골드 500g(720kcal)

민혜 : 세븐일레븐 혜리의 11찬 도시락 골드 500g(720kcal)

반찬에 육류와 채소가 고루 섞였다. 청포묵, 버섯 볶음, 연근, 콩자반 등 다른 도시락에서는 못 보던 것들이다. 육류나 튀김류의 반찬을 줄이고 채소류를 더 넣어주니 느끼함도 덜하고 훨씬 좋다.

#실험 4일째

11월 13일 일요일 점심

연정, 민혜 : X

늦잠을 잤다. 전날 취재와 회식 참여 후유증이 크다. 오전에 숙취 해장을 위해 콩나물 해장국을 조금 먹었다. 어쩌다 보니 점심 도시락을 2일 연속 걸렀다. 이러면 안 되는데...

11월 13일 일요일 저녁

연정 : CU 백종원의 맛있닭가슴살 정식 도시락 482g(798kcal)

속이 너무 더부룩했다. 숙취 때문은 아니다. 불편한 속은 내리먹은 도시락으로 이미 며칠 동안 포화상태였다. 도시락에는 신선한 채소가 없고 다 볶은 거라 쉬며 먹기를 2~3번 했다. 며칠 먹어보면서 느낀 것은 CU백종원 도시락이 제일 짜고, 달고 매웠다. 대놓고 ‘나.가.공.육.이.에.요’ 하는 음식이 많이 담겨 있었다.

민혜 : CU 백종원의 한판도시락 435g(827kcal)

#실험 5일째

11월 14일 월요일 점심

연정 : CU 백종원의 한판도시락 435g(827kcal)

민혜 : CU 백종원의 맛있닭가슴살 정식 도시락 482g(820kcal)

편의점에서 모든 식사를 해결한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건강한 도시락을 고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닭가슴살 정식. 그런데 영양성분 표시를 보니 열량이나 지방 등 다른 도시락과 성분 차이가 거의 없다. 속은 느낌이다. 백종원 도시락 제조자들은 소시지와 달걀말이를 포기할 수 없나 보다. 복사 붙여넣기 한 마냥 모든 도시락에 들어있다. 데리야키 소스로 조리한 닭가슴살이 잘 데워지지 않아서 한 번 더 데웠다. 채소는 애호박 볶음 조금이다.

11월 14일 월요일 저녁

연정 : 세븐일레븐 혜리의 수제 등심 돈가스 도시락 478g(996kcal)

새벽 1시. 지금 나는 저녁 도시락을 먹기 위해 전자레인지에 도시락을 돌리고 있다. 점심때 처음으로 한계점에 부딪혀 토하고 싶은 것을 견디며 식사해서일까.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밤을 새울 예정이다. 일도 바쁘지만, 도시락을 먹고 바로 잘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생리현상이 적신호를 보낸다. 어쩔 수 없이 방귀가 새어 나오면 냄새가 좋지 않았다. 트림도 지속됐다. 내 상태는 어찌 계속 예민해져 간다. 우스갯소리로 ‘도시락 먹다가 나 예민해져서 화내도 이해해 줘’라고 얘기하고 다녔는데. 진짜 살짝 짜증이 나네.

민혜 : 세븐일레븐 혜리의 간장 불고기 도시락 471g(840kcal)

#실험 6일째

11월 15일 화요일 점심

연정 : 세븐일레븐 혜리도시락 사천& 숯불고기 492g(830kcal)

민혜 : CU 백종원의 우삼겹 정식 도시락 430g(780kcal)

올해 새로 출시한 우삼겹 정식 도시락을 골랐다. 소고기를 먹겠다는 일념이었다. 이제껏 먹은 백종원 도시락 중에 열량이 제일 낮다. 도시락을 고르면 이제는 채소가 얼마나 있는지부터 살펴보게 된다. 튀김류가 없어서 그런지 다른 도시락보다 덜 느끼했다.

11월 15일 화요일 저녁

민혜 : GS25 김혜자맘 명가바싹 불고기 도시락 385g(755kcal)

소화가 잘 안 된다. 자정이 다 돼서야 저녁을 먹는다. 처음 먹었을 때 검은깨를 올린 밥이 인상적이던 도시락을 골랐다. 그런데 이번 도시락은 밥이 한쪽으로 뭉쳐있고, 깨도 거의 없다. 편의점 지점마다 혹은 도시락마다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달걀과 햄을 섞어 튀긴 반찬이 느끼하다. 소화를 시켜야 해서, 먹고 새벽까지 잠을 못 잤다.

#실험 7일째

11월 16일 수요일 아침

연정 : GS25 김혜자맘 명가바싹 고추장불고기 도시락 405g(660kcal)

아침 8시. 어제 먹지 못한 저녁을 아침으로 먹고 있다. 여전히 소화되지 않고 배부르다. 도시락과 함께 나오는 사골국은 냄새가 심해 먹을 수 없었다. 도시락은 겨우 먹었지만, 조금 남겼다. 점심 시간이 불균형해지고 있다.

11월 16일 수요일 점심

연정 : CU 추억의 도시락 엄마손 그 맛 410g(600kcal)

민혜 : CU 9첩반상 도시락 420g(691kcal)

도시락 체험을 시작한 뒤로 점심 먹는 시간이 늦어졌다. 오전에 배고픔을 잘 못 느낀다. 소화가 잘 안 되는 느낌을 꾸준히 받는다. 오후 4시가 넘어서 점심을 먹었다. 일부러 열량이 적은 도시락을 골랐다.

11월 16일 수요일 저녁

연정 : CU 백종원의 부대찌개 415g(739kcal)

오랜만에 국물 있는 도시락을 먹었다. 뜨끈하다. 하지만 몇 숟가락 못 가 배가 불렀다. 가공 햄과 기름기가 엄청 많아 느끼했다. 역류하는 걸 참으며 먹었다. 요즘 배는 빈틈없이 꽉 찼는데 힘은 없고 머리가 띵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내가 도시락을 먹는 것인지, 도시락이 나를 먹는 것인지...

민혜 : 세븐일레븐 혜리와 행복 깐풍기&소시지 도시락 448g(841kcal)

※ 다음 편에서는 '전문의 소견과 기자들의 체험 소회(2편)' 기사가 이어집니다.


편집 : 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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