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리스티클] ⑤ 페미니즘 입문서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 출판계를 뜨겁게 달군다.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출간 10개월 만에 1만 5천 권 넘게 팔렸다. 책에 등장한 신조어인 ‘맨스플레인’(man+explain)은 2010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에 올랐다. 스웨덴에서 고등학생 성평등 교과서로 쓰인다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여성연구소에서 만든 <젠더와 사회> 같은 이론서도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다. 8월 둘째 주에는 알라딘 ‘사회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1~6위가 모두 페미니즘 책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이런 조류가 다소 어색한 남성들도 있을 터. <단비뉴스>는 페미니즘과 남성 간의 연결고리를 드러내줄 책 5권을 골랐다. 서점을 장식한 페미니즘 책들이 전공책보다 낯설게 느껴지는 독자들을 위해서다.

1. 추울 때 스타킹을 신을 수 있다

크리스티안 자이델,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지식너머

추위를 잘 타는 한 독일인이 있었다. 두껍고 갑갑한 내복이 싫어 늘 감기를 달고 다니던 그는 우연히 여성 속옷 코너에 들어갔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난다. 그를 반긴 건 알록달록한 색상에 다양한 두께의 스타킹들. 밖에선 따듯하고, 실내에서도 덥지 않은 데다 색마저 아름다운 스타킹은 자이델에게 해방감을 안겼다. 이후 그는 자기 안에 숨은 여성성을 찾는 길로 들어선다. 그렇게 무려 1년을 여자로 살았다.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그 1년간의 경험을 담은 일기장이다.

자이델은 여성들이 느끼는 자유가 부러웠다. 남자라는 이유로 늘 과묵하고, 진중한 모습에다 거무죽죽한 코트를 덮어써야 했다. 반면 여성들은 마치 중력을 피하는 것처럼 가볍고 자유로워 보였다. “‘남성해방’이라는 단어가 없는 것처럼 남자들은 아무 문제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남자가 무슨 해방? 남자는 원래부터 자유로웠는데? 남성해방을 얘기하려면 먼저 남성이 자유롭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만 한다.” 자이델은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30년간 꼭꼭 감춰뒀던 여성성을 해방시켰다. 여장한 자신의 모습에는 ‘크리스티아네’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 ⓒ 교보문고

크리스티아네의 행복은 길지 않았다. 사회에 굳게 자리한 성역할이라는 고정관념은 크리스티아네를 짓눌렀다. 일상적인 성추행을 당하고, 어두운 공원에서 괴한에게 습격을 받으면서 여성 또한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은 더이상 나체가 아니다. 남자와 여자라는 옷을 입기 때문이다.” 1년간의 프로젝트로 깨달음을 얻은 자이델은 다시 남자로 돌아왔지만, 크리스티아네도 여전히 함께한다. 내면의 여성성을 '나는 남자다'라는 말로 물리쳐 버리던 과거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킨 덕분이다. 그는 이제 추운 날이면 언제든 스타킹을 꺼내 신는다.

2. 애도 대신 기쁨을 나눌 수 있게 된다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  나무연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더 이상 여성분들이 밤늦게 다녀도, 짧은 치마를 입어도 걱정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살해했다. 지난 5월 17일 서울 서초동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공용 화장실에서다. 언론과 경찰은 가해자가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묻지마 범죄’라고 이름 지었지만, 여론은 이를 ‘페미시드(femicide, 여성살해)’로 이름 붙였다. 가해자가 6명의 남성을 그냥 보내고, 처음 마주한 여성에게 흉기를 휘둘렀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라 답한 대목도 한 이유다.

흉악범죄 피해자의 90% 이상이 여성인 한국에서, 강남역 살인 사건은 ‘페미시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어간 이를 애도하는 천 여개의 포스트잇이 강남역에 나붙었다. “너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이다.” “우리는 더 이상 더 조심할 수 없습니다.” 여성들은 피해자에 대한 위로와 폭력에 노출됐던 경험, 그리고 앞으로의 다짐을 포스트잇에 남겼다.

▲ ⓒ 교보문고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은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붙은 조문 포스트잇 1004개 전부를 꼼꼼히 살펴 글로 옮겼다. 책 제목도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이다. “여성들은 이것을 ‘재난’이라고 말하고 외치고 있습니다. 남성들은 이것을 회피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포스트잇 속 문구가 따끔한가? 내 주변 여성들도 같은 불안에 떨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픈가? 그렇다면 페미니즘을 접해보자. 사랑하는 사람들과 애도 대신 기쁨을 나눌 일이 더 많아질 테니까.

3. 떳떳한 ‘몸짱’이 될 수 있다.

록산느 게이, <나쁜 페미니스트>, 사이행성

운동하며 몸을 가꾸길 좋아하는 내 친구(남자)는 억압된 여성의 현실에 공감하며 페미니즘 책을 폈다. 그런데 저명한 페미니즘 이론가라는 저자는 “남자가 자기 신체를 단련하고 고통을 가하는 것은 철저한 타자화(他者化)”이며 “여성혐오를 넘어설 유일한 방법은 그 타자화를 그만두는 것”이라 잘라 말한다. 운동을 하지 말라는 말인가? 친구는 혼란스러워졌다.

세상에 반드시 알아야할 이론은 없다. 우리 사회 대다수는 ‘타자화’같은 단어, 복잡한 이론을 모른 채 나름대로 살아 왔다. 이런 생각에 공감할 사람들에게 <나쁜 페미니스트>는 반가운 발견이다. 이 책은 복잡한 이론서도 페미니즘의 정답을 다룬 교과서도 아니다. 단지 세상을 보는 한 여성의 관점일 뿐이다. “핑크색을 사랑하고 섹스를 좋아하고 가끔은 여성을 끔찍하게 표현한 노래에 엉덩이를 흔들기도 하는 여자”라는 저자 록산느 게이. 자신이 셀 수 없이 많은 모순과 단점으로 똘똘 뭉친 보통의 인간으로서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한 순간 해방감이 밀려왔다고 속내를 터놓는다. 저자가 그랬듯 우리는 특급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을지 모른다.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라는 관점으로 무장해도 세상에는 고쳐나가야 할 모순들이 많기 때문이다.

▲ ⓒ 나쁜 페미니스트

드라마, 대중가요, 영화, 사회적 사건, 사적 경험들을 넘나드는 저자의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절로 페미니즘이 여자 뿐 아니라 남자에게도 유익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서? 그것으론 조금 약하다. 모르고 지나쳤던 ‘차별’을 감시하고, 은근히 이뤄지던 ‘배제’의 억울함에 공감하기 위해서. 사회와 환경이 당연한 듯 머릿속에 쑤셔 넣은 고정관념들을 의심하기 위해서. 타인을 아프게 할 행동을 무심코 하지 않기 위해서. 한 마디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갈고 닦을 수 있어서다. 그 친구, 몸 키우는 운동은 계속 하더라도, 몸 자랑 자제하는 센스 정도는 배우지 않았을까.

4. 모두가 행복한 섹스를 할 수 있다

은하선, <이기적 섹스>, 동녘

섹스는 두 명 이상이 필요한 행위다. 일반적으로 남녀 둘이다. 수많은 남성이 섹스를 했다면, 여성도 그만큼 섹스를 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섹스를 말하는 측은 대부분 남성이다. 여성의 성에는 이중 잣대가 놓인다. 여성은 섹스를 잘 모르면 ‘내숭 떤다’고, 잘 알면 ‘까졌다’고 비난 받는다. <이기적 섹스>의 저자 은하선은 자신을 ‘섹스를 좋아하는 페미니스트’라고 내세운다. ‘여성의 성욕’은 그녀에게 금기가 아니다.

남자가 이 책을 읽을 땐 용기가 필요하다. “술자리에서 자신에게 다리 벌려준 여자 따먹은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하거나 “자신이 상대방의 모든 욕망을 채워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남자라면 얼굴이 화끈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옛 선조들이 여자들에게 ‘순결함’을 강요하며 쌓아 온 시간의 업보를 이 시대 남자들이 물려받았다”고 감히 결론짓는다.

▲ ⓒ 이기적 섹스

보다 즐겁고, 유쾌하고, 행복한 섹스를 원하는 남성이라면 화끈거림을 참으며 이 책을 끝까지 읽는다. 여성의 오르가슴을 이해하고, 내 여성 파트너를 어떻게 만족시킬까 고민하는 남자라면 이 책이 참고서로 다가온다. 여성이 섹스의 주체가 돼야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타적 섹스’가 가능하다는 깨달음이 책을 덮는 순간 보석처럼 반짝인다.

5. 집 안의 독재자가 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스테퍼니 스탈, <빨래하는 페미니즘>, 민음사

과거와 달리 청소나 설거지 등 집안일을 하는 남성을 어렵지 않게 본다. 얼마나 바뀌었을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남성의 7.8배다.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10년 전에 비해 고작 7분 늘었다. 단지 빨래량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직장과 가정에서 하루 평균 14시간 '노동'만 하는 여성들의 삶은 어떨까. 성별로 기울어진 삶의 불균형은 모두에게 불행을 안긴다. 기자 펫 메이너는 "참여 민주주의는 가정에서 시작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당신이 페미니스트는 아니더라도, 민주주의자라면 이 책을 읽을 이유가 모자라지 않다.

▲ ⓒ 교보문고

<빨래하는 페미니즘>이 들여다 본 건 일상에서 그치지 않는다. 여대를 졸업하고 아이의 엄마가 된 저자 스태퍼니 스탈은 30대에 대학으로 돌아간다. 페미니즘 수업의 청강을 통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나 버지니아 울프 같은 역사속 페미니스트를 이해하려 애쓴다. 동시에 자신의 삶을 투영해 자신만의 프리즘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지금 우리 일상을 과거 여성들의 삶과 비교해 보여준다. 현 세대가 누리고 있는 성평등이 얼마나 오랜 고민의 결과인지, 그리고 여성주의 실현을 위해 어떤 점이 부족한지 깨닫는 기회, 놓치면 아깝다.


편집 :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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