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저널리즘의 잣대로 평가한 ‘국정농단 보도’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水能載舟 亦能覆舟, <정관정요>).” 민심의 풍랑이 청와대를 덮쳤다. 지난 9일 국회에서 대통령탄핵안이 가결됐다. 주말 촛불집회에서 200만을 훌쩍 넘는 국민이 “하야하라”는 외침을 보낸 덕분이다.

민심에 불을 댕긴 건 언론이다. <한겨레> <조선일보> 등 종이신문부터 <TV조선> <JTBC> 등 종편방송까지 합심해 몇 달 전만 해도 40%대 ‘콘크리트 지지율’을 자랑하던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1974년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집요한 취재로 닉슨 대통령을 하야시켰던 워터게이트 사건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모든 언론이 비슷한 기여를 한 것은 아니다. <단비뉴스>가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바꾼 ‘박근혜-최순실게이트’ 사건을 이끈 언론 보도 면면을 분석했다.

단순 폭행 사건에서 ‘우병우게이트’로

비리는 뜻밖의 계기로 드러났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좀도둑 5명의 빌딩 침입 사건에서 시작했다. 한밤중 침입한 괴한들을 신고한 빌딩관리인은 이 사건이 대통령 사임으로 이어질 줄 꿈에도 몰랐으리라. 박근혜-최순실게이트도 다르지 않다. 시작은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대표의 폭행 혐의였다. 상습도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 대표는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에게 거액 수임료를 지급했다가 재판 결과가 좋지 않자 금액 일부를 돌려달라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가 이를 거부하자 정 대표가 최 변호사를 폭행했고, 최 변호사는 이를 경찰에 신고했다. 당시 최 변호사가 받은 착수금은 20억 원. 전직 부장판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유리한 재판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받아낸 돈이다. 이로써 인맥으로 사법 체계를 우롱하는 전관예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촉발됐다.

법조비리로 관심이 옮겨가면서 진경준 검사장과 역시 검사장 출신인 홍만표 변호사가 언론의 타깃이 됐다. 특히 진 검사장은 고위공직자재산공개 과정에서 게임회사 ‘넥슨’의 거액 주식을 뇌물로 받은 혐의가 드러났다. 아무리 캐도 끝이 없는 비리에 민심이 성을 내기 시작했다. 화살은 검사장 검증을 맡는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으로 향했다.

이 와중에 <조선>이 우 수석 개인 비리 정황을 최초 보도했다. <조선>은 7월 18일 자 보도에서 넥슨이 우병우 처가의 부동산을 시가보다 높은 가격에 매입해줬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로 △홍만표 변호사와 ‘몰래 변론’ △아들 병역 특혜 △가족회사 통한 탈루 등 각 언론사에서 우 수석의 비리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언론은 사설을 통해 ‘우병우게이트’를 정면에서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8월 17일부터 29일까지 12일간 우 수석과 관련한 8개 사설을 썼고, 보수신문인 <동아일보>도 8월 말까지 6개 사설을 통해 우 수석의 즉각 사퇴와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 8월 한 달간 <동아>가 내보낸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사설. 보수 신문인 <동아>는 하루 간격으로 우 수석의 사퇴를 주장했다. ⓒ 신혜연

송희영 주필 낙마와 <조선>의 침묵

청와대는 우 수석을 적극 두둔했다. 개각을 하면서도 우 수석만은 민정수석 지위를 유지했다. 언론을 향해 반격까지 했다. 우 수석 사퇴 압박이 거세지던 8월 21일, 청와대는 <연합뉴스> 통화에서 “우 수석에 대한 첫 의혹 보도가 나온 뒤로 일부 언론 등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이 우병우 죽이기에 나섰지만, 현재까지 우 수석 의혹에 대해 입증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우 수석을 지키기 위해 국내 언론을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으로 규정한 것이다. 특히 우 수석 비리 의혹을 처음 밝혀낸 <조선>을 두고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 지칭했다는 점이 화제가 됐다. 미디어 비평지 <미디어오늘>도 8월 22일 자 ‘아침신문 솎아보기’ 코너에서 ‘청와대가 조선일보를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 불렀다’를 기사 제목으로 뽑아 중요하게 전했다.

우 수석에 대한 언론의 비판은 줄어들기는커녕 더 심해졌다. 그러던 중 사건이 터진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8월 29일 국회 정론관에서 <조선> 송희영 주필의 실명을 거론하며 그가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2억 원 상당의 접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조선>은 이날 송 주필을 보직 해임했다. <조선>에서 우 수석에 대한 비판 보도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김진태 의원은 송 주필 비리를 폭로하면서 출처는 공개하지 않았다. 우 수석 비판 보도를 잠재우려는 청와대의 공격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 <조선>에 실린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보도 건수. 하루 평균 3건씩 꾸준히 이어지던 보도는 송희영 주필 낙마 이후 0으로 수렴하기 시작했다. ⓒ 신혜연

<TV조선>이 흘린 미르·K 실마리

변화의 동심원은 다른 곳에서 퍼져 나왔다. 다른 언론들이 우 수석 관련 보도에 매진할 때, <TV조선>은 미르·K재단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렸다. 이진동 사회부장이 이끄는 <TV조선> 특별취재팀은 7월 26일 ‘청와대 안종범 수석, '문화재단 미르' 500억 모금 지원’ 보도로 안종범 수석이 기업들로부터 미르재단 기금을 모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 <TV조선>은 7월 말부터 미르 재단 관련 의혹을 보도했다. ⓒ TV조선 화면 갈무리

<TV조선>은 8월 중순까지 미르·K재단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취재과정에서 미르재단과 K재단이 △사업계획서까지 똑같은 쌍둥이 재단이며 △엉터리 회의록을 올리는 등 허술하게 운영되고 △안 수석과 차은택이 재단에 깊이 관여했으며 △기업들이 원치 않게 거액의 돈을 출연했다는 점 등이 밝혀졌다. 특히 <TV조선>은 단독보도를 통해 미르·K재단과 청와대의 연관성을 상당 부분 밝혀냈다. (△7.28 ‘미르 모금 기업 불만 많았다’ △7.28 ‘안종범, 미르재단 사무총장 사퇴 종용’ △8.4 ‘케이스포츠, 대통령 순방행사 참여’ △8.11 ‘미르, 대통령 순방 TF에 참여…비선조직이었나?’ △8.12 ‘미르·케이스포츠 행사마다 등장하는 박 대통령’)

그러나 후속 보도는 8월 18일을 기점으로 한 달간 뚝 끊긴다. <TV조선>은 9월 20일에야 다시 미르·K를 뉴스보도에 등장시켰다. 그나마 국정감사에서 여야가 미르·K 관련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 전달에 그쳤다. 8월 21일 청와대로부터 “부패기득권 세력”이란 비판을 받은 시점과 후속 보도 중단 시점이 절묘하게 겹친다.

▲ <TV조선>은 8월 중순 이후 한동안 미르·K 재단 관련 보도를 중단했다. ⓒ 신혜연

<한겨레>, 진실이 감춰졌을 법한 밑바닥을 훑다

그렇게 묻힐 뻔했던 사건은 <한겨레> 후속 보도로 되살아났다. <한겨레>는 최초로 미르·K재단과 최순실의 연결고리를 밝혀냈다. 박근혜-최순실게이트의 서막을 연 셈이다. <TV조선>과 달리 주요취재원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오로지 ‘발품 팔이’ 취재로 이룬 결과물이다.

7월 말, <TV조선> 보도를 접한 <한겨레> 기자들은 “깜짝 놀랐다.” “TV조선이 보도하지 않았다면 미르재단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한겨레> 김의겸 기자는 10월 10일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 길로 취재팀을 꾸려 미르재단 취재에 착수했다. 워터게이트 특종 당시 우드워드를 이끌었던 'deep throat(핵심 제보자)' 같은 건 없었다.

“바닥부터 훑는 수밖에 없었다. 강남구 삼성동 인근 2~300m 반경을 샅샅이 훑으며 최순실을 아는 사람을 찾았다.” <한겨레> 박창식 전략기획실장은 지난 6일 종로 2가 '문화공간 온'에서 가진 독자와의 만남에서 박근혜-최순실게이트 취재 뒷이야기를 그렇게 전했다. 누구 하나 쉽게 입을 떼지 않았지만, 끈질긴 취재 끝에 9월 20일 K스포츠재단 이사장이 최 씨의 단골 마사지 센터장이라는 사실을 보도한다.

▲ <한겨레> 박창식 기획실장이 지난 6일 독자들에게 박근혜-최순실게이트 국면에서 <한겨레>의 활약상을 설명하고 있다. ⓒ 박찬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취재였지만, 내부고발자가 없는 상황에서 진실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었다. 박창식 실장은 2014년 정윤회 국정개입 사건을 예로 들었다. 박 실장은 당시 실체를 파고드는 추가 취재가 없었던 점을 아쉬워했다. <세계일보>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문건을 입수했지만, 이런 정황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어 ‘파문’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반면 <한겨레>는 “미르·K재단 관련 비리를 집요하게 캐낸 끝에 ‘최순실’이라는 실체를 건져내는 데 성공했다”는 게 박 실장의 평가다. 후속보도도 ‘발품 팔이’ 취재의 연속이었다. 삼성동 주민, 부동산 중개업자, 이화여대 교직원, 학생의 증언에서 캐낸 소소한 사실로 진실의 그물망을 엮어가면서 수많은 특종보도를 쏟아냈다.

▲ <한겨레>는 9월 중순부터 미르·K 관련 단독 보도를 쏟아낸다. ⓒ 신혜연

<한겨레>의 고독한 특종

<한겨레>가 단독보도를 이어가는 와중에 어떤 언론도 후속 보도를 내놓지 않았다. 평소 단독 보도를 놓친 언론들이 너도나도 취재 경쟁에 뛰어드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한 달 넘게 ‘단독 레이스’를 치르던 <한겨레> 기자들은 흥이 나기는커녕 맥이 풀렸다고 털어놨다. 아무리 단독 보도를 쏟아도 세상은 고요했다. “이슈를 묻어버리지 않으려고 미르·K 관련 자료를 경쟁지 기자들에게 흘리기까지 했다.” 박 실장의 말이다.

언론들의 ‘기이한 침묵’은 이어졌다. 특히 7월부터 단독보도를 이어가던 <TV조선>이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을 <한겨레> 기자들은 답답한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다. 특별취재팀을 이끌던 김의겸 기자는 9월 29일 <한겨레> 칼럼에서 <조선> 방상훈 사장에게 편지를 썼다. <조선>이 가지고 있는 ‘실마리’들을 보도로 내보낼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 <한겨레> 김의겸 기자는 9월 29일 지면 칼럼에서 <조선>의 후속보도를 촉구했다. ⓒ 한겨레

<TV조선>은 올해 10월 25일, 2014년 11월 3일에 찍힌 CCTV 영상을 공개했다. ‘의상실 영상’으로 불리는 이 동영상은 공개되자마자 큰 화제가 됐다. 영상 속에서 최순실 씨는 의상들을 둘러보는데, 이때 최 씨가 확인한 의상들은 모두 박 대통령이 얼마 후 해외순방에서 입었던 옷으로 확인됐다. 이영선 청와대 제2부속실 행정관과 윤전추 3급행정관이 등장해 최 씨의 휴대전화 화면을 옷으로 닦는 등 공손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박창식 <한겨레> 기획실장은 영상 공개 시점에 의문을 제기했다.

“상황이 바쁘게 돌아가는 와중에 새로 취재한 내용일 리가 없지요. 이미 이전에 입수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잖아요. 정부 고위관료들이 최순실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그대로 담은 엄청난 영상이에요. 당연히 후속보도를 하고도 남을 사안인데, 그동안 왜 숨겼을까요?”

실제로 <TV조선>은 영상을 사전에 입수하고도 방영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7일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꾸려진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참석해 <TV조선>에 2014년 해당 CCTV 영상을 제보했다고 밝혔다. 고 씨는 바로 보도되길 바랐지만 <TV조선> 측이 고 씨의 신변과 검증 부족을 이유로 보도를 미뤘다고도 했다.

<TV조선>을 포함한 대부분 언론이 침묵하는 가운데 김 기자가 이끈 <한겨레> 특별취재팀은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전국언론노동조합으로부터 각각 ‘이달의 좋은 보도상’과 ‘제26회 민주언론상’을 받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보도 내용은 고스란히 검찰 공소장에 담겼다. <한겨레>에 따르면 검찰 공소장에는 최씨가 대통령과 짜고 이사장 등 재단 주요 임원을 임명한 사실, 미르재단 설립 과정에서 특혜를 준 사실, 대통령이 대기업 회장들을 모아 재단 출연을 강요했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모두 <한겨레>에서 보도했던 내용이다. 반면 검찰은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진행되는 내내 ‘언론 보도를 따라잡느라 급급하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100만 촛불 기폭제 된 <JTBC> 보도

국면을 크게 전환한 건 <JTBC>다. <JTBC>가 10월 24일 방송에서 최 씨의 태블릿PC를 공개하면서 최 씨가 국정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공개됐다. 그동안 최 씨 관련 언론 보도에 강하게 반박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보도 다음 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집권 초에만 도움을 받았다"고 변명했으나, 다음날 <JTBC>는 태블릿PC에 담긴 집권 중반기 문건을 공개해 박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했다.

얼마 뒤 최 씨가 <세계일보> 인터뷰를 통해 ‘태블릿PC는 내 것이 아니’라고 반박하자 태블릿PC에 저장된 최 씨의 셀프 카메라 사진을 공개해 논란을 종식했다. <JTBC>는 태블릿PC 분석을 비롯한 최 씨 관련 보도를 이어가며 10월 27일, <뉴스룸> 시청률이 8.5%를 달성했다. <JTBC>의 태블릿PC 보도가 방송된 주말인 10월 29일에는 서울 도심에서 최초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 10월 24일 뉴스룸 방송 보도. ⓒ JTBC 화면 갈무리

결정타를 날린 건 <JTBC>지만, 묵묵히 최 씨의 그림자를 밟아온 <한겨레>는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한겨레>가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등장시켰고, 두 달간 불이 꺼지지 않게 이슈를 계속 끌고 갔다. JTBC만 기억하고 <한겨레>는 평가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나 서운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박 실장의 말이다.

<오마이TV> 등 인터넷방송 ‘현장 생중계’ 큰 관심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이르기까지 언론 보도는 민심을 모으는 데 큰 구실을 했다. 특히 열악한 장비와 인력에도 불구하고 집회의 전 과정을 생중계한 <오마이TV>와 <팩트TV> 등은 집회 규모를 키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들 매체는 집회참가자들에게 직접 마이크를 들이대는 등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방송 진행으로 여과되지 않은 국민의 육성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 모든 언론이 비슷한 기여를 한 건 아니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발표 이후에야 최 씨의 국정농단 의혹을 보도하기 시작한 언론이 대부분이다. 지상파 3사의 성적표는 특히 초라하다. 박근혜-최순실게이트 국면에서 단독보도는커녕 따라잡는 보도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국정감사가 시작되고, 여론의 관심이 쏠리면서 이제 모든 방송에서 최 씨 관련 보도가 쏟아지고 있지만, 모든 보도가 권력과의 유착관계를 날카롭게 조준하는 것도 아니다. △정유라 2세 △고영태의 직업적 배경 △최순실 종교 등 선정주의로 흐를 수 있는 보도도 적지 않다. <한겨레>가 취재과정에서 파악했으나, 보도할 때는 최대한 배제했다고 밝힌 것과 대조된다.

탄핵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언론의 역할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워터게이트’ 특종을 터뜨린 <워싱턴포스트> 기자 칼 번스타인은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진실(the best obtainable version of the truth)'을 제공하는 것이 기자들의 역할”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벌써 한 달 넘게 주말마다 광장으로 향하는 국민은 한국 언론에게 ‘저널리즘’의 의미를 묻고 있다. “이게 최선입니까?”


편집: 김평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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