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폐막작과 이슬라모포비아

지난 16일 폐막된 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중동 영화다. 영화제와 그동안 깊은 인연을 맺어왔던 이란 영화 거장 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특별전과 함께 역대 처음으로 이라크 영화 <검은 바람>이 폐막작으로 스크린을 탔다. 10억 이슬람 인구에 대한 이미지가 테러와 전쟁, 이슬람극단주의로만 덧칠되는 시대, 이 영화들은 이슬람 사람들을 이해하는 문화 창구로 손색없다.

아일란 쿠르디, 옴란 다크니시의 사진을 보고 흘리던 눈물은 곧 잊혀지기 마련이다. 황석영이 북한을 다녀와 한 말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처럼 해결되지 않는 증오가 자리한 중동 이슬람 사회에도 사람이 산다. 그리고 사랑이 흐른다. 영화를 통해 지금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감정과 삶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음에 새삼 놀란다.  그들에 한 발짝 다가서는 디딤돌이다.

“영화는 그리피스에서 시작해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로 끝난다”

장 뤽 고다르

▲ 부산국제영화거리에는 제 2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핸드 프린팅이 있다. © 최효정

한 때 악의 축으로 불렸던 나라 ‘이란',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그곳은 위대한 영화의 고장이었다.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올해 작고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다. <체리향기>로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하며 이란 영화의 황금기를 일궜던 그는 2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여한 이래, 아시아 영화에 대한 고민을 함께해왔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그에게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하며 그의 노고를 기렸다.

시인의 나라, 시인의 영화

그의 영화세계는 특별하다. 서구나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페르시아-이란 제국만의 정서가 깃들었기 때문이다. 이란은 ‘시인’이 대통령보다 특별 대접을 받는 나라다. 그의 영화는 담백하지만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 준다.

다큐멘터리 만큼이나 단조로운 형식은 이란 전통 시(詩)의 간결하고 단순한 구조에 뿌리를 둔다. 영화에는 종종 연기를 배우지 않은 일반인들이 나온다. 영화는 이란에서 누구나 접근 가능한 대중적이고 민주적인 예술인 덕분이다. 이란 사람들은 사람은 누구나 잠재적 예술성을 가지며 언제나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엄격한 검열시스템은 이란 영화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 ‘자얀데루드의 밤' 과 ‘순례길에서 생긴 일'

▲ 부산영화제를 지지하는 레오 까락스 감독의 메시지 ‘Don’t Fuck with Busan IFF’ . © BIFF 홈페이지

부산 국제 영화제는 지난 21년 동안 표현의 자유를 억압 받는 아시아 각국 영화의 소중한 소통창구였다. 논란 속에 축소 개최된 올해도 그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자국에서 오랫동안 상영 금지됐던 이란 영화 두 편이 이번 21회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팬들과 만났다.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자얀데 루드의 밤’(1990)과 카말 타브리지의 ‘순례길에서 생긴 일’(2009).

정치적 억압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묻힐 뻔 했던 이란 영화 2편을 굳이 스크린 앞으로 불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위함이다.

이 소중한 발굴이 주는 메시지의 무게는, 우리의 현실에도 엄중하다. 다이빙벨 상영 논란 이후 힘들게 개막한 영화제의 항변으로 손색없다.

불법 이주자의 험난한 연애담 : 나비드 마흐무디의 <이별>

현대는 엑소더스의 시대다. 이런 저런 사연을 안고 정든 고국을 등지는 난민의 행렬이 이어진다.

이라크 출신 나비드 마흐무디 감독의 <이별>은 불법 이주자 연인의 문제를 다뤘다.

주인공 ‘나비'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자친구가 있는 이란으로 밀입국하고, 그녀를 데리고 터키로 탈출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연인의 탈출 과정은 각종 폭력으로 얼룩진다. 성희롱을 당하고, 표 값을 떼여도 대항할 수단이 없다.

‘목소리 없는' 불법 이주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추방'의 두려움에 떠는 그들은 이주 과정에서 인간 이하의 신분이 될 위험에 빠진다.  ‘법’은 암암리에 그들을 비인간적 폭력에도 항변할 수 없는 새로운 계급으로 묶어둔다. <이별>은 폐막식에서 특별언급상을 받았다.

▲ 영화 <이별>의 스틸컷. © BIFF 홈페이지

이라크 영화, 핫산 후세인 감독의 <검은 바람>은 그들의 현재와 스스로의 고민을 다룬다. 이라크극단주의 아래 살육과 증오가 가득한 땅에서 가장 억압받는 존재는 역시 여성이다.

IS 소속 테러리스트들이 평화롭던 야즈디 부족 마을에 들이닥친다. 마을 여인들은 테러리스트에 의해 노예 시장으로 팔려 나간다. 주인공 ‘페로’ 역시 그 때 납치당한다.

그녀의 약혼자 레코는 국경을 넘어 그녀를 찾지만 그녀에겐 돌아온 현실 역시 지옥이다. IS에게 해방된 여성은 차가운 멸시의 시선아래 내팽겨쳐진다.

▲ 영화 <검은 바람>의 스틸컷. © BIFF 홈페이지

몸이 더럽혀졌다는 이유로, 그들의 삶은 공동체에서 배제된다. 굳이 ‘환향녀’와 ‘일본군 위안부'의 슬픈 역사를 회상하지 않아도 이런 프레이밍은 익숙하다. 전쟁과 폭력이 여성의 삶을 총체적으로 피폐화하는 방식이다.

영화는 전쟁보다 더 잔인할지 모르는 이슬람의 여성 억압에 대한 비판의식을 스크린에 치열하게 재현해냄으로써 세계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이에 응답한 첫 번째 해방구다.

이슬라모포비아를 넘어서는 방법

서구와 우리나라의 미디어에서는, 아랍의 봄 이후 혼란을 종교적 광기의 일부로, 또 무슬림을 잠재적 테러범으로 다루며 이슬라모포비아를 빚어낸다. 그 싸늘한 시선은 은밀히 우리의 내면을 파고든다.

하지만, 그 땅은 영화를 통해서 알 수 있듯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사랑과 증오, 환희와 회한이 교차하는 곳이다.

중동의 불안과 공포는 종교와 부족 특성을 무시한 채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편의상의’ 국경에 다름 아니다.

석유가 묻힌 풍요의 땅을 두고 누구도 절대 결백할 수 없다.

중동을 괴물로 만드는 것은 우리 역시 괴물이 되는 일이다. 진정한 ‘아시아'를 소개하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우리는 그동안 왜곡됐던 이슬람과 중동의 진정한 모습을 만난다.

이런 시각으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자. 한일관계, 남북관계, 기타 갈등을 빚어내는 우리사회 관계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왜곡돼 온 것은 아닌지 서늘한 의심을 가져보는 경험은 2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값진 폐막 선물이다.


<단비뉴스>는 6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2016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집중 취재 조명한다. 초청작 <다이빙 벨> 불허 방침을 놓고 '예술과 정치성' 논란 속에 무산 위기까지 몰렸던 부산국제영화제. 극한 갈등을 겪으며 축소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가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국제영화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따끔한 질책과 애정 어린 시선의 기획기사, TV 뉴스 리포트를 선보인다. (편집자)

편집 :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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