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지중해 모자이크 문명기행] ⑥ 오디세우스

방물장수로 둔갑해 여자들이 사는 궁정으로 간 오디세우스. 여자들이 좋아할 물건을 잔뜩 후궁에 풀어놓아요. 공주들이 입을 벌리고 물건을 탐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요. 그런데, 유독 한 여자만 시큰둥한 거예요. 여자가 좋아할 물건을 보고도 신경 쓰지 않는다면 남자란 얘기잖아요. 그래도 아직 남자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죠. 오디세우스는 미끼를 하나 더 던집니다. 이번에는 슬그머니 멋진 창과 방패를 풀어놓았어요. 아킬레스는 본능적으로 불쑥 손을 내밀어 방패에 손을 대요. 여장 남자 아킬레스의 진실은 그렇게 탄로 나고 말았어요. 모자이크는 바로 이 순간을 그린 겁니다. 일설에는 오디세우스가 리코메데스 왕궁 내실에서 전쟁을 알리는 뿔 나팔을 불었답니다. 공주들이 혼비백산 사방으로 날뛰는데, 여자 옷을 입은 아킬레스만이 무기고로 달려갔다가 탄로 났다고도 해요. 아무튼, 아킬레스가 발각되는 흥미진진한 이 장면은 모자이크 뿐 아니라 프레스코나 조각으로도 다뤘는데요. 루브르 박물관에는 석관(石棺), 나폴리 박물관에는 프레스코가 전시돼 있어요. 아킬레스는 리코메데스왕의 딸인 공주 데이다메이아와 혼전 연애로 유복자를 두기도 하죠.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다루기로 해요.

▲ 발각되는 아킬레스 프레스코. 2-3세기. 나폴리 박물관. ⓒ 김문환

테티스는 전쟁에 나서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죠. "참전하면 일찍 죽는 대신 큰 명성을 얻고, 참전하지 않으면 평범하게 천수를 누릴 것이다". 굵고 짧게 살 것인가, 가늘고 길게 살 것인가. 이 말을 들은 아킬레스는 명예를 택해요. 죽음을 무릅쓰고 50척의 배를 이끌고 부하들과 전장으로 떠나요. 이런 아킬레스의 영웅 정신은 훗날 오래도록 그리스 청년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어요. 아킬레스 신화는 전쟁이 잦던 고대 그리스에서 청년들의 참전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산물인지도 모르지요.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만든 비비안 리 주연의 런던 배경 영화 <애수(哀愁)>처럼요. 전사한 줄 알았던 애인 로이 대위(로버트 테일러)가 살아 돌아오자 사랑의 맹세를 지키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화류계 생활로 빠져든 자책감에 목숨을 끊는 비련의 주인공 마이라(비비안 리). 그녀처럼 되지 말고, 혹시 남편이나 애인이 전장에 나가도 너무 걱정 말고, 혹 전사 통지서가 와도 기다리라는 기막힌 참전 메시지를 담은 영화 치고는 감동이 흘러넘쳤던 영화예요. 지배 권력이 이렇게 드러나지 않게 애국심과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전쟁터로 국민을 몰고 가기도 쉽지 않답니다.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영화는 더 있죠. 아킬레스와 혼전 연인이 생이별하듯이 2차 세계 대전으로 생이별하는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비극 소피아 로렌 주연의 <해바라기>요. 냉전시대 소련의 풍요로운 모습을 담았다고 해서 상영 금지됐던 1970년 작 <해바라기>애서 갓 결혼한 신혼부부의 비극에 가슴 적셨는데요. 우크라이나 지방 드넓은 해바라기 밭을 배경으로 한 주제음악은 올드 팬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요. 루마니아 출신 게오르규 원작 안쏘니 퀸 주연의 1967년 작 <25시> 역시 전쟁의 상처를 전해줍니다.

여기서 잠깐 터키 탐방여행에 대해 소개할까요. 이스탄불 구도심은 트라키아 지방 그러니까 유럽에 속해요. 터키의 서북쪽 맨 끝이지요. 터키의 주요 유적지는 아나톨리아 그러니까, 아시아 대륙에 자리해요. 장거리 고속버스를 타고 여행하게 되죠. 가지안테프도 마찬가지고요. 이스탄불 오토가르(시외 버스 정류장)는 전차와 지하철로 쉽게 갈 수 있어요. 이스탄불 관광의 중심지 술탄 아흐메트 역에서 전차에 올라 공항 방면으로 5번째 역에서 열차를 갈아타고 6번째 역이 오토가르지요. 서울로 치면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같은 거요. 주의할 점은 터키의 장거리 버스는 우리와 달리 버스 회사별로 마련된 정차장에서만 버스가 출발하는 거예요. 그러니, 술탄 아흐메트 전차 역 바로 앞의 버스회사 '메트로(Metro)' 사무소에서 표를 샀다면, 오토가르의 '메트로' 정차장에서 버스를 타야 하는 거죠.

▲ 이스탄불 오토가르. 버스회사 이름이 메트로. 가지안테프까지 17시간 걸린다. ⓒ 김문환

이스탄불에서 오후 2시 30분에 버스에 올라 밤새 달려 다음 날 아침 7시 30분에 가지안테프에 도착했어요. 17시간 걸리더라고요. 버스에는 기사 말고 조수가 탑니다. 조수가 수시로 물도 주고 특히 손에 화장수를 뿌려 줘 코끝을 상큼하게 만들어 주곤 하죠. 밤새 달려 휑 하니 먼지 날리는 가지안테프 외곽 버스 정류장에 내리는 순간 갑갑해집니다. 영어가 전혀 안되거든요. 우리네 마을버스 같은 시내버스를 무작정 타고 손가락으로 손바닥 가운데를 찍으며 시 중심가로 가느냐고 바디 랭귀지를 했지요.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언덕 넘고 고개 넘고 우리네 달동네 비슷한 지역을 여러 번 지나더니 마침내 탁 트인 큰 길이 나와요. 기사가 내리라는 시늉을 해 내려보니, 터키 어딜 가도 있는 아타 튀르크 동상이 광장 한가운데 서 있어요. 중심가에 온 겁니다. 이렇게 찾아간 가지안테프 박물관의 두 번째 작품을 다음 호에 살펴봅니다.

▲ 가지안테프 중심가 아타 튀르크 얼굴 조각. ⓒ 김문환

편집 : 유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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