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촛불

▲ 곽호룡 기자

<금각사>의 미조구치는 수백 년 이어온 문화재 ‘금각사’에 불을 지른다. 미조구치의 삶은 열등감으로 뒤틀렸다. 그는 말더듬이다. 그가 하려는 말은 한참을 입안에서만 맴돌다 때늦게야 뱉어진다. 아이들은 비웃는다. 그는 그런 자신을 추악하다고 여기고 '아름다움'에 집착한다. 그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금각사다. 아름다움은 상상 속에만 있고 현실은 자신의 모습처럼 초라하다. 그는 아름다움을 완성하기 위해 현실의 금각사에 성냥불을 그었다.

미조구치가 아름다움을 위해 불을 붙였다면, 광장의 학생들은 '정의'를 위해 촛불을 든다. "돈도 실력이야. 부모를 원망해." 정유라의 글에 불이 난 또래 학생들은 광장으로 나온다. 학생들은 정의와 평등을 말하는 교과서의 내용과 전혀 다른 현실의 뒤틀림에 분노한다. "세상 돌아가는 게 다 그렇지" 세상살이에 치일 대로 치인 어른은 읊조린다. 노련한 어른인 이카로스의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적당한 높이로 하늘을 난다. 반면 혈기왕성한 이카로스는 끝을 보고자 두려움 없이 태양 속으로 날아간다. 3·1운동,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6월항쟁... 사회에 정의를 요구하는 시위는 대부분 학생의 피로 불붙었다. 이번 시위에서 부끄러움에 이끌려 광장에 나오는 어른도 적지 않다.

▲ 시민들의 분노는 이카로스의 날개처럼 허무하게 타버릴 것인가?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이 예고됐다. ⓒ Flickr

<사당동 더하기 25>는 사회학자 조은이 미국에서 배운 이론을 한국사회에 적용한 결과물이다. 그는 25년간 사당동 빈민층의 삶을 추적하며, 학자인 자신과 연구대상인 빈민층 간 거리감을 뼛속까지 느낀다. 1평도 안 되는 좁은 방에 한 식구가 끼워 자는 것을 보고, 조교가 ‘칼잠’이라고 일러준다. 그는 조교가 마치 ‘교수님은 그것도 모르시냐. 내가 그렇게 산다’고 눈빛으로 말한다는 것을 알아챈다. 윤동주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부끄러워했다. 식민지 현실에서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백이다. 그에게 부끄러움은 ‘독립운동’이라는 시대정신과 소통에서 생겨났다. 소통은 공감능력에서 나온다.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는 밤늦도록 휘황찬란한 불빛을 켠 상류층 사회를 동경한다. 옛 연인 데이지가 사는 곳이기도 하다. 그는 상류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범죄행위도 마다치 않는다. 마침내 부자가 되어 다른 상류층처럼 호사스런 파티로 밤하늘을 밝힌다. 하지만 데이지는 돌아오지 않는다. 개츠비가 파티의 휘황한 불빛이 아니라 가난한 옛 시절을 떠올리는 촛불을 들고 찾아갔으면 데이지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을까? 처음부터 상류층인 데이지에게 가난했던 군인에서 졸부가 된 개츠비의 화려함은 전혀 ‘위대’하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풀어놓은 세 번의 담화문에서 책임을 떠넘기는데 바빴다. 진심 어린 반성은 찾기 힘들다. 광우병 촛불시위 때 ‘아침이슬’ 노래를 떠올리며 눈물을 지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한순간의 흔들림’조차 전달되지 않는다. 그것이 정치적 수사일지 몰라도 박 대통령은 그럴 필요성조차 못 느끼는 것일까? 처음부터 청와대 철옹성에서 자라 ‘불통’의 행보를 걸어온 박 대통령에게 가난하지만 순수한 이들의 ‘촛불’은 전혀 ‘위대’하지 않는 듯하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황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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