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신혜연 기자

▲ 신혜연 기자

“내가 여기 일일 사장님이야.” 충청북도 제천시 공영주차장에서 일하는 일흔 살 할아버지는 자신을 ‘사장님’이라 소개한다. 30분에 300원 주차 비용을 받아 날마다 자신을 고용한 하청업체에게 일종의 ‘사납금’을 지불하고 남은 금액을 수입으로 챙긴다. 정해진 출근 시간도, 퇴근시간도 없지만 아침 9시부터 시에서 주차요금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한 저녁 8시까지 하루 11시간 씩, 주6일 일한다. 그래야만 ‘사납금’을 내고 월 120만원 정도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의 핵심은 독특한 계약 관계에 있다. 노동자들은 이제 기업과 고용 계약이 아닌 일종의 위탁 계약을 한다.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자유 시장을 신봉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임금도 기업과의 자율 계약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긱 이코노미는 이런 이론을 극대화한 결과다. 긱 이코노미에서는 고용계약이 아닌 다른 종류의 계약까지도 허용한다. 이제 노동자는 1인 사장이 돼 스스로를 위해 일한다. 그 결과는 위와 같이 참담하다.

마르크스는 노동이라는 상품의 특수성을 지적했다. 사람이 지닌 노동력은 일반 상품처럼 재고로 쌓아둘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시 노동력을 만들어내려면 날마다 일정 시간 쉬고 먹는 등의 일상생활을 영위해야 한다. 마르크스의 용어로 ‘재생산 비용’이 든다. 이 재생산 비용을 마련하지 못하면 사람은 파산하거나, ‘굶어 죽는’다. 노동력이란 상품은 변수도 많다. 인간은 때로 아프거나, 다치고, 시간이 들면 늙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 노동으로 먹고 사는 대부분의 생활인들은 노동력이란 상품의 불안정성 때문에 항상 두려움에 떤다.

긱 이코노미의 대표격인 영국의 음식배달 업체 ‘딜리버루’ 배달원들은 지난 8월 파업을 벌였다. 배달원들은 ‘우버’ 택시기사처럼 딜리버루를 통해 배달을 할당받아 수당을 챙긴다. 전 세계 65개 도시에 점포를 가진 딜리버루는 올해 예상매출액이 2천억 달러에 달하는 유망 기업이다. 그러나 딜리버루 배달원들은 비싼 보험료와 오토바이 할부금을 갚기 위해 장기노동에 시달린다. ‘원하는 시간대’에 일할 수 있다고 홍보하지만, 회사에서 할당한 시간에 배달을 해내지 않으면 일감을 적게 준다. 수당으로만 임금을 챙길 수 있으니 일감이 줄면 임금이 줄어드는 셈이다.

▲ 2015년 1월, 폴란드에서는 '우버'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우버'는 긱 이코노미의 대표주자다. ⓒ Wikipedia

한국에도 긱 이코노미 형태의 고용 관행은 이미 도입돼 있다. '개인 사업자'나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된 경우가 그 예다. 에어컨 설치 기사, 대리운전 기사, 화물차 운송업자, 건축현장의 일용노동자, 야쿠르트 판매원 까지 다양한 직종에 걸쳐 있다. 이들은 자유롭게 원하는 업체에서 일을 하고 근무시간도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원칙일 뿐이다. 최근 연이은 추락 사고를 겪고 있는 에어컨 설치 기사들은 수리 횟수에 따라 수당을 받는다. 충분한 임금을 받으려면 자신에게 들어오는 모든 문의를 시간 내에 처리해야 한다. 딜리버루 배달원들처럼 일을 잘 못하면 회사에서 일감을 줄이기 때문에 저임금에 시달린다. 설치 장비는 모두 사비로 마련한다.

긱 이코노미는 신자유주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 한국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속도로 신자유주의 논리가 전파됐다. 노동자의 재생산 비용을 생략한 채 ‘자유로운 계약’을 강조한 ‘비정규직’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전에 생소한 단어였던 ‘아르바이트’는 ‘알바’란 이름으로 청년들의 일상을 설명하는 친근한 단어가 됐다.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긱 이코노미다. ‘우버’와 ‘에어비앤비’로 대표되는 긱이코노미는 정보기술의 발달과 결합한 노동 형태로 정의되고 있으나, 노동 형태로 보면 재생산 비용을 치르지 않으려는 신자유주의 흐름의 하나일 뿐이다. 뉴욕대 경영학과 선다라라잔(Arun Sundararajan) 교수는 2015년 7월 영국 <가디언>지에 “소수 특권층을 위해 ‘온디맨드(이용자의 요구에 따라 네트워크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가 제공되는 사회로 전개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다수 노동자와 계약을 맺는 소수 자본가가 이전보다 더 많은 이득을 취한다는 비판이다. 주6일, 하루 11시간의 노동을 견디는 ‘사장님’의 모습은 긱 이코노미 시대 노동의 현실이다.


갈수록 경제가 어려워진다. 고용난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위기를 어떻게 해결 해야하나. 돌파구로 긱 이코노미가 떠오른다. 긱 이코노미란 필요에 따라 사람을 구해 임시로 일을 맡기는 고용형태를 뜻하는 경제 현상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긱 이코노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긱 이코노미 현상에 대해 각기 다른 세 가지 생각을 들어본다. (편집자)

① 박진영 <긱 연주자는 IT시대의 비정규직이다>

② 신혜연 <사장님 맞아?>

③ 김소영 <노동자 없는 긱 이코노미 시장?>

편집 : 박경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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