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 수상작/첨삭후기

[제시어] ‘나’
[수상작] 
장원:
<렘브란트의 자화상과 사진보정> 신혜연 (저널리즘스쿨 1학년)
우수: <성형공화국의 이기주의> 김슬기 (숙명여대 3학년)
       <울보의 변명> 민수아 (저널리즘스쿨 1학년)
       <’나’와 ‘남’에 깃든 성찰> 송윤아 (서울시립대 4학년)
       <나는 왜 코스모폴리탄이 못 되나> 신미주 (싱가포르국립대 졸업) 
       <나에게 다가오는 ‘보이지 않는 손’> 최치명 (경북대 대학원 졸업)

7월 중순 열린 ‘제13기 언론인을 꿈꾸는 대학언론인 캠프’ 이후 보내온 칼럼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재학생들이 같은 제시어로 써낸 여름방학특강 과제 중에서 6편을 골라 시상하고 <단비뉴스> [상상사전]에도 올리겠습니다. 수상작이 아닌 칼럼은 글쓴이에게만 첨삭본을 메일로 보내겠습니다.

수상자를 위해서는 격려의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장원에게는 <미디어오늘>이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여는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 VIP초대장을 드리겠습니다. ‘스토리텔링의 진화’를 주제로 하는 이번 컨퍼런스에는 미디어업계의 혁신을 주도하는 간부들과 신예학자들이 1박2일간 36개 강좌를 엽니다.

실은 미디어업계의 최신동향을 공부하고 싶어 22만원의 참가비용을 물고 등록을 하려 했더니 VIP 초청대상이라며 표 2장을 보내겠다고 하네요. 나도 물론 참석할 텐데 자료집과 점심을 제공하고 저녁에는 생맥주 파티까지 연다니 언론인들을 사귀는 데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우수상을 받은 5명에게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로이터사진전 입장권 2매씩(26000원 상당) 또는 책 한 권씩을 선물하겠습니다. 사진전 입장권은 6매밖에 없어 원하는 이가 3명을 넘으면 연락해오는 순서대로 드리겠습니다. 수상자는 사진전 입장권 또는 책을 선택한 뒤 메일(hibongsoo@hotmail.com)로 주소를 알려주면 부쳐주겠습니다. 책은 인터넷서점을 통해 바로 보내겠습니다.   

[선물하고 싶은 책]
<우리글 바로쓰기1> 이오덕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이상헌
<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문화의 수수께끼> 마빈 해리스
(그밖에 꼭 읽고 싶은 책)

▲ ‘13기 캠프’에서는 1박2일간 14개 특강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 구민수
 
'어떤 인생도 일부분만 부각시키면 드라마가 된다'

[첨삭후기] 이봉수 교수

백일장 제시어를 ‘나’로 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성찰해볼 기회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를 중심에 놓고 쓰는 글로는 일기와 자기소개서가 대표적인데, 일기는 쓰는 이조차 드문 것이 요즘 세태이고 보면 글쓰기를 통해 자기를 돌아볼 기회는 자기소개서를 쓸 때 말고는 거의 없다. 

저널리즘스쿨에서 ‘자기소개서 클리닉’을 열어놓고 첨삭지도를 해주면서 자주 느끼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취재가 별로 안 돼 있다는 점이다.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니 자존감을 드러내기는커녕 남의 자소서나 모방해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를 ‘표준형 범생이’로 그려놓는다. 언론사에서 뽑기 싫어하는 유형이다. 

언젠가 한 학생에게 취업알선을 위해 자소서를 보내오라 했더니 쓸 게 없다고 하소연했다. 제천에서 태어나 제천여고와 역시 제천에 있는 세명대를 졸업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진학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학부 때 지도교수를 우연히 만났더니 “그 학생은 소를 기르는 부모님이 볼일이 있어 먼 데 가면 소여물을 주느라 수업 빼먹고 일찍 집에 가는 날도 있다”고 얘기하는 게 아닌가! 학생을 불러 “왜 그런 얘기를 자소서에 쓰지 않느냐”고 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 것도 쓸거리가 됩니까? 부모님 안 계실 때 소가 출산해서 송아지 받은 적도 있는데요.” 

그 내용은 ‘명품 자소서’를 만드는 데 삽입됐고 곧 취업으로 이어졌다. 소설가 앤 비티가 말했듯이 어떤 인생도 일부분만 부각시키면 드라마가 된다. 언젠가는 아버지가 암환자였던 딸부잣집 학생의 자소서를 아래처럼 고쳐준 적이 있다. 

‘나는 배 과수원 집 막내딸이다. 일손은 턱없이 부족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빠진 가족 노동력의 공백을 딸들이 메워주기를 바랬다. 달리 수입이 없으니 각자 일한 노임으로 등록금을 하라고 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노동의 가치를 깨달았다. 개학 뒤 새까맣게 그을어버린 나를 보면서 친구들은 “해외여행 갔다 왔냐”고 물었다.’ 

한 문단이 한 편의 콩트나 다름없고, 자소서에 ‘해외로 교환학생 갔다 왔다’고 스펙을 자랑하는 경쟁자를 철부지로 만들어버린다. 제7회 백일장 첨삭후기에도 썼지만 독창적이고 감성 넘치는 글을 쓰려면 네 가지를 염두에 두는 글쓰기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사물의 본성이나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직관(Intuition), 언어에 대한 성찰(Introspect), 장소와 역사에 대한 기억(Memory),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Personalization)이 그거다.

‘나’라는 주제는 무엇보다 자신을 드러내기에 좋다. 글 쓸 때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보다 포장하기를 좋아한다면 남을 감동시킬 수 없다. 학생들이 보내오는 자소서도 대부분 제 자랑으로 일관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약점을 밝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고생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 옛 선비들은 아는 것이 실천으로 이어져야 온전한 지식인이라고 보았고 자기 성찰의 글을 통해 실천의지를 가다듬었다. 

다른 주제의 글을 쓸 때도 남의 얘기를 늘어놓거나 인용하는 데 그친다면 결코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저널리즘의 영역인 칼럼에는 적어도 네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한겨레>에 ‘시민편집인의 눈’으로 쓴 ‘칼럼과 여론면 혁신으로 진보신문 활로 찾아야’(2009.8.27)라는 글의 일부를 여기 옮긴다. 

‘오피니언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영국의 권위지들을 9년 가까이 접하면서 알아내고 싶었던 의문은 세계적 명성의 칼럼니스트들이 읽히는 칼럼을 쓰기 위해 어떤 수법을 동원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수법의 키워드를 뽑아보니 공교롭게도 ‘i’로 시작하는 네 단어로 요약됐다.

첫째, 새로운 정보가 있다(informative). 정보가 있는 칼럼을 쓰기 위해 끊임없이 취재한다. 그러나 국내 신문 칼럼이나 사설 중에는 처음 상당 부분을 스트레이트 기사 재탕으로 채우는 경우도 흔하다. 

둘째, 지적 욕구를 충족시킨다(intellectual). 한국방송(KBS)에 입사한 한 제자는 세미나 시간에 “쉬고 싶을 때 방송을 보고, 똑똑해지고 싶을 때 신문을 본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모두들 ‘아, 그래’라는 반응이었다.

셋째, 흥미롭다(interesting). 재미없는 칼럼은 읽는 것도 고역이어서 독자의 이탈을 가져온다. 

넷째, 영향력이 있다(influential). 폴 크루그먼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칼럼이 상당수 대중을 격분시키지 않는다면 그 필자는 시간을 낭비한 것’이라고 써놓았다.’ 

이번에 장원으로 뽑은 ‘렘브란트의 자화상과 사진보정’이라는 칼럼은 이런 요건을 가장 많이 갖추었다. 실물 그대로 초상화를 그리려 한 렘브란트의 자존심과 취업난 시대에 조금이라도 잘 보이기 위해 사진보정도 불사하는 청년들의 고뇌를 잘 대비시켰고, 렘브란트로 시작해서 렘브란트로 마감한 수미일관의 필법도 깔끔했다. 

우수작 중에도 장원한 것과 우열을 가리기 힘든 글이 있었지만 그야말로 ‘피투성이’가 된 게 많았는데 참신한 발상이 아까워 끼워 넣은 것도 있다. 수상작들도 첨삭본을 열어보면 잘못된 글쓰기 습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프로가 되려면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장벽이다글에 나타나는 공통의 문제들을 자세히 파악하려면 과거 ‘피투성이 백일장’ 첨삭후기들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편집 : 유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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