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양호근

▲ 양호근 기자
시커먼 곰팡이가 찢어진 벽지에 수를 놓아 퀴퀴한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장판이 다 떨어져나간 너저분한 방에 깨진 술병이 나뒹굴고 지린내가 진동한다. 여기는 서울이다.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이 극빈층의 삶을 관통한다.

며칠 전, 영화 <똥파리>를 봤다. 2009년 개봉한 영화를 지금 봤으니 난 영화매니아는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우리 사회 하층민들의 삶을 처절하게 그린 것이어서 찡한 감동이 밀려왔다.

그들의 집은 더러운 똥처럼 치부돼 땅 속에 반쯤 묻힌 반지하방뿐이다. 이마저도 월세를 내지 못해 매일 살얼음판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이 영화에서 말하는 ‘똥파리’다. 이 영화는 극심한 양극화를 겪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더러운 사람들이 아니라 ‘더러운 세상’에 살고 있는 ‘서러운 서민들’ 이야기다. 이들에게 집은 머물고 싶은 안식처가 아니라 도망치고 싶은 감옥이다. 하지만 집밖으로 뛰쳐나오면 더욱 냉혹한 현실이 그들의 목을 조른다. 그래서 영화의 영어 제목이 ‘숨막혀’라는 뜻인 ‘breathless’인가?

우리 국민 40%쯤은 무주택자이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는데도 서울에서는 무주택 가구가 절반 정도 된다.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집이나 방을 가진 계층간에도 빈부 격차는 심각하다. 서울 강남 타워팰리스 주민들은 세상을 발 아래 둔 양 으스대며 살고, 서울 도심 지하 단칸방에 사는 사람들은 움츠린 채 고단한 삶을 살아간다.

<똥파리>에서는 말한다. 똥이 더러워 피하고 내몰면, 결국 더 많은 똥파리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고. 우리사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내몰수록 빈부 격차는 더욱 커지고, 결국 더 큰 사회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이런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공공임대주택 보급을 늘려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3%에 그친다. 유럽 선진국의 20~36%와 견주면 너무나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정부는 우선 ‘1가구 1주택’을 유도해야 한다. 그래서 남아돌게 되는 주택을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해야 한다.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들에게 재산세 등 보유과세를 중과하는 것은 가장 유력한 수단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종부세 등 보유과세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고 있다.

주거복지의 기본은 최하위층에게는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고 차상위층에게는 자력으로 자기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펴는 것이다. 2010년 통계로 연 소득 2750만원을 버는 사람은 서울에서 25평 아파트를 마련하는 데 16년이 걸리고, 연 소득 1260만원을 벌면 35년이 걸린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산이 없으면 부부 둘이 맞벌이를 해야 평생 집 한 채 장만할 지경이라면 다른 행복은 꿈도 꾸기 힘들다.

서민들이 바라는 것은 큰 게 아니다. 등을 대고 편히 쉴 수 있는 ‘지상의 내 집 한 칸’을 염원할 뿐이다. 집 없는 설움은 인간본성에 가 닿는 것인가? 중국 영화, <낙엽귀근>도 집 없는 이의 설움과 염원을 구구절절이 대변했기에 뜨거운 호응을 받았을 것이다.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큰 집 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쳐 피곤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집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
화려한 집까지는 아니더라도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그런 집

그 누가 집을 원하지 않겠냐마는
그런 집이 없는 이가 허다하니
뺨에 흐르는 눈물 혼자서 쓸쓸히 닦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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