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윤지현

▲윤지현 기자
서기 2119년,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지 어느덧 150년이 흘렀다. 흑백TV를 통해 그가 달 표면에 성조기를 꽂는 장면이 전세계로 생중계됐다는 사실도 아득한 옛 이야기일 뿐이다. 그간 지구와 달의 관계는 많이 달라졌다. 달은 더 이상 망원경으로만 자세히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10년 전 달 여행 상품이 출시되면서 달은 죽기 전에 한 번쯤은 꼭 가봐야 할 관광지가 되었다.

인간이 달에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게 해준 초경량 우주복과 무중력 건축기술의 개발은 우주과학계에 큰 획을 그었다. 학자들은 몇 백 년 전부터 달 여행이 현실화할 것이라 내다봤다. 눈치 빠른 한국계 다국적 기업들은 달 관광 상품의 사업 가능성을 예측하고, 개발이 본격화하던 2100년경부터 거액의 연구비와 건설비를 투자해왔다. 자본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투자기간 10년 만에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 상품이 나왔고, 부유층에서는 달 여행이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잡았다.

가장 인기 있는 명소는 '토끼방아(Rabbit Mill)'이다. 달여행사들은 한국의 전래동화를 상품화해 ‘방아 찧는 토끼’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한국인들이 예부터 달을 보며 토끼가 방아를 찧는 모습을 연상했던 데 착안한 것이다. 관광객들은 가이드를 따라 방아의 중앙 지점인 ‘토끼방아’를 방문해 그곳에서 직접 떡방아를 찧어볼 수 있다. SNS 사이트에서는 달여행을 다녀온 부유층 자제들의 떡방아 인증샷 업데이트가 줄을 이었다. 하나같이 우주복 위에 토끼 귀 모양 머리띠를 두르고 방아를 찧는 포즈였다.

암스트롱이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했던 ‘고요의 기지(Base of Tranquilit)’도 인기코스다. 관광이 시작된 초기, 기업들은 달 여행 홍보 차원에서 국내 대형미디어그룹의 인기 여행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7박 8일’ 제작진과 연계해 암스트롱 유적지 탐방기를 제작했다. 달 여행 인기가 날로 치솟자 관광객들 편의를 위해 케이블카도 설치됐다. 케이블카를 타고 ‘달 최고봉(Top of the Moon)’에 이르면 태양과 지구가 더 크게 보인다는 후문이 사람들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암스트롱처럼 달 위에 발을 디뎠다.

그러는 사이 지구에서 보는 달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다. 금빛이던 달은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뒤덮이면서 본래의 색을 잃었다. 울긋불긋 여드름이 난 얼굴 같다. 토끼 문양도 예전처럼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관광객 숙소를 짓느라 달의 지형이 많이 바뀐 탓에 이제는 두더지처럼 뭉툭해졌다. 노인들은 달이 예전 같지 않다며 혀를 끌끌 찼다.

이 이야기는 가상이다. 하지만 지구의 유명한 관광지로 대신한다면 실제 일어나고 있을 듯한 일이기도 하다. 등산로 입구에 수없이 자리잡은 관광상품 판매대, 천편일률적인 메뉴를 내놓는 음식점, 러브호텔 같은 것들이 그 예다. 얼마 전에는 시ㆍ도ㆍ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더 쉽게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개발하면 지역 경제가 활성화할 것이라는 논리다. 한 여행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방문한 지역에는 관광업계 큰손들이 돈 될 만한 게 없나 싶어 하이에나처럼 몰려든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200년이 지난 뒤에는 ‘지구를 지키자’는 환경운동가의 슬로건이 ‘태양계를 지키자’로 바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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