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S 제천나들이 기획] ④ 장락사 편

1학기가 끝나갈 때쯤이면 “많이도 공부했네”라는 뿌듯함과 함께 “이제 적당히 하자”라는 거만함도 생겨난다. 심신이 지친 탓도 있겠지만, 정신 상태가 해이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거만함을 없애기 위해선 내가 우주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달아야 한다. 1000년을 지켜온 제천의 장수탑 칠층모전석탑이 눈에 들어온 이유다.

▲ 높이 9.1m의 칠층모전석탑과 장락사. ⓒ 박상연

충북 제천시 장락동에 위치한 칠층모전석탑은 통일신라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보물 459호다. 어떤 사람이 세웠는지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제천 외곽으로 뻗어진 대로변에 위치한 모전석탑은 높이 9.1m로 내방객들에게 장중한 기풍을 보여준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과 따스한 햇볕을 동무 삼아 조금만 걸으면 금방 찾을 수 있다. 사찰 뒤 주변 야산에는 소나무와 잡목이 에워싸고 있다. 옆으로는 두구메 자연부락이 있고 앞으로는 장락들판이 펼쳐져 있다.

모전석탑을 세울 당시의 절에 관한 기록은 없지만, 부근에 많은 사찰이 있었다는 구전이 예로부터 내려오고 있다. 제천시 교동 고개를 넘으면 현재 장락동 일대가 통일신라 시대 선덕왕 재위 시절의 절터였다는 것이다. 당시 절과 절 사이가 회랑으로 이어져 승려들이 눈비를 맞지 않고도 이동할 수 있었다고 하며, 사월 초파일과 칠월 칠석날이면 3,000여 명의 승려가 목탁과 바라를 치며 법요식을 거행했다고 하니 그 성대함을 가늠할 수 있다.

▲ 장락사지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이어진 시굴조사에서 나온 유물을 통해 제천지역에서 최초로 확인된 삼국시대 불교유적이라는 점이 발견됐다. ⓒ 박상연

현재의 장락사는 1964년 송학산 강천사에서 수도하던 수도승 법해 스님이 상주하면서 불법을 알리기 위해 창건했다. 바로 옆쪽엔 장락사지가 있다. 제천 지역에서 확인된 불교 유적 중 가장 이른 삼국 시대에 창건된 절로서 2003년에 발굴됐다. 이때 ‘장(長)’자가 새겨진 기와들이 발견되어 이곳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장락사’ 터임이 확인된 것이다. 지난 2007년 장준식 충청대 박물관장은 “미술사적, 역사적 특징으로 볼 때 국보로 승격되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장락사지 옆 새로 지은 장락사에 들어서니 혜원 주지 스님의 법회가 대웅전에서 한창이었다. 스무 명 남짓한 신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스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때마침 이날이 음력 초하루라 동네 신도들이 모여 절밥을 해먹는 날이었다. 운 좋게도 절밥을 맛볼 수 있는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조미료가 강하고 매일 비슷한 반찬만 나오는 기숙사 밥에 입맛을 잃었는데 직접 만들어 온 고구마 줄기에 열무김치, 취나물 등을 된장과 상추에 싸먹으니 밥 한 그릇이 뚝딱 해치워졌다.

▲ 장락사는 1964년 송학산 강천사에서 수도하던 수도승 법해 스님이 상주하면서 불법을 알리기 위해 창건됐다. ⓒ 박상연

식사를 마치자 혜원 스님은 따로 할 말이 있다며 우리를 불렀다. 스님은 장장 2시간 동안 결혼 문제, 교육 문제 등 삶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생각은 행동이 되고,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인격이 되고, 인격은 삶이 된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스님은 현재의 생각을 바르게 하고 삶을 충실하게 살 것을 충고해 주셨다.

책은 머리로 습득하는 공부라면, 여행은 발로 하는 공부라고 했던가. 가벼운 마음으로 장락사를 들렀던 우리는 신도들의 따뜻한 정이 담긴 절밥도 나누어 먹고, 노승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까지 들으며 책으로 배울 수 없던 것들을 배웠다. ‘세렌디피티’, 준비된 우연 같은 여행이었다. 세상의 배움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행을 다니고, 사람을 만나고 역사를 마주하자. 책에서 배우지 못한 배움이 그 속에 가득하다. 

■관련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NOkeXn45juI

■여행 정보
장락사는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에 있는 절이다. 입장료는 따로 받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시외버스터미널 주변에 있는 하나은행 버스정류장에서 ‘장락삼거리’로 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된다. 장락삼거리에서 750m 정도 걸어 들어가면 장락사를 만날 수 있다. 관련 문의는 제천시 관광 안내 콜센터(043-641-6731~3).

■주변 가볼 만한 곳
전국에 벽화 마을이 널렸지만, 기계로 찍어낸 듯 급하게 만들어낸 곳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충북 제천시 교동에 있는 교동 민화 마을은 2009년부터 차근차근 그려온 민화 100여 점이 마을 구석구석을 뒤덮고 있다. 특히 이 마을은 ‘민화’를 내세웠다는 것이 특징인데, 호랑이, 학 등의 민화로 시작해 담벼락 넘어 눈만 빼놓은 아이, 각종 만화 캐릭터를 그려놓은 벽화까지 다양한 벽화로 차 있다.

교동민화마을에는 지역주민과 문화예술인이 함께 운영하는 ‘관광두레’도 조성되어 있어 민화 그리기 체험, 대장간 체험, 골목 놀이 체험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관련 문의는 제천시 관광 안내 콜센터(043-641-6731~3).


편집 :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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