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학문

▲ 민수아 기자

캠퍼스를 배경으로 하는 미국의 청춘 영화를 몇 편 보면 흥미로운 소재가 눈에 띈다. 바로 프래터니티(fraternity)와 소로리티(sorority)다. 대학 내 남학생과 여학생의 비밀 사교 클럽을 가리킨다. 단순한 엘리트 집단의 사교모임이라기보다 사회에서 주류로 성장하기 위한 인맥 형성의 디딤돌로 쓰인다. 프래터니티는 페이스북의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의 실화를 다룬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도 나온다. 마크 저커버그는 실제로 하버드 대학교의 프래터니티 ‘파이널 클럽(Final Club)’에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사회적 성공이 보장된 커뮤니티에 속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중세 수도원을 중심으로 순수학문에 정진하는 대학의 초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시대가 변하면서 대학은 달라졌다. 일제의 손에 근대적 대학이 처음 설립된 우리나라 대학도 과거와는 분명히 다르다. 경제논리로 기초학문 학부가 없어지는가 하면 취업에 유리한 경영학 강의는 신청 기간을 놓치면 수강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인기다. 서울의 몇몇 사립대학들은 대기업들이 인수했을 정도로 자본의 영향력이 거세졌다.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2014년 기준 70.9%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 이 가운데 ‘학문 정진’이라는 순수 목적을 가진 학생은 몇이나 될까? 기회 불평등 사회인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을 탓할 수는 없다. 학생은 자유의지로 특정 목적을 갖고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은 그 목적을 실현해 준다. 여기서 ‘학문 정진’이 목표가 아닌 학생들은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 지식인이라는 정체성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지식인을 ‘지적 능력에 관계되는 일을 통해 명성을 획득하고, 사회와 기존의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자신들의 명성을 남용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개인의 생활 또는 경제적 생존을 위해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들은 학자는 될 수 있어도 지식인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을 적극적으로 비판한 노암 촘스키 정도 돼야 ‘저항적 지식인’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이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남발되거나 요구되는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 이화여대 의류산업학과 학생들은 이대 생활환경관에 마련된 ‘의류한풀이존’에 정유라 사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포스트잇 메모로 표현했다. Ⓒ 구글 이미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불리는 최순실 씨의 딸 정 모양 사태를 둘러싸고 이화여대 지식인 그룹의 목소리는 거셌다. 학생들은 정 씨의 입학과 성적 특혜 의혹을 대자보와 포스트잇으로 알렸다. 이대 130년 역사상 처음으로 교수들까지 시위 대열에 발을 담갔다. 문제가 없다고 항변하던 최경희 총장은 10월 19일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렇듯 부조리한 현실에 자기 생각을 드러내고 사회와 소통하는 지식인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사회와 권력을 비판하지 않는 학자를 무기력하다고 비판할 수 있을까? 30년 전인 1986년 도올 김용옥은 양심선언과 함께 고대 교수직을 내려놓았다. 당시 동양학 연구에만 몰두하며 전두환 정권 반대운동에는 거리를 두던 그가 느껴야 했던 주변의 싸늘한 시선과 대학사회 이분법적 가름 현상에 대한 항거였다. 학자와 지식인.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역할을 구분 짓는 것이 학자와 지식인 모두를 위한 예의가 아닐까? 공존의 사회를 위해서 말이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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