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나'

▲ 김슬기

“미인인데(혹은 잘생겼는데) 내 스타일은 아니야”라는 말은 소개팅이나 미팅, 헌팅 등 이성을 만나는 자리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미(美)의 조건은 타인과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기억의 집합소이기 때문이다. 기억의 집합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유전적 기억, 다른 하나는 후천적으로 만들어가는 사회적 기억이다. 이 둘은 기억의 집합이 되어 오롯이 ‘나’를 나답게 만든다. ‘미’ 또한 하나의 기억이니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들을 지니고 살아가면서, 미의 기준을 학습하게 되고 미적 취향이 공고해진다. 개인마다 미인의 이상형은 제각각일 수 있다. 하지만 흔히 ‘강남미인’으로 불리는 성형미인들은 얼굴이 똑같아 보인다.

한국은 성형공화국이다. 신사역에 내리면 성형 전후 사진을 비교해놓은 광고판이 즐비하다. 제각기 얼굴이 다르지만, 성형 후에는 누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똑같은 모습을 하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성형이 내 인생을 바꿨다고 대중들을 유혹한다. 이를 루키즘이라고 한다. 루키즘은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새파이어에 의해 새롭게 쓰인 용어인데, 외모가 개인의 우열과 성패를 결정한다고 믿어 외모에 집착하는 경우를 말한다. 성형은 개인 선택의 문제이다. 더구나 성형중독 또한 자기만족(혹자는 자기관리)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루키즘을 개인 문제로 볼 건지 한국사회 병리현상으로 볼 건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미인 기준이 서양식으로 바뀌기 시작한 때는 1920년대 중반 ‘미인공진회’(현재 미스코리아대회)가 개최된 이후부터다. 미스아메리카 등 세계적 미인들이 소개됐고, 세계 미인의 최정상이 미스유니버시티로 여겨지면서 한국에도 새로운 미인의 기준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1927년 <매일신보>가 세계적 미의 기준이랍시고 ‘키가 작고 몸이 가늘고 눈자위가 검은 이가 제일’이라고 보도했다. 여기서 한국의 전통미인과 다른 점은 여성의 몸매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미인공진회 이전에 한국 미인을 대표하는 여성들이 실려있는 <조선미인보감>에는 얼굴 묘사와 장기는 자세히 적혀있지만 몸매에 대한 서술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세계미인대회가 도입되었을 뿐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가 방영되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대중문화는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젊은이들 사이에 서구문화를 동경하며 모방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났다. 여성들 또한 외모를 서양 여배우처럼 치장하게 되었다. 동양인은 서양인과 골격부터 다르다. 아무리 비슷하게 따라 할지라도 완전한 서양인이 될 수는 없다. 서양인에 대한 동경은 동양인에게 외모 콤플렉스를 불러일으켰고 이것이 루키즘의 시발점이다.

▲ <조선미인보감>의 내용. ⓒ 구글 이미지

‘미인인데 흔한 얼굴’이라는 외모 평가는 마치 연기파 배우, 실력파 가수를 칭하는 것처럼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다. 미(美)의 어원을 살펴보면 미인은 희귀한 산물임이 당연하다. 미(美)는 ‘양(羊)’과 ‘대(大)’가 합쳐진 단어인데 살찐 양이란 뜻이다. 살찐 양은 신께 드리는 제물을 뜻한다. 신에게 바치는 양을 고르려면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이런 조건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양이 길에 채일 만큼 흔한 것이 성형공화국의 귀결이다. 서양의 미적 기준이 만연했지만 폭발적으로 루키즘 현상을 가속화한 것은 고급주점의 등장이었다. 외모가 중요한 고급주점 여성 종업원들의 신분상승은 ‘미=돈=신분상승’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외모를 이용해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성형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외모 콤플렉스를 보완하기 위해서 성형했다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콤플렉스를 보완하기 위한 성형은 사회적 기억이 아니라 유전적 기억에 따른 성형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이는 사회병리현상이 아닌 개인의 문제이다. ‘내 스타일’ 곧 취향이 생기는 이유는 ‘나’의 유전적 기억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태초부터 더 좋은 유전자를 생성하기 위해 반대형질에 끌리도록 진화해왔다고 한다. 키스는 성관계 이전에 타액을 섞는 행위다. 키스로 상대방과 나의 유전자가 결합했을 때 이상적인 조합인지 아닌지 테스트하는 것이다.

미녀나 미남이 아닌데도 끌리는 이성이 있던 경험은 누구나 했을 터이다. 만약 작은 눈에 도톰한 입술과 조금 통통한 몸매의 이성에게 끌렸다면, 당신은 큰 눈에 얇은 입술과 약간 마른 몸매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크다. 이는 본능적 이상형이니 나중에 ‘내 눈이 삐었구나’ 하고 당황할 필요는 없다. 나아가 이성뿐 아니라 자신의 다른 형질을 가진 동성에게도 끌릴 수 있다. 이는 대개 동경으로 나타난다. 성형은 동경하는 동성의 외모를 모방하기 위해 할 때도 있다. 본인은 콤플렉스를 고치려는 방향으로 성형을 했다고 하지만 결과를 보면 본인의 –부분을 +로 바꾸지 –를 더 심한 –로 바꾸지는 않는다.

루키즘에서 비롯된 성형중독은 개인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영역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유독 ‘성형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선전이 쉽게 먹히는 것은 우리가 저마다 개성을 가진 존재인 인간을 규격화한 제품으로 보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포장된 겉모습으로 우열을 가르는 상업주의의 한 폐단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외모지상주의에도 언젠가 균열이 올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을 해본다. 최근에는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청년들을 중심으로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를 ‘나답게’ 표현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군중 속에서도 군중심리에서 벗어나 외로움을 타는 이도 늘고 있는 듯하다. 적어도 상대방을 외모로 판단하면서 상대방에게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바라는 이기주의에서는 벗어났으면 좋겠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8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숙명여대 3학년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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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김평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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