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우리가 바꾸자] 박찬이 기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대통령이 불쑥 개헌론을 던졌다. ‘게이트’가 열리지 않도록 하려는 불순한 의도였다. 이를 간파한 시민사회와 야권은 ‘수사와 퇴진이 먼저’라며 유례없는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어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어느 대통령 할 것 없이 불행한 말로를 겪게 되는 이유는 권력구조가 잘못 짜여있기 때문이다. <단비뉴스>는 다음 대선 전이든 후든 개헌론이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 미리 논쟁의 터를 마련하기로 했다. 마침 이봉수 교수의 튜토리얼 시간에 제출된 과제들 중에 학생들의 다양한 시각을 엿볼 수 있는 글이 많아 토론과 첨삭을 거친 뒤 연재한다. 권력구조 말고도 새 헌법에 담을 다양한 제언과 참신한 시각들을 환영한다. (편집자)

 

▲ 박찬이 기자

한국의 대통령제는 실패한 제도다. 최순실-박근혜 스캔들이 터진 뒤 이제 국민은 대통령이 한국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거라 믿지 않는다. 지지율 5%와 민중총궐기가 이를 입증한다. 제도화한 권력질서, 곧 권력구조를 바꾸는 개헌이 필요하다.

원래 대통령제의 특징은 권력분립주의다. 행정부와 입법부는 조직과 기능에서 서로 분리되어 최대한 독립성을 유지하도록 되어있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입법부와 행정부는 서로 견제하고 두 권력주체간 균형을 유지하면서 어느 한 부의 독주를 방지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하기에는 의회가 무능해서 독주를 막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근본원인은 현 대통령제 자체에 내재된 결함이다. 대통령제가 내각제와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정부형태가 갖는 장점들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고 오히려 모순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견제와 균형을 달성하기가 매우 어렵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사실 이원집정부제에 가깝다. 총리 등 의원내각제의 요소가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권형 대통령제는 역사적으로 실패했다. 바이마르헌법은 2원집정부제와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결과 기능이 마비되어 나치의 등장을 초래했다. 이를 두고 뢰벤스타인은 대통령제와 유럽식 의회제도의 결합은 ‘죽음의 키스’라고 표현했다. 오늘날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결부한 정부구조로는 프랑스가 대표적인데, 뢰벤스타인은 프랑스 5공화국 헌법은 ‘드골을 위한 맞춤양복’이라 표현했다. 드골이 물러난 지 40년이 되었지만 5공화국 정부체제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다만 근래 대통령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단축했을 뿐이다. 프랑스에서는 그간 좌파 대통령에 우파 내각 또는 우파 대통령에 좌파 내각이란 불안한 ‘동거정부’가 오랜기간 지속되어왔다. 2원집정부제는 가장 불완전한 정부구조인 셈이다.

대통령제에서 나오는 대통령이라는 인물도 불안정한 요소를 갖고 있다. 과거 한국 정치는 보스로 불리는 이들이 지역주의 정당을 기반으로 강력하게 정치무대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다. 의회는 정당이 장악하고 대통령은 인물을 중심으로 통치하다 보니 ‘견제와 균형’ 논리가 변형돼 대립의 정치가 되고 말았다. 한국 대통령제의 효시인 미국 대통령제를 고안한 사람들은 권력을 최대한 분리하고자 했다. 그래서 인물을 보고 선택하는 대통령제도는 제도적 차원에서는 그 사람에게 권력을 넘겨주지 않는 부정합적 제도가 되었다. 인물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 대통령제가 제도적으로는 특정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이 선택한 지도자에게 권력을 집중시키지 않는 자체모순이 발생했다. 한국 정치가 혼란스러운 것은 제도와 인물이 둘 다 시원치 않기 때문이다.

▲ 영국 의회. 영국은 대표적인 의원내각제 채택 국가다. ⓒ pixabay

인물중심의 정치는 지속성이 약하다. 특정인물에 대한 기대는 빨리 식어버린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독재나 무능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은 대통령제보다 제도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낮은 의원내각제를 택하는 것이 옳다. 의원내각제도 단점은 많다. 2차세계대전 이후 권력구조를 실질적으로 바꾼 나라도 8개밖에 없다. 내전에 찌든 나이지리아와 시에라리온이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를 번갈아 실시한 적이 있다. 그리고 스리랑카, 수리남, 프랑스, 파키스탄은 의원내각제와 이원집정제를 각각 경험했다. 대부분 이원집정제를 매개로 권력구조를 바꾸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도 의원내각제가 우월하다고 볼만한 근거는 많다. 가장 확실한 근거는 미국을 뺀 선진국은 거의 다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슬란드가 개헌포럼을 만들어 국민의 의견을 듣고 개헌 과정 전체를 투명하게 공개한 것처럼 우리의 10차 헌법개정도 반드시 국민의 참여를 보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국민개헌위원회`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권력구조 개편은 정치인의 손에 맡길 일이 아니다.


편집 : 강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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