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진희정

▲진희정 기자.
“결혼? 족쇄라니까? 네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은 인생에서 얼마든지 또 나타날 수 있어.”

순간 옆에서 일그러지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지 못 보는지, 어머니는 딸에게 그간의 결혼생활에 대해 얘기한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손예진은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이 없어 ‘또’ 결혼하겠다고 나서는데, 어머니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자기 이름 세 글자조차 잃어버린 채 며느리와 아내와 어머니로 살아야 했던 억눌린 평생. 그 인고의 세월이, 결혼을 사랑의 결실로만 생각해왔던 어머니들을 자유연애주의자로 만들었나?

‘아, 옛날이여’를 달고 사는 엄마처럼 되지 말라는 푸념인줄 알면서도, 딸들은 정작 엄마처럼 살 수 없을까봐 고민한다. 제 몸 하나 가누기 위해서도 엄청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는 세대에게 연애는 결혼과 출산으로 쉽게 이어지지 않는 ‘불장난’에 그칠 수도 있다. 순간적으로 분출하는 사랑의 감정마저 억눌러야 하는 현실 앞에서 그들은 절망한다.

사랑을 맘껏 할 수 없어서 분출된 저항성은 1968년 5월 프랑스에서도 발견된다. 당시 유럽사회에 통용되던 일상의 정치 질서에 실질적인 해방을 가져온 68혁명은 여학생 기숙사에 남학생이 드나들 수 없게 한 ‘반자연적’ 규율이 한 계기가 됐다.

사랑의 본능을 방해한 이 규율은 당시 대학교육의 모순과 관리사회 속 인간소외와 같은 구시대적 질서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졌다. ‘금지를 금지하라’고 외치던 68혁명. 프랑스 전역의 학생과 파리 전 노동자 3분의 2에 해당하는 대규모 노동자 총파업을 이끈 혁명의 첫 번째 금지대상은 바로 사랑의 금지였던 셈이다. 

사랑을 금지했던 68혁명 이전의 구시대적 가치와 질서는 또 다른 차원에서 오늘의 한국사회를 억누른다. 사랑에 대한 인간의 본능이 사회경제적 조건에 의해 억압된다. 패자부활전도 없이 끝없는 생존경쟁이 펼쳐지는 지상 지옥에서 젊은 세대의 생물학적 연애 충동은 심각하게 손상된다.

스펙 쌓기에 집중하느라 연애를 미루고, 느는 지출에 비해 소득은 제자리인 적자인생이라 결혼도 하지 않는다. 그간의 생존 경쟁이 몸에 내재돼 생물학적 생존 본능이 거세됐는지 겨우 살아남아도 출산을 거부한다. 마음껏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 할 청춘들이 앓고 있는 이 ‘연애기능장애’는 우리 사회 혼인·출산율 저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사랑은 88만 원보다 비싸고’ ‘국가경쟁력이 성욕까지 몰수했다’던 한 주간지 기사 제목처럼, 사랑 역시 모든 것을 양극화하는 이 시대를 비껴가지 못하고 가진 자들의 특권이자 유희로 전락하고 있다.

국가가 국민의 데이트비용까지 보조해줘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격차와 생존환경이 두려워 사랑마저 뒷전으로 밀리는 사태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랑을 위한 혁명이자, 사랑을 통해 인간을 해방하고자 했던 68혁명의 슬로건은 43년이 흐른 지금도 유효하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난 더욱더 혁명을 하고 싶어진다. 혁명을 하면 할수록 난 더욱더 사랑을 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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