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노동

▲ 민수아 기자

2014년 1월, 필요 학점을 이수하고 졸업만 남았던 나는 대학생 학적만 가진 취업준비생이었다. 막힐 대로 막힌 취업문을 열어보려 애쓰다 지친 상황에 대규모 신규 채용 소식이 들렸다. 코레일 철도파업 대체인력 660명 신규채용. 3일 만에 1,7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는 홍보성 기사에 주변 사람들은 “너도 한 번 지원해보지그래?” 하며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을 건넸다. ‘내 전공이랑 무슨 관련이 있다고 저런 소리를 하나’ 불쾌하게 여기는 건 순간에 그쳤다. ‘여기는 나를 뽑아줄까?’ 체념 너머로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마음이 피어올랐다. ‘취준생’이라는 좋은 변명을 등에 업은 내게 노동에 대한 존엄은 말 그대로 사치였다. 그저 돈을 벌 수단을 찾는 데에만 매달렸다.

전국 철도·지하철 노조 노동자 6만여 명이 정부의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대하며 지난달 27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무려 3,000명의 대체인력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붙었다. 이 중 일부는 기간제 직원이며 고용된 이들에게는 향후 정규직 채용 시험에서 가산점 혜택을 준단다. 2년 전 나를 유혹했던 코레일의 신규채용은 파업종료와 함께 흐지부지 없던 일이 돼버려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아픈 기억을 가진 내게 이번 대체인력 채용 공고는 ‘노조 압박용 파업 파괴 카드’로 보일 뿐이다. 엄포용 칼자루에 선량한 구직자들만 상처받을 것이 뻔해 보인다.

▲ OECD 조사에 따르면 2013년 한국의 노조조직률은 10.3%로 30개 회원국 중 28위다. ⓒ Flickr

OECD 조사에 따르면 2013년 한국의 노조조직률은 10.3%로 30개 회원국 중 28위다. 낮은 노조조직률만을 근거로 노동권 보장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일례로 시위와 파업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의 노조조직률도 10% 수준으로 낮다. 프랑스에서 파업권은 노동조합의 권리가 아니라 근로자 개인의 권리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 역시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근로자 편에 선다. 하지만, 단체행동권에서 “타인의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나 사용자의 재산권을 부정하는 쟁의행위”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 조항에 근거해 노동자의 파업은 대부분 불법파업으로 간주돼, 노동자들의 기본권 행사에 발목이 잡힌다.

<노동자의 변호사들> 공동저자인 권두섭 변호사는 “노동조합은 노동자 인권의 보루”라고 핵심을 찌른다. 일터에서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와 존엄을 지키는 노동기본권은 노동조합을 발판으로 삼는다. 인구 대부분이 근로자인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 영화 <빌리 엘리어트> 주인공의 아버지는 탄광촌 광부로, 아들의 꿈을 위해 노조 파업을 중단하고 다시 탄광으로 돌아간다. ⓒ 네이버 영화

영화 <빌리 엘리어트> 주인공의 아버지는 탄광촌 광부로, 아들의 꿈을 위해 노조 파업을 중단하고 다시 탄광으로 돌아간다. 결국, 지원하지는 않았지만, 순간이나마 대체인력 채용에 마음을 빼앗겼던 내게 ‘가족의 꿈을 위해 내 권리를 포기하는’ 숭고한 이유는 없었다. 잠시나마 공기업의 공작에 농락당했던 구직자가 반성해야 하는 사회. 파업으로 인한 교통 불편만이 아니라, 노동자와 구직자의 인권에도 균형을 맞추는 언론보도와 사회 분위기는 언제쯤 가능할까?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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