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우리가 바꾸자] 최효정 기자

   
▲ 최효정 기자

정치는 권력투쟁 그 이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이익 조정과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본래 목표를 잃었다. ‘대통령제는 죽음의 키스’라는 칼 뢰벤슈타인의 말도 있지만, 대통령은 우리에게 애증의 대상이었다. 우리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대통령을 뽑았고, 항상 그에게 실망해왔다. 87년체제가 시작돼 대통령을 직접 뽑는 절차적 민주성이 확보된 이후에도 우리는 ‘민주주의'에 목말라야 했다.

최순실 사태는 박근혜 개인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집중과 사유화를 현행 제도로 막을 수 없는 구조의 문제다. 지난 모든 대통령들이 비선이 관련된 부패의 문제를 드러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강력한 대통령제의 한계를 깨달았다. 수평적이며 민주적인 권력구조를 어떻게 만들지 논의가 시급하다.

권력구조는 일단 건강한 권력 분점을 지향해야 한다. 정치개혁 없이 틀만 바꾸는 개헌은 실질적으로 정치를 바꾸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논하기 전에 시행되어야 할 것은 ‘합의제 민주주의' 모델의 도입이다. 행정부에 종속된 정당이 아니라, 다원적 가치가 반영되는 의회중심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정당문화의 바탕이 탄탄하게 다져져야 한다.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소외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이 자리 잡는 문화가 우선이다. 승자독식의 다수결 민주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적대적 공생의 거대양당 체제로는 다원화한 사회의 이익 갈등을 조정할 수 없다. 정치적 독과점 체제가 제왕적 대통령의 행태와 맞물려 87년 이후 우리는 대권을 위한 투쟁과 정파 싸움이 정치를 대신하는 구태를 반복해왔다.

정당구도 형성에 제일 중요한 조건은 선거제도다. 선거제도부터 개혁한 뒤 개헌으로 가도 늦지 않다. 독일식 비례대표 도입과 대통령 결선투표제가 필요하다.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위해서다. 지금처럼 ‘제조된 다수'에 의해 뽑힌 대통령과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로 당선된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주축이 되는 정권과 정당은 비례성이 매우 떨어진다. 후보들이 30% 정도 지지율을 갖고도 당선될 수 있어 나머지 70%는 정치 혐오에 빠지기 쉽다.

▲ 독일 의회. 독일식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몇개 권역으로 나눠 전체 의석수를 할당하고, 권역별로 정당득표율에 따라 정당 의석수를 결정한 뒤 지역구 당선자로 이를 먼저 채우고 부족한 부분은 비례대표로 채우는 제도를 말한다. ⓒ pixabay

인물이나 지역색에 기댄 정치가 아니라, 정책 중심의 전국정당이나 후보가 등장할 수 있으려면 비례대표를 늘리고, 정당명부식으로 바꿔 입법부의 권위를 세우고 대통령 역시 결선투표를 통해, 국민이 최악을 피할 수 있는 기회를 한번 더 가져야 한다. 대통령 결선 투표제 도입해야 다양한 세력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고 세력간 연립이 가능해진다.

뉴질랜드는 우리보다 먼저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다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합의형 민주주의 국가로 변신했다. 거대 양당체제에 익숙했던 정치체제는 자연스레 다원화했다. 양당제가 다당제로, 승자독식이 협치의 모델로 바뀌는 것은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이익조정을 통한 사회정의 실현이 정치의 목표라면, 그 짐은 제왕적 ‘개인’에게는 너무 무겁다. 책임지는 집단이 정치의 주체가 돼야 한다. 정당이 주체가 되는 책임정치를 위해서는 그 정당의 성숙을 도와줄 정치개혁이 우선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대통령이 불쑥 개헌론을 던졌다. ‘게이트’가 열리지 않도록 하려는 불순한 의도였다. 이를 간파한 시민사회와 야권은 ‘수사와 퇴진이 먼저’라며 유례없는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어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어느 대통령 할 것 없이 불행한 말로를 겪게 되는 이유는 권력구조가 잘못 짜여있기 때문이다. <단비뉴스>는 다음 대선 전이든 후든 개헌론이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 미리 논쟁의 터를 마련하기로 했다. 마침 이봉수 교수의 튜토리얼 시간에 제출된 과제들 중에 학생들의 다양한 시각을 엿볼 수 있는 글이 많아 토론과 첨삭을 거친 뒤 연재한다. 권력구조 말고도 새 헌법에 담을 다양한 제언과 참신한 시각들을 환영한다. (편집자)

편집 : 강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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