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KBS의 경주 지진보도

KBS를 향한 비난이 거세다. 12일 경북 경주시 남서쪽에서 발생한 두 차례 지진에 대한 보도가 미흡했다는 이유다. KBS는 1, 2차 지진 발생 이후 각 3분 30초가량의 뉴스특보를 내보냈다. 두 뉴스특보 모두 “자세한 소식을 이후 정규 뉴스에서 전하겠다”며 마무리했고, 리포트 이후 기존 정규 방송인 시사교양 프로그램 <우리말 겨루기>와 일일연속극 <별난 가족> 방송을 이어갔다. KBS는 다음날 보도자료를 통해 “지진 발생 관련 자막을 내보낸 뒤 속보 체제로 전환하고 속보를 준비했다”고 해명했다. 지진보도는 오히려 민방이나 종편이 돋보였다. JTBC 메인 뉴스 <뉴스룸>은 2차 지진 발생 후 바로 특보 체제로 뉴스 후반부를 모두 지진 관련 보도로 채웠다. 제보 영상을 통해 지진 상황을 전하거나 시민들과 인터뷰를 하고, 전문가 인터뷰 보도를 곁들였다.

▲ 9월 12일 KBS 뉴스특보 화면. 오후 7시 44분 첫 지진 발생 후 15여 분 후인 오후 8시 뉴스특보를 3분 30초가량 진행했다. 특보는 지진 상황을 설명하고 지진해일 가능성을 언급하는 데에 그쳤다. ⓒ KBS 화면(2016.09.12.) 갈무리

놀란 국민은 첫 지진이 발생한 후 어떻게 해야 할지, 또 다른 지진이 일어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KBS 뉴스특보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1차 지진은 1978년(기상청의 계기지진관측) 이후 한반도에서 일어난 지진 규모 가운데 5위 안에 들고, 5.8 규모의 2차 지진은 관측 이래 가장 강한 규모의 지진으로, 영남 지역과 수도권 일부까지 진동이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과 국민안전처 웹사이트가 지진 발생 후 한동안 먹통이었다. 이번 지진은 규모가 커 경주 지역뿐 아니라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진동이 감지됐다. 진앙지인 경북 경주 내남면 일대에서는 주택 지붕과 담벼락이 무너지는 피해가 속출했고, 인근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불안에 떨며 밤을 새웠다. 특히 진앙서 약 25km 떨어진 월성 원전과 방폐장, 52km 떨어진 고리원전에 대한 피해 우려가 컸다.

상황 묘사 리포트에 그친 재난 방송

지상파방송사업자는 <방송통신발전기본법>에 따라 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피‧구조‧복구 등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재난방송을 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KBS는 재난방송 주관방송사다. KBS는 “당시 확인된 정보가 한정돼 특보를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재난 보도의 한계를 주장했다. 그러나 재난방송은 단순히 재난 발생 정보만을 전달해서는 안 된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비상체제로 전환하고, 추후 재난의 발생 가능성, 대피나 피해를 막기 위한 행동요령, 국민들의 불안감을 진정시키기 위한 다양한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KBS는 자체 재난보도준칙에서 재난보도의 목적을 ‘피해 최소화, 혼란 방지, 복구 촉진’에 두고, 18가지 일반 원칙을 제시했다. 재난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 외에 ‘중복·편중 보도 지양’ ‘예방 정보 제공’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 등을 원칙으로 삼았다. 비영리 공익단체인 ‘저널리스트를 위한 국제센터(International Center for Journalists; ICFJ)’의 재난보도준칙에서도 재난방송이 재난대처방안이나 안전수칙 등을 담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시청자가 재난의 양과 정도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적인 정보를 활용해 정밀보도해야 하며 대피방법과 예방법, 비상전화번호 등을 구체적으로 안내할 것을 제시한다.

이날 KBS가 특집뉴스에서 보도한 32개 리포트 중 일반 뉴스 리포트는 9개였고, 나머지 23개 리포트가 지진보도였다. 하지만 지진보도 대개가 단순히 지진 발생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쳤다. 6개의 생활 정보 뉴스 역시 ‘전국 피해 소식 및 대피 상황’ ‘카카오톡 불통’ 등 크게 두 꼭지에서 같은 리포트로 채워졌다. “외부활동을 자제하라” “지진 충격과 2차 피해에 대해 각별히 주의하라”는 기상청과 소방본부의 선언적 코멘트를 한 줄 덧붙였을 뿐, 구체적인 행동지침 안내 등은 리포트에 담기지 않았다.

▲ 지진이 일어난 12일 KBS 9시 뉴스 지진 관련 리포트 분석. 단순히 지진 상황을 설명하는 지진 발생정보 리포트가 지진 관련 보도의 절반이었다. ⓒ 박상연

재난 취약계층에 대한 재난방송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장애인 방송은 시‧청각 장애인을 위해 자막과 수화통역, 그리고 화면해설 방송으로 이뤄지는데, 이번 KBS의 지진 재난 방송에서는 제대로 이뤄진 것이 없었다. 3차례의 뉴스 특보와 메인 뉴스에서 기본 자막 외에 수화통역이나 화면해설은 이뤄지지 않았다. 장애인은 재난 발생 시 스스로 대처하기가 힘든 ‘재난 약자’다. 한국기자협회가 제정한 재난보도준칙 제37조는 노약자나 지체부자유자, 다문화가정, 외국인 등 재난취약계층에게 재난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언론사의 임무라고 밝히고 있다. 방송통신발전기본법 역시 재난방송 주관사인 KBS가 ‘노약자, 심신장애인 및 외국인 등 재난 취약계층을 고려한 재난 정보전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사상 최대 5.8 규모의 지진이 일어난 날 KBS의 재난방송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TV나 라디오를 끄지 말라”

우리 재난방송 시스템의 취약성은 이웃 일본과 대비할 때 명백하게 드러난다. 일본은 <재해대책기본법>에 따라 NHK를 방재 관련 지정공공기관으로 지정하고, <방송법>을 통해 방송사업자는 방재 관련 방송을 하도록 의무화했다. 재난방송과 관련해서 일본과 한국의 법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일본의 재난방송 주관사 NHK의 대처 방식은 이번 KBS의 방식과 확연히 다르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 지방에서 일본 관측 사상 최대 규모(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 대비 체제가 잘 되어 있는 일본은 대지진 발생과 동시에 재난방송 체제로 전환했다. NHK는 국회 예산심의 생중계 화면 위로 지진 발생 지역을 그래픽으로 담은 속보 자막을 내보내면서 앵커의 음성으로 지진 소식을 보도했다.

▲ 기상청의 긴급지진속보 화면. 지진 발생 시각과 영향권 안내가 자막으로 나오고, 음성으로도 소개한다. 이뿐 아니라 “해일에 주의하라.” “넘어지기 쉬운 물체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떨어지는 물체를 조심하라.” 등의 음성 안내를 반복적으로 한다. ⓒ NHK 방송(2011.03.11.) 갈무리.

NHK는 지진 발생 2분 만에 뉴스 특보 체제로 전환하고, 지진과 지진해일 정보를 전했다. 앵커는 흔들리는 현장 화면을 보여주면서도 시청자에게 “진정하라”며 안정시키고, 지진 이후 예상되는 피해들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 정보들을 소개했다. NHK는 생방송을 계속하며 앵커는 새로운 정보를 계속 전하겠다며 TV나 라디오를 끄지 말 것을 당부했다. 현지 생중계 이후 NHK는 그래픽으로 지진 정보를 전달하면서, 영어를 중심으로 한국어, 포르투갈어 등 외국어 정보 서비스까지 제공했다.

▲ 흔들리는 도쿄 시내를 생중계하는 화면. 동시에 앵커는 건물 붕괴와 산사태의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떨어지는 물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지진이 멈출 때까지 안전한 장소에 머무를 것을 반복적으로 안내했다. ⓒ NHK 방송(2011.03.11.) 갈무리
▲ 그래픽을 활용해 지진 피해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면서 동시에 음성으로 영어, 한국어, 포르투갈어 등의 외국어 정보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 NHK 방송(2011.03.11.) 갈무리

재난방송은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 때 한국 언론은 재난보도에 실패했다. KBS를 비롯한 거대 언론사들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당시 재난보도 실패의 진통을 겪고 나온 처방은 재난보도준칙 제정이었다. 2015년 7월 KBS도 기존 재난보도준칙을 참고하여 체계성과 구체성을 전면 보완한 새로운 형식의 재난보도준칙을 발표했다.

이번 경주 지진은 한국 언론, 특히 재난방송 주관사인 KBS가 지난 실패를 딛고 재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그러나 재난주관 방송사 KBS는 국민 곁에 없었다. 비상방송 체제로 전환해 지진 대처 방안과 안전 수칙 등 필수적인 재난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다. 특보는 그저 같은 정보를 반복했을 뿐이고 장애인이나 외국인 등 재난 정보를 얻기 힘든 ‘재난 약자’들을 위한 보도 역시 없었다. 공영방송 KBS의 공적 책무와 존재 이유를 국민들이 다시 묻고 있다.


편집 : 박경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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