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13기 대학언론인 캠프’

이방인의 초행길을 반기려는 걸까? 내내 어둡던 하늘이 잠깐 맑게 갠 15일 오후 충북 제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전국 각지에서 온 예비언론인 35명이 모였다. 1박2일로 진행되는 ‘제13기 언론인을 꿈꾸는 대학언론인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장현은(22∙한동대 언론정보문화)씨는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고, 한설이(24∙서울여대 언론홍보)씨는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고 말했다. 이유는 달랐지만 설렘과 기대로 반짝이는 눈빛은 비슷했다.

“진보언론도 무기력한 괴물”

이봉수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은 "최근 유사 캠프가 많이 생기고 언론사 입사시험까지 겹치면서 예년보다 참가자가 줄었다"고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세저리 캠프에 온 여러분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겠다"며 참가자들을 환영했다. 이 원장은 “저널리스트는 ‘불편’과 ‘진실’을 대면하는 사람”이라며 “저널리즘스쿨의 인텐시브(intensive) 코스가 불편하다면 언론인이 되는 걸 포기해야 한다”고 말해 학생들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 ‘13기 캠프’에서는 1박2일간 14개 특강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 구민수

이 원장은 ‘무엇이 우리 가슴을 뛰게 만드나’라는 주제의 첫 강의에서 외국 일류신문과 한국신문을 비교하며 한국언론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그는 <한겨레>와 <경향신문> 에 자신이 쓴 ’청와대 기자들은 죽었다, 민주주의와 함께’ 등 시민편집인 칼럼도 언급하며 “한국 언론은 힘이 너무 세 괴물이 됐지만 막상 다뤄야 할 이슈는 외면하거나 왜곡하는 사례가 너무나 많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디어 상호비평은커녕 내부비평도 없는 한국언론을 두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진보언론도 다뤄야 할 것을 다루지 않는 등 문제가 많아 무기력한 괴물이 되어간다”며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가디언>이 미디어 기사를 일상적으로 내보내고 주간 섹션으로도 집중 보도하는 사례를 들며 미디어 비평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사회안전망 구축해야” “임대주택 더 지어야”

더위를 식히는 수박을 곁들인 저녁식사 뒤 ‘브렉시트의 의미와 교훈’를 주제로 한 제정임 교수의 ‘시사현안 백분토론’이 진행됐다. 제 교수는 “소득불평등이 성장잠재력 하락, 경제위기 가능성 증가 등 경제적 영향뿐 아니라, 능력주의 규범 붕괴, 사회병리 현상 증가, 갈등과 범죄의 증가 등의 사회적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며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 캠프 참가자들이 제정임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다. ⓒ 임국정

참가자들은 대안으로 교육개혁에서 조세제도 개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이병희(27∙청주대 국어교육)씨는 “교육불평등이 문제”라며 “사교육이나 대학등록금 문제 등을 법 제정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재원(25∙숙명여대 독일언어문화)씨는 “법인세 중 대기업 실효세율을 높여야 한다”며 “돈을 더 걷어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유경선(29∙고려대 신소재공학)씨는 “임대주택 건설 등 국가에서 해결하는 방법이 필요하다”며 주거비 문제까지 생각해봐야 함을 지적했다.

“왜 기자가 되고 싶은가?” 면접용 질문 아니다

메르스 사태 당시 보건당국은 삼성서울병원을 D병원으로 내보냈고, 많은 언론사는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세상을 바꾸는 힘: 탐사보도’ 강의를 맡은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는 언론이 실패할 때 우리 사회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지적하며 “사회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을 때 경고음을 울려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첫날 마지막 강의는 <한겨레> 서영지 기자가 맡았다. 서 기자는 '서울대 강석진 교수의 성추행 사건'과 ‘진경준 검사장의 수상한 주식대박 의혹’ 기사 등으로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기자상 등을 다섯 번이나 받을 정도로 ‘잘나가는’ 세저리 졸업생이다. 왜 기자가 되고 싶은가? 면접의 단골 질문이지만 대답하기 쉽지 않다. 서 기자는 “수차례 면접을 준비하며 면접용 질문만이 아님을 알게 됐다”며 “연극 준비로 신문을 읽으며 기사 하나가 작은 변화의 지점을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무대에서 내려와 기자가 되려 했다고 답했더니 좋은 반응을 보이더라”고 말했다. 강의 끝에는 “기자가 된 뒤 본인이 어떤 취재를 하고 싶은지를 꼭 생각해보라”는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늦은 밤 진행한 ‘사귐의 시간’은 교수진∙재학생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푸는 자리였다. 저널리즘스쿨 첫 커플 부부인 YTN 최원석 기자와 김아연 서울시 뉴미디어주무관, <오마이스타> 김윤정 기자, <채널A> 홍우람 기자, KBS 이대용 기자 등 졸업생들도 참석해 예비언론인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주었다. 재학생들이 준비한 상식 스피드 퀴즈, 노래방 게임 등의 코너에서 참가자들은 웃고 즐기며 교수진들이 직접 쓴 책, DVD, 기자수첩 등 선물도 쏠쏠히 챙겼다.

▲ 한 참가자가 ‘사귐의 시간’ 노래경연에서 열창하고 있다. ⓒ 임국정

피디와 방송기자의 필요조건은?

둘째 날에는 과거 캠프생들의 피드백 결과를 반영해 상당수 강의가 기자반과 PD반으로 나눠 진행됐다. KBS PD 출신 장해랑 교수는 ‘PD는 기획으로 말한다’에서 1968년 멕시코올림픽 높이뛰기 종목에서 처음으로 ‘배면뛰기’(Fosbury flop)를 시도해 우승한 딕 포스버리를 예로 들며 “PD에게는 통념을 깨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내 프로그램이 다른 사람과 무엇이 다르고 새로운지를 끊임없이 자문하라”고 학생들에게 주문했다.

김문환 교수는 ‘레벨업, 방송리포팅’ 강의를 통해 SBS 등에서 20여 년간 보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참가자 개개인의 리포팅 억양과 발성 등을 일일이 지도했다. 그는 “아직 목으로만 소리를 내는 학생들이 많다”며 “직접 소리 내어 연습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개인 DB 만들기와 글쓰기’ 강의에서 이봉수 원장은 “좋은 글의 힘은 풍부한 데이터베이스에서 나온다”며 30여 년 간 축적해 온 DB를 공개했다. 이 원장은 역사적 사실을 인용해 현실을 비판하는 등 글 안에 ‘콘트라스트’(대비)가 있어야 독자에게 흥미와 정보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전날 밤 늦게까지 이어진 ‘사귐의 시간’으로 피곤한 기색을 보이자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밀턴(Milton) 등 지명의 어원을 설명하며 흥미를 끌기도 했다.

▲ 강의에 열중하고 있는 참가자들. ⓒ 구민수, 임국정

참가자들은 각각 논작∙칼럼∙기획안을 쓰며 그간 쌓아온 논리와 사고를 검증받는 시간을 가졌다. 논작에서 ‘브렉시트’, 칼럼에서 ‘나’라는 제시어가 주어지자 강의실에는 펜이 종이 위에서 사각거리는 소리와 컴퓨터 치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PD 지망생들은 장해랑 교수의 ‘내러티브’에 대한 짧은 강의를 듣고 기획안을 직접 작성했다.

KBS의 <차마고도> <인물현대사> 등 선 굵은 프로그램을 제작한 이상요 교수는 ‘히트 콘텐츠’를 강의 주제로 잡았다. 그는 2015년 킬러 콘텐츠로 ‘내 손 안의 남자친구(내손남)’을 꼽으며, <단비뉴스>가 제작한 ‘내손남’ 영상도 보여주었다. 이 교수는 “내손남의 성공은 달라진 영상 흐름을 보여준다”며 “짧고, 트렌디하고, 스마트폰 최적화의 삼박자를 갖춘 영상만이 주목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양문명과 미디어리터러시’ 강의에서 김문환 교수는 아테네에서 민주정치가 발달한 역사를 직접 찍은 사진과 자료를 곁들여 흥미롭게 설명했다. 김 교수는 국내 정치 상황에 빗대어 “분열된 국론을 어떻게 잘 해결해 나가느냐가 민주주의”라고 힘주어 말했다. 강의실을 꽉 채운 학생들은 한 글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강의 내용을 꼼꼼히 받아 적었다.

첨삭지도는 캠프 뒤에도 이어진다

‘자기소개서 클리닉’ 강의에서 이봉수 원장은 “자기소개서는 나를 위한 프리젠테이션, 면접을 주도하기 위한 수단, 입사 뒤까지 남는 것”이라며 “내공∙장기∙신뢰∙열망을 강조하라”고 말했다. 그는 또 ‘누구의 인생도 대부분 생략하고 일부만 부각시키면 드라마가 된다’는 소설가 앤 비티의 글을 인용하며 “글자수를 채우는 데 연연하지 말고 버리고 또 버리라”고 강조했다.

제정임 교수는 ‘설득하는 글쓰기’ 강의에서 “자신의 논술에 논점과 논리적 근거, 쉽고 정확한 설명이 되어 있는지 의심하고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며 “글쓰기 전에 이슈를 정확히 이해하고 사색과 토론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전에 진행한 ‘PD는 기획으로 말한다’의 심화버전인 ‘PD반 기획안 피드백’에서 장해랑 교수는 실제 기획안 샘플을 보여주며 학생들에게 기획안의 구성요소를 심도 있게 강의했다. 장 교수는 “<삼시세끼> 등 인기 프로그램을 모방해 기획안을 작성해보라”며 추후에 첨삭지도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1박2일의 쉼 없는 일정은 ‘튜토리얼’ 시간을 마지막으로 끝났지만, 참가자들이 쓴 글에 대한 첨삭지도는 교수들의 메일과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 등으로 이어진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옥스퍼드∙케임브리지 대학의 튜터제도를 본떠 만든 튜토리얼(Tutorial)은 기자 1~3반, PD반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 구민수, 임국정

“공부할 방향 잡았다”

빠듯한 일정이 피곤했을 법도 한데 수료식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았다. 조재원(25∙숙명여대 독일언어문화)씨는 “제정임 교수님의 ‘시사현안 백분토론’이 아주 유익했다”며 “하나의 시사이슈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기자직 준비단계에 있다는 최치명(29∙경북대대학원 건설환경에너지공학)씨는 “캠프 강의로 공부의 방향을 잡은 것 같아서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김문환 교수의 ‘서양문명과 미디어리터러시’가 인상 깊었다”며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역사적 사건을 시사현안과 결부시킨 점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 수료식을 마치고 나오며 교수진과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참가자들. ⓒ 황두현
▲ 캠프 참가자들이 교수진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 황두현

편집 : 박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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