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권력

▲ 곽호룡 기자

국가는 ‘세속의 신(Mortal God)’이다. “국가가 모든 권력을 소유해야 한다”는 국가주의자의 신념은 여기에 뿌리를 둔다. 개인에게 주어진 힘은 자신을 지키는 이기적인 목적에서만 사용되어 불안한 사회를 만든다고 본다. 홉스는 국가가 정당한 폭력만 행사한다면 모두가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홉스의 소망은 소박했지만, 힘을 가진 현실의 권력자들은 그러지 않았다. 권력자는 신이 아니라 불안과 욕망을 가진 ‘필멸자’이기 때문이다. ‘필멸자’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건축’을 활용했다. 역사적으로 거대건축물이 권력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착시효과를 일으켜온 점이 이를 잘 말해준다.

광화문의 명칭은 ‘왕의 덕이 온 나라에 미친다(光被四表 化及萬方)’는 말에서 나왔다. 이름 그대로 조선왕조 권위의 상징이었다. 권력자들은 광화문과 주변 거리가 갖고 있는 상징성을 차지하고자 싸웠다. 광화문은 정치권력 간 투쟁의 역사로 점철된다. 싸움에서 이긴 권력자들은 이곳을 승리의 상징으로 전리품처럼 여겼다. 반면 중앙권력이 약해진 시기에는 광화문도 함께 몰락한다.

▲ 권력자들은 광화문과 주변 거리가 갖고 있는 상징성을 차지하고자 싸웠다. ⓒ Flickr

흥선대원군은 임진왜란 때 성난 백성의 손에 불탄 경복궁과 광화문을 과도한 세금과 노동력을 동원해 되살렸다. 세도세력 견제와 왕실권위 강화를 위해서다. 하지만 곧 일제의 손에 헐리거나 강제 이축 되었다. 한국전쟁 때는 폭격으로 광화문의 상부를 잃었다. 마치 목이 날아간 인간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말하고 있는 그 모습은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박정희 시대에는 콘크리트와 친필현판으로 일그러졌다. ‘박정희의 광화문’은 산업화에 대한 의지와 권위주의가 결합한 모습이다. 노무현 정부는 콘크리트 상부와 친필현판을 철거하고 목재와 한문현판으로 돌려놓는다. 역사성 회복을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박정희 흔적 지우기라는 논란도 일었다.

헬레니즘 시대 그리스인들은 몇몇 건축물을 언급하며 ‘불가사의’란 표현을 썼다. 불가사의(不可思議)는 오역이다. 원어는 ‘이해불능(mystery)’이 아니라 ‘경이로움(wonder)’에 가깝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오역이 종종 현상을 더 정확하게 가리킨다. 건축물 ‘광화문’이 자리한 지역 ‘광화문’이 그렇다. 정부청사·미 대사관·거대언론사의 간판이 국민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풍경. 거기에서 경이로움이 싹틀 여지는 없다. ‘이해불능’일 뿐이다. 건축물의 진정한 주인은 권력자들이 아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은 사람들이 피와 땀으로 그곳을 말없이 지켜왔다. 소유권은 그들에게 있다. 광화문에 스민 과거 역사는 현대의 오만한 권력자에게 소리 없는 경고를 보낸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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