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심층보도…일부다처 등 부정적 측면 안 다룬 건 아쉬워

우리 가족은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하숙을 치며 어렵게 유학생활을 했는데 무슬림 고등학생을 하숙생으로 둔 적이 있다. 이 소년은 영국인 집을 전전하다가 제대로 음식을 얻어먹지 못해 바싹 여윈 채 담임선생의 소개로 우리 집에 왔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종교와 음식문화의 차이였다고 한다. 그는 우리 집에 온 뒤에야 시간에 맞춰 예배를 할 수 있었고, 돼지고기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원래 아프간 출신이었는데 마침 9·11 사건이 터져 무슬림이 테러범으로 찍히고 조국마저 전쟁에 휘말리는 바람에 마음고생이 더욱 컸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그에게서 절제된 생활태도와 성숙한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또 이슬람문화와 유교문화가 비슷한 점이 참 많은데도 편견이 가로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다.

<한겨레> 탐사보도팀이 선보인 ‘한국의 무슬림’ 시리즈(17~20일치)는 댓글이 수천 개 달릴 만큼 반향이 컸다. 그러나 댓글 대부분이 기사 게재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어서 안타까움도 컸다. 많은 독자들이 지적한 이슬람의 부정적 측면, 곧 ‘일부다처제’나 ‘명예살인’ 등을 종합적으로 다뤘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다. 그러나 취재와 보도 기법 양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하고 싶다. 무엇보다 언론이 건드리기 쉽지 않은 종교와 소수자 문제를 함께 다룬 심층성과 노력이 돋보였다.

주목해야 할 것은 독자들의 반응이다. 종교도 문화라고 본다면 최근 몇몇 사안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우리가 다문화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태세가 돼 있는지 걱정된다. 무슬림 시리즈에 대한 반응도 ‘한국에 왔으니 우리 관습을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 동화주의를 강요하는 게 많았다. 한국은 현재 종교분쟁이나 인종문제가 거의 없는 나라로 여겨진다. 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과 관련한 언론의 보도 태도만 하더라도 인종주의적 시각을 보이는 외국의 상당수 보수언론에 견주면 우리는 관대한 편이다.

 

그러나 최근 일부 보수 종교단체나 교단이 보인 이슬람에 대한 적대적 태도는 종교간·인종간 갈등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위험할 뿐 아니라 화해를 추구하는 종교의 원래 목적에도 맞지 않는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는 대통령 하야까지 거론하며 이슬람채권법을 무산시켰는데, 이는 정교분리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수쿠크법은 이슬람채권에 대한 역차별을 해소하고 해외자본 조달방식을 다양화하려는 것이다. ‘테러자금을 불려준다’고 비판하지만 미국도 유치경쟁을 벌이는 자금이다.

‘천국은 없다’는 스티븐 호킹 교수의 발언이 특히 우리나라에서 난타당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파악된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회부됐던 종교재판은 한국의 인터넷상에서 재개됐다. 호킹 교수는 무신론자이지만 종교에 대한 적대감정은 없는 듯하다. 그는 케임브리지 한인교회 등이 주최한 행사에도 참가한 적이 있다. 자신은 종교가 없더라도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일 것이다.

<한겨레>가 그의 발언과 관련해 5월21일치에 과학자와 개신교계, 그리고 종교학자의 견해를 내보낸 것은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한다는 차원에서 적절했다. 그러나 한국 언론이 거의 성역으로 남겨두고 있는 교회권력을 파헤치는 기획도 언젠가 나왔으면 한다. 일부 목사들은 스스로 세습권력이 됐을 뿐 아니라 국가권력을 창출하는 데도 깊숙이 개입한다.

다른 종교에 대한 적대적 태도는 종교갈등은 물론이고 인종주의를 유발하는 화근이 된다. 최근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일자리가 부족해지면서 외국인의 한국 이주에 반대하는 단체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우리는 종교갈등이 적고 오랜 기간 ‘단일민족’이었다는 환상 속에 살아왔다. 그렇게 많은 외침을 겪고 275개 성씨 가운데 136개가 귀화한 성이며, 최근 결혼한 이주여성만도 14만명이나 되는데, 개천절에는 ‘우리 조상은 모두 단군’이라고 노래한다. 인종문제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으니 역설적으로 인종에 대한 편견이 심각한 양상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 진보를 표방하는 <한겨레>의 역할도 커져야 한다는 얘기다.


* 이 기사는 <한겨레>와 동시에 실리지만, 일부 내용이 보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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