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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시위 불사하는 ‘현백 누나’
[단비인터뷰] 시민운동의 버팀목,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
2016년 09월 19일 (월) 21:08:06 황두현 기자 whoami3@nate.com

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여성연합), 시민평화포럼. 이들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정부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시민후원으로만 운영되는 단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정현백(63·성균관대 사학과) 교수가 대표 또는 의장을 맡았다는 점이다. 많은 교수들이 대외 활동에 대한 부담스런 시선 때문에, 혹은 연구논문에 치우친 평가시스템 때문에 시민운동과 거리를 두고 있지만 정 교수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여성연합과 참여연대 대표를 각 6년씩 지내며 시민운동 최 일선에서 활동했고, 지금도 서울시 성평등위원회와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 6월 3일 서울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정현백 교수를 만나고, 지난 4일 이메일로 추가 인터뷰했다.

‘비판적 엘리트 육성’ 장학금 취지에 충실한 삶  
  
시민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수들은 흔히 ‘연구는 뒷전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산다. 정 교수는 이런 우려를 씻기 위해 일요일 외엔 항상 학교에 나와 밤늦게까지 전공 연구에 몰두해왔다고 한다. 매년 3~4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성균관대의 역사학교육연구사업단에도 참여하고 있다. 노동, 여성, 주거문제 등이 그의 주요 연구주제다.

   
▲ 정현백 교수가 서울 종로구 명륜동 연구실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신혜연

반독재 투쟁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 '운동권 학생‘이었던 그는 독일로 유학 간 후에 학문에 눈을 떴다고 한다. 학생운동을 하다 해외 유학을 가는 게 도피처럼 비쳤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정 교수도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은사인 고 노명식(당시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가 좋은 조건의 장학금을 연결해 주고 동료들도 응원해 줘 1978년 독일 보훔(Bochum)대학으로 떠나게 됐다. 보훔대학은 1960년대 독일 사회민주당이 집권한 후 노동자 자녀를 위해 지은 대학으로 노동사 연구가 활발했던 곳이다.

정 교수의 독일행을 가능케 했던 프로그램은 '에큐메니컬(ecumenical) 장학금'이었다. 제3세계국가에 비판적 엘리트를 키워 독재와 부패에서 스스로 벗어나도록 돕자는 취지에서 생긴 장학제도였다. 세계기독교협의회(WCC)에서 재정 상황이 넉넉했던 독일 교회를 주축으로 운영했다.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은 정 교수가 귀국 후 시민활동에 적극 참여한 것은 그 취지에 부합하는 결과인 셈이다.

“몇 년 전 독일에서 세계적으로 에큐메니컬 장학금 수혜자를 대상으로 평가를 해보니, 한국의 대상자들이 상당히 성공적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정의당의 김세균 공동대표(69·전 서울대 교수)나 유엔(UN) 인권대사를 지낸 박경서(77) 전 이화여대 평화학연구소장 등이 큰 역할을 하고 있죠.”

1984년 한국에 돌아온 정 교수가 처음으로 강의한 곳은 서울대였다. 그 곳에는 학생 시절 자신이 만들었던 학과 모임인 ‘딜돌’이 여학생 운동의 구심점이 되어 있었다. 정 교수는 그 모임의 학생들과 함께 부정기간행물(무크)인 <여성>을 출판했다. 이 간행물은 훗날 여성운동을 선도한 창작과비평사의 <여성과 사회>로 이어졌다.

“위안부 문제를 세계적 관심사로 만들어야” 

<여성사 다시쓰기>(2007), <민족과 페미니즘>(2003) 등 여성운동의 역사를 주요 연구 주제 중 하나로 잡아왔던 정 교수에게 위안부 문제는 각별한 관심사 중 하나다. 여성연합의 대표로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지원하며 위안부 피해자와 함께 하는 ‘수요집회’에 참여하는 등 문제 제기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정대협은 한국과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과 협의도 하지 않은 채 ‘일본군 위안부 재단설립 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킨 데 반발해 ‘정의기억재단’을 설립하기로 하고 10만 명의 시민들로부터 8억 원을 모았다.

“정대협의 윤미향 대표와 할머니들이 지쳐가고 있지만, 저는 항상 격려해줘요. 이 운동은 이미 전쟁을 통한 여성인권침해의 상징이 되고 있어요. 향후 국제적인 전쟁과 여성인권 센터로 나아가야 해요.”

정 교수는 정대협이 세계적인 운동의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대협도 더욱 적극적으로 국내외에서 위안부의 실상을 알리는 중이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학 교수들을 매년 일정 인원 초청해 서대문 형무소에서부터 거창 양민학살현장 등을 답사하는데, 올해는 군 위안부 문제를 상기할 수 있는 ‘기억의 터’도 답사 코스에 넣었다. 기억의 터는 지난 8월 광복절에 남산 조선통감부 터(서울시 중구 필동)에서 제막식을 올렸다.

   
▲ 여성문제를 다룬 정현백 교수의 저서들. 왼쪽부터 <민족과 페미니즘>, <여성사 다시쓰기>, <처음 읽는 여성의 역사>. ⓒ 교보문고

위안부 문제를 ‘전시 여성인권 침해’로 접근하는 정 교수는 다음 연구주제로 ‘우리 안의 군사주의’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군사주의를 들여다보려고 해요. 독일에서는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의 전장 일기가 책으로 출간되어 있고, 많이 읽혀요. 말하자면 아래로부터의 전쟁사죠. 반면 우리는 지도자들이 본 전쟁만 다루고 있죠.”

일반인의 눈으로 본 전쟁사를 알아야 우리 안에 스며들어 있는 군사문화의 잔재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평화 교육을 확산하는 게 정 교수의 목표다. 이미 경기도교육청이 진행 중인 민주시민 교육의 다음 프로그램으로 교재를 준비하고 있다. 정 교수가 평화 시민교육을 다룬 책을 교사들과 함께 준비하고 있고, 연세대 문정인 명예특임 교수가 세계시민교육 집필에 대한 책임을 맡는다.

   
▲ 평화교육을 위해 집필 중인 책에 관해 설명하는 정현백 교수. ⓒ 신혜연

재정난, 인력난 등 삼중고 겪는 시민단체 

정 교수는 여성사연구회에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학술운동과 시민운동에 30여 년 관여해 왔다. 그런 그가 요즘 고민하는 것은 시민단체의 재정난, 인력난 그리고 고령화라는 ‘삼중고’다.

지난해 행정자치부가 국내 시민단체 718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시민단체들의 재정기반 중 정부보조금이 4분의 1에 달했다. 정부 정책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시민단체가 정부 주머니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회원들의 회비로 재정을 충당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곳은 전체의 반도 안 된다.

“젊은이들이 그렇게 취업이 안 되는데, 시민운동은 안 해요.”

정 교수는 시민단체에 청년세대가 잘 충원되지 않는 현실도 걱정했다. 참여연대를 이끌어 가는 핵심인력은 53명의 간사들이다. 사법·의회·행정 등 16개의 활동기구에서 상근으로 활동하는 간사들이 없다면 풀뿌리 운동이 이뤄지기 힘들다.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박원석 전 정의당 대표 등도 모두 참여연대 간사 출신으로 시민운동을 이끌었다. 그러나 인지도가 높은 참여연대 외에 대다수 시민단체, 특히 통일이나 평화운동 단체들은 당장 실무자가 부족해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민단체 간사의 경제적 처우가 낮은 것도 원인일 수 있지만, 중소기업 수준의 보수를 주는 단체들도 지원자가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한다. 정 교수는 “시민활동이 전반적으로 약화된 탓”이라고 걱정했다.

   
▲ 참여연대 공동대표 시절 정 교수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를 주장하며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모습. ⓒ 참여연대

젊고 유능한 교수나 법조인 등의 전문가들이 시민활동을 꺼리는 현상에 대해서도 정 교수는 안타까워했다. 시민운동은 연구집단(씽크탱크)인 전문가들과 더불어 청년간사들과 회원들이 참여해 추진력을 얻는다. 전문가 집단이 시민운동의 머리인 셈이다. 하지만 갈수록 대학들이 교수들에게 양적으로 많은 연구 성과를 요구하면서 시민단체의 싱크탱크가 노령화하고 있다고 정 교수는 씁쓸함을 표했다.

지난 총선의 ‘여소야대’로 작은 희망 얻기도 

정 교수는 그러나 ‘여소야대’로 야권의 확장이 일어난 지난 4월의 총선 결과로 작은 희망을 찾았다고 털어놓았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민운동과 그로 인해 파생된 정보들이 유권자들에게 조금씩 전해진 거라 생각해요.”

정 교수는 국민들 사이의 공감대를 정치집단이 어떻게 소화해줄지가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언론이 제 기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의 주문을 언론이 받아들여 정치권에 요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결국 언론이죠. 언론이 (내년) 대선 전에 큰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정치가 대답을 하도록 해야 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정 교수는 학생들 이야기를 꺼냈다. 과거보다 답안지를 잘 써내는 모범생이 많은 것은 좋지만, 책의 내용을 외우는 것만큼 토론이나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과거엔 학생운동이 토론의 장이 됐지만 지금은 공론의 장이 부족한 것 같다는 아쉬움도 보였다. 정 교수는 “이번 학기 마지막 강의는 ‘치맥(치킨+맥주)’으로 마무리했다”며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기 위해 더욱 노력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런 그를 사학과 학생들은 ‘현백 누나’라 부른다.


편집 : 박진우 기자

[황두현 기자]
단비뉴스 편집부, 청년부, 시사현안부 황두현입니다.
기사 몇 줄의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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