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촛불집회

▲ 곽호룡 기자

촛불집회에 갔다. 발길 내키는 대로 걸었다. 광화문 앞에서 농민 시위대를 만났다. 농민들이 상복을 입고 청와대가 쓰인 대형상여를 멘 장면에 시선이 멈췄다. '아이고~ 아이고~' 하는 곡소리를 '하-야~ 하-야~'로 풍자한 구호에 시민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엄중한 퇴진요구에 웃음의 미학이 피어나고, 역설적 시위문화에 민주주의가 날개를 단다. 시민들이 많이 몰리지 않은 곳에서는 소규모 공연이 발길을 붙잡았다. 타악기에 노래, 1인 퍼포먼스.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그렇게 3시간여를 걷다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촛불을 든 시민 사이로 야식거리를 고르는 경찰이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진다. 같은 국민이다.

촛불행렬이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에 뒤를 따랐다. 내자동 로터리는 시위허가가 나지 않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한참을 오도가도 못 하고 있을 때 뒤에서 경적소리가 들린다. 햄버거 배달 오토바이가 시위대 한가운데로 길을 트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 와중에 누가 햄버거를 시켜먹나?" 엉뚱한 상황에 실소가 터졌다. 오토바이가 터준 길을 따라가 보니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는 방벽이 나왔다. 방벽 앞은 자유발언의 마이크 소리, 나아가고자 하는 시위대의 구호, 더 이상 가지 말라는 경찰의 경고,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뒤엉켰다. "이렇게 좁은 곳에서 투쟁 못하겠다! 비켜주세요! 넓은 데로 가게!" 그 말에 다시 한 번 웃음이 번졌다.

▲ 12일 민중총궐기,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에 모여 저마다 목소리를 냈다. ⓒ 곽호룡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웃음을 두 종류로 나눈다. 그에 따르면 웃음은 원래 악마의 것이다. 누군가 웃기 시작하면 이내 모두가 웃는다. 전염된 웃음 속에서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낀다. “악마의 웃음은 사물의 부조리를 가리킨다.” 신의 질서를 부정하는 악마는 웃음마저 어떤 의도나 목적이 없다. 광대의 웃음이다. 쿤데라는 웃는 방법을 몰랐던 천사가 악마의 웃음을 모방했다고 이야기한다. 어딘가 어색한 억지웃음 냄새가 난다. “천사는 이 지상의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고 현명하게 구상되었으며 선하고 의미 가득하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싶었다.” 천사는 질서를 세우기 위해 웃는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 대부분 언론은 부조리한 프레임으로 시위대를 끼워 맞췄다. 집시법을 어긴 불법시위. 광우병 진위여부와 루머에 ‘선동된’ 시민. ‘질서’의 관점에서 시위대를 폭력집단으로 낙인찍었다. 2016년 촛불집회에도 일부 언론의 태도는 다르지 않다. 폭력사태가 거의 없는 ‘평화집회’. 법의 잣대로 시각을 좁히는 일은 다른 쟁점을 가린다. 법과 질서가 바로 선 세상을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짓는 것은 천사의 몫이다.

'야마(山)'는 기자들 사이에서 쓰이는 은어다. 평지에 우뚝 솟은 산처럼 기사에 일관된 주제를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홀로 우뚝 솟은 산은 없다. 능선은 높낮이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오르락내리락 하며 서로 이어진다. 이번 촛불집회가 그렇고, 다양한 의견이 모인 민주주의가 그렇다. 현장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끄집어 내 등고선을 그리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평화집회’ 시각은 너무 좁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박경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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