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로맨틱 코미디 뻔하지 않게 풀어 가는 홍 자매의 힘
[지난주 TV를 보니: 5.15~5.21] MBC드라마 <최고의 사랑>

 ▲ <최고의 사랑> 포스터 ⓒ imbc

구애정 : “독고진 씨 혹시 나 좋아해요?”
독고진 : “띵똥. 그래서 수치스러워. 지금은 고백이 아니라 자백이야. 네가 끈질기게 찌질찌질 알짱알짱거려서 울렁울렁거리게 고문하니까 버티고 버티다 자백한 거야.”
구애정 : “못돼 처먹어서 그 나이에 겨우 하는 첫사랑, 끝까지 짝사랑일거에요! 나는 독고진을 절대로 절대로 좋아해 주지 않을 거니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걸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톱스타 독고진(차승원 분)의 사랑 고백. 하지만 한물 간 아이돌(우상)이자 생계형 연예인인 구애정(공효진 분)은 사랑 때문에 설렐 여유조차 없다며 그를 절대로 좋아해주지 않을 거라 다짐한다. 전 국민이 사랑하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국민 호감 1위의 남자와 대중으로부터 욕먹고 매도당하기 일쑤인 국민 비호감 1위 여자의 순탄치 않은 사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지난 5월 4일 처음 전파를 탄 문화방송(MBC) 수목 드라마 <최고의 사랑>은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지상파 3사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중 시청자들로부터 ‘최고의 사랑’을 받고 있다. 늘 엇비슷한 윤은혜표 로맨스가 이제 지겹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 서울방송(SBS) 월화 드라마 <내게 거짓말을 해봐>(17일 시청률 10.5%, 이하 AGB닐슨 리서치 수도권 기준), 돌아온 장나라의 파워가 무색한 한국방송(KBS) 2TV 월화 드라마 <동안미녀>(17일 12.4%), 성유리의 미모도 큰 힘을 받지 못하는 같은 방송 수목 드라마 <로맨스 타운>(19일 9.4%) 모두 4~6회 방영을 마친 현재 미지근한 반응이다. 반면 <최고의 사랑>은 5, 6회가 방영된 지난 주 시청률이 수요일(18일) 16.2%, 목요일(19일) 17.5%로 방송 3주 만에 당일 전체 순위 2위를 기록했다.

여타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들이 주춤하는 가운데 <최고의 사랑>이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뭘까? 노래나 TV 프로그램이 제목대로 간다는 얘기가 있는 것처럼 <최고의 사랑> 역시 이름 덕을 보는 것일까? 

감칠맛 나는 대사 돋보이는 개성 만점 드라마

 ▲ <최고의 사랑>의 네 주인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공효진(구애정 役), 차승원(독고진 役), 윤계상(윤필주 役), 유인나(강세리 役) ▲ mbc 화면캡쳐

지난 6회에서 구애정은 독고진에게 “당신은 입에 똥꼬가 달렸다”며 “말이 나오려고 할 때 똥꼬에 힘을 꽉 주고 참으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독고진이 어떻게든 관심을 끌어 보려고 내뱉은 말이 오히려 그녀의 화를 돋웠기 때문이다. 이렇듯 독고진과 구애정의 로맨스는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달리고 있지만 시청자들은 머지않아 그들 사이가 뜨거워질 것임을 예감한다. ‘초절정 훈남’ 윤필주(윤계상 분), 구애정과 함께 국보소녀 팀으로 활동했지만 지금은 혼자 잘나가는 강세리(유인나 분)를 배치한 것도 뻔한 ‘4각 관계’를 예고한다.

하지만 <최고의 사랑>은 뻔해 보이는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굳이 부인하지 않고 웃길 것 다 웃기면서 사랑 얘기는 사랑 얘기대로 잘 펼쳐 나가고 있다. 홍정은 홍미란 자매 작가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6회분에서 애증 관계인 구애정과 강세리의 닭싸움 장면에 '홀리데이'를 배경 음악으로 깔아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속 박중훈과 안성기의 비장한 대결을 떠올리게 만든 것이나, 구애정 때문에 혼란스러운 독고진의 마음을 종영한 MBC 드라마 제목들을 빌려 표현한 장면 등은 특히 유쾌했다. 

홍 자매의 지난 작품들은 대부분 로맨틱 코미디물의 ‘코믹’ 요소와 이야기의 ‘설득력’을 균형 있게 버무렸다. 2005년 <쾌걸춘향>을 비롯해 <환상의 커플>, <미남이시네요>,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등은 모두 리얼리티 보다는 재미를 극대화하면서도 환타지의 이질감 없이 시청자의 몰입을 이끌어 낸 히트작들이다. <환상의 커플> 속 안나 조(한예슬 분)나 <미남이시네요>의 황태경(장근석 분)은 상당히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이지만, 이야기 자체의 탄력은 그대로 유지됐다.

▲ 홍정은 홍미란 작가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위), <환상의 짝꿍> ⓒ sbs, mbc 화면캡쳐

<최고의 사랑>에서 독고진도 그런 인물이다. 그는 꽤 ‘오버’하지만 그것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홍 자매의 설득력 있는 설정에 차승원의 탄탄한 연기력이 더해진 결과다. 

비현실적인 캐릭터지만 사랑만은 절실 
 
“나는 구애정이 어려워. 하나도 안 쉽고 아주 어렵다고.” 6회분 <최고의 사랑>은 이 한 줄의 대사로 이 드라마가 진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팬들 앞에서는 완벽한 이미지 관리로 자상하고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독고진이 자신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구애정에게 수치스럽다면서도 사랑을 ‘자백’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자뻑 왕자’ 독고진도 사랑 앞에 한없이 작아지고 혼란스러워지는, 이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감정의 소용돌이로 빠져드는 모습을 제대로 묘사한 것이다. 시청자는 가볍고 웃기는 비현실적 드라마임을 알지만 독고진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어느새 시청자가 독고진과 함께 구애정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달파할 정도가 된다. 

자신의 사랑을 거절하는 구애정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독고진이 들려주는 ‘동백꽃’ 이야기는 <최고의 사랑>이 진짜 로맨스를 이야기하는데 결코 가볍지 않음을 보여준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은 점순이가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건넨 감자를 소년이 뿌리치자, 심술이 난 점순이가 애꿎은 소년의 닭을 괴롭히는 이야기다. 독고진은 점순이에게 감정이입하며 자신이 괴롭힐 구애정의 닭을 찾겠다고 선포한다. 독고진의 마음이 동백꽃 속 ‘점순이’의 순수한 감정으로 대변되는 순간이었다.

 ▲ 극 중 독고진과 구애정이 소설 <동백꽃>을 패러디하고 있다. ⓒ mbc 화면캡쳐

이제 독고진의 애타는 마음이 어떻게 구애정에게 닿을지, 강세리 윤필주와 함께 펼칠 4각 관계는 또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증이 더 커진다. 결국엔 해피엔딩으로 가겠지만 ‘똥꼬 독고진’이 ‘동백꽃’으로 변하는 모습처럼 그 과정은 결코 뻔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자연스런 연기와 최고의 호흡을 보여주는 차승원과 공효진은 오랜만에 히트 드라마의 등장을 예감하게 한다.

"난 기럭지만큼 뒤끝이 길어서 쿨하지 못해. 비위가 약해서 잘 해줄 마음도 없어. 내가 가장 잘 하는 방법으로 구애정, 네가 떨리게 해 줄 거야".

독고진의 삐딱하면서도 로맨틱한 경고에 여성 팬들은 벌써부터 설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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