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신과 인간

▲ 민수아 기자

“눈빛이 너무 좋으세요. 좋은 말씀 듣고 가세요.” 맞지도 않은 높임 표현에 먼저 신경이 거슬리고 내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대화를 강제하는 태도에서 더 큰 불편함을 느낀다. 그것도 제대로 된 종교가 아닌 사이비일 경우 나의 분노는 더 커진다. 대학에 간 뒤 혼자 길을 걸을 때가 많아지면서 이들에게 시달리는 일도 늘었다. 일부 종교단체에 국한된 것이라고 믿었지만, 신앙과 종교에 대한 거부감은 커져만 갔다. 신은 왜 내 얼굴에 처진 눈꼬리를 붙여준 것일까? 말 걸기 쉽게 생긴 외모로 성가신 일에 자주 휘말리게...

우리 헌법 제20조 1항에는「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되어 있다. 종교의 자유에는 종교의 선택·변경의 자유, 종교적 사상발표의 자유, 예배집회의 자유, 종교결사의 자유, 그리고 무종교의 자유를 포함한다. 한국 갤럽이 2014년 조사한 <한국인의 종교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종교 인구 분포는 불교 22%, 개신교 21%, 천주교 7%로 나타났다. 유의미한 숫자로 드러나지 않은 ‘기타 종교’ 인구 비율을 0으로 본다면 나머지 50%는 비종교인이다. 이 50%의 인구는 ‘무종교의 자유’를 주장할 권리를 갖는다.

2014년 여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통해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았다. 교황은 세월호 유족을 비롯해 위안부 피해자, 쌍용차 해고노동자, 용산참사 피해자 등 한국 사회의 소외된 이들을 만났다. 고통받는 자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종교인의 참모습도 보여줬다. 무종교의 자유를 잠시 뒤로 미룰 만큼 감명 깊었다. 하지만 교황에게는 위로를 받으면서 범인(凡人)에게 위로받지 못하는 이들의 현실에 씁쓸함을 느꼈다. 인간의 영혼은 신이나 영웅을 통해서만 위로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같은 인간끼리 서로의 영혼을 보듬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이상(理想)일까? 욕심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 만신 김금화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비단꽃길>의 스틸컷. '만신'은 무녀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 네이버 영화

박찬경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만신>은 한국의 무속신앙을 다룬다. ‘만신’은 무녀를 높여 부르는 말로 영화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만신 김금화의 삶을 그린다. 만신은 굿을 통해 한국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 등 국가적 참사 때마다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고 산 자를 보듬는 씻김굿을 해왔다. 그녀는 인간이 지닌 경계를 붕괴시키며 자신을 소통 창구로 작동시켜 신과 인간을 맺어준다. 박 감독은 ‘공동체 구성원이 모두 평등하다는 것이 무속의 진짜 매력’이라고 핵심을 찌른다. 속세에 체제화한 종교를 강제하기보다 산 자를 보듬는 씻김굿 한 판이 인간의 영혼을 더 위로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는 세상이다.


세 명대 저널리즘 스쿨 1학기에 개설되는 인문교양수업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담당교수 김문환)].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한 서양 문명사 강의가 펼쳐집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 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강민혜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