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국정감사

▲ 기민도 기자

“주권자 국민이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은 선거일 때 뿐이고 선거가 끝난 다음에는 노예가 된다.” 국민이 투표 날 하루만 ‘갑’이 되는 상황을 비판한 루소의 말이다. 이를 국회의원에게 적용해보자. “국민의 대표자 의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며 갑이 되는 것은 국정감사일 때 뿐이고 국감이 끝난 다음에는 을이 된다.” 한국에서 의회가 조사권을 갖고 행정부를 감사할 수 있는 시기는 1년에 20일 뿐이다. 국회의원이 국감기간에 ‘갑질’을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의회의 힘이 약해서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국정감사 방식도 꼴불견 국감을 만드는데 한 몫 거든다. 국감은 특정사안에 집중하기보다 광범위한 주제로 열린다. 국회의원들은 마구잡이로 증인을 불러낸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국감개시 이후 7일간 교문-미방-정무위 국감장에는 409명 증인이 나왔다. 그 중 260명은 입도 못 열고 자리만 지켰다. 불필요한 증인신청이 50%를 넘었다는 의미다. 또한 국회의원 1인에게 배정된 시간은 5~7분이다. 짧은 시간 안에 질문을 하고 답변을 받아야 한다. 답변이 필요 없는 주장용 질문을 하거나 “예/아니오”의 짧은 답변만 요구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여기에 언론 주목을 받아야 하는 국회의원들의 욕심도 뒤따른다. 언론은 정책국감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폭로와 추궁, 자극적인 표현에 맛들인지 오래다. 이은재 국회의원이 “사퇴하세요!”라고 내뱉으니 대서특필 되지 않았는가?

▲ 매년 반복되는 국정감사와 그 문제점. Ⓒ flicker

국정감사는 비대해진 행정기관을 감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정감사는 숙제검사를 하는 선생님처럼 행정기관이 부패했는지 혹은 사업을 계획대로 집행했는지 꼼꼼이 따진다. 국회의원들이 4년에 1번 있는 선거 때문에 매주 동네를 도는 것처럼, 행정기관도 국정감사를 두려워해 투명성 확대에 나선다. 이런 의미는 발전시키되 기간과 방식으로부터 발생하는 문제점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방법은 행정부로부터 감사원이 독립하는 길이다. OECD 34개 국가 중 감사원이 행정부에 속한 국가는 한국과 스위스 2개국뿐이다. 독립기관 형태는 19개국, 의회소속은 13개국이다. 감사원이 독립하거나 의회에 속하면 행정기관 감사가 연중가능하다. 행정기관은 더 투명해진다. 보여주기와 모욕주기식 국정감사는 자취를 감춘다.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가 프레시안에 기고한 <대통령 직속의 감사원, 지구상에 한국 외에 없다>에 따르면, 독립기구인 독일 연방회계검사원은 감사보고서를 국민에게 속속들이 알린다. 국민이 행정부를 감시하니 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 의회에 속해있는 회계감사원은 감사결과를 모든 상하원 의원과 행정부에 넘겨준다. 미국의원들은 국정감사를 하지 않고도 각 부처의 운영상황을 손금 보듯 훤히 꿰뚫는다. 의문사항에 대한 갈증은 상시 청문회를 통해 푼다. 의원 한명이 공무원 한명을 불러 치르는 청문회도 열린다. 1년에 20일만 유효하고 5분짜리 질문밖에 할 수 없는 국정감사보다 실용적이다. 한국도 상시 청문회를 제도화해 국정감사를 대체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끝자락을 향하는 2016년 국정감사, 국회의원들이 20일 천하 갑질을 통해 우리 사회에 무엇을 남겼는지 돌아볼 일이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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