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신혜연 기자

▲ 신혜연 기자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에서 선비 허생은 전국의 물자 유통망을 독점해 부자가 된다. 허생은 당시 천하게 여겨지던 상업, 정확히는 유통업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제사용품, 말총 등을 매점해 당시 최대 상업 중심지인 안동 시장에서 팔았다. 사람들은 허생이 부르는 대로 값을 치르고 물건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는 오늘날 페이스북, 구글이 하는 일과 같다. 허생은 말총과 제사용품을 직접 만들지 않았지만, 이를 운반하는 유통과정을 장악함으로써 돈을 벌었다. 오늘날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 역시 콘텐츠를 만들지 않고 정보 유통망을 제공(사실상 반독점)함으로써 돈을 번다.

사람과 정보가 모여드는 플랫폼은 큰 반사이익을 누린다. 역사적으로 플랫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해안가에 위치한 국가들은 무역중심지로 명성을 떨쳤고, 지역 주민들은 교역을 통해 확보한 풍요로운 정보와 자원 속에서 풍족한 생활을 했다. 지중해에 자리 잡은 이탈리아가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근대 이후에는 아예 사람들의 관심을 사고파는 산업이 생겼다. 그게 언론이고, 광고다. 둘은 크게 다르지만 언제나 공존한다. 언론사는 대중을 상대로 정보를 독점 제공하는 플랫폼 역할을 했고, 이렇게 얻은 독자들의 관심을 광고주에게 팔았다.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는 포털이 그 기능을 대신하고, 점차 구글에서 페이스북으로, 다시 인스타그램으로 플랫폼이 이동하고 있을 뿐이다.

▲ 유튜브 크리에이터 허브 홈페이지 갈무리. 유튜브는 영상 창작자들을 위한 공간, 커뮤니티, 뉴스 정보를 제공한다. 구독자 수별로 등급을 부여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도 한다. ⓒ 유튜브

플랫폼 운영자는 콘텐츠 제공자와 소비자에 대해 독점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허생이 상품 유통 통로를 쥔 상황을 생각하면 쉽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조선에서 제주도 말총 장수가 아무리 말총을 엮어도 서울까지 가서 팔아줄 이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꼭 필요한 제사 용품이라면, 허생이 값으로 얼마를 부르든 내줘야만 한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든 탓에 형성된 플랫폼이지만, 영향력이 커지면 이를 이용해 우월한 지위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대형 포털 사이트에 플랫폼 주도권을 빼앗긴 채 기사 공급자로 전락한 기성 언론사들의 상황은 플랫폼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언론이라는 유통 플랫폼의 가치는 일정한 보수를 받고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제한된 범위의 사람들(저널리스트를 중심으로 한)에 의해 창출된다.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등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가치 생산 활동을 한다. 이는 무료노동이다. 2006년 유튜브는 구글에 16억 5천만 달러에 매각됐다. 참여자들이 무료노동을 통해 가치를 생산했지만 이익은 콘텐츠 벡터 조직으로서 유통 플랫폼이 독점했다.

플랫폼의 횡포를 막으려면 자율경쟁을 도입하는 게 답이다. 다양한 플랫폼이 활성화될수록 콘텐츠 제공자와 소비자를 잡기 위한 플랫폼들의 변화가 활발해진다. 최근 유튜브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동영상 기능을 추가하면서 위기를 느끼고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콘텐츠 제작자들을 끌어들일 인센티브로 광고 수익의 일부를 제공하고, MCN을 직접 설립해 유명 크리에이터들을 육성한다.

플랫폼 참가자들에 대한 처우 문제는 플랫폼 간 경쟁을 통해 해결 가능하다. 굳이 개입이 필요하다면, 언론사에 대해 시청점유율 또는 구독점유율에 대한 규제를 가하듯이 정보 점유율이 일정 수준 이상인 플랫폼은 가입자 수를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규정하는 것도 대안이다. <허생전>에서 허생이 문제가 됐던 건 물건을 파는 플랫폼이 허생 한 명이었기 때문이지, 허생이 전국을 다니며 구하기 어려운 물건들을 구해왔기 때문이 아니다. 플랫폼 자체는 죄가 없다.


편집: 신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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