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협치

▲ 기민도 기자

“프랑스 공산당은 계급투쟁과 적대, 혁명 같은 분열의 수사법을 내세우지만, 그것이 실제로 목표로 삼는 것은 혁명이 아니라 공산당 및 그것과 연루된 사람들의 현실적인 이익이었다.” 조르주 라보가 1981년 <공산당은 무엇에 봉사하는가?>는 책에서 발표한 논란의 테제다. 공산당에 소속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반발과 달리 발리바르는 이를 긍정적으로 봤다. 공산당이 현실적인 이익으로 타협해왔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서유럽 복지국가가 건설될 수 있었다는 것을 그 이유로 꼽았다. 조르주 라보는 혁명을 외치는 공산당마저도 제도 정치 안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밝혀냈고, 발리바르는 현실적 이익을 위한 타협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줬다.

협치는 타협을 강제하는 정치다. 이는 권력분점을 전제로 한 개념이다. 상대의 동의 없이도 국정운영을 할 수 있으면 양보와 타협은 필요 없다. 지난총선에서 새누리당이 150석 이상 얻었다면 협치정국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2가지 조건이 권력분점을 만들었다. 하나는 ‘여소야대’다. 정부는 야당동의 없이 법률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 국회의장도 야당이 가져갈 것으로 예상돼, 직권상정을 통한 국정운영도 힘들어졌다. 정부는 청문회를 통해 야당의 상시견제를 받는다. 다른 하나는 ‘제3당의 출현’이다. 이는 의회 내의 권력구조를 바꿨다. 여당과 제1야당은 제3당인 국민의 당 협력 없이는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 여야가 갈등하는 모습만 보인다면 제3당의 지지만 올라가게 될 게 자명하다. 협치가 정부·여당의 선택이 아니라 민심이 강제한 의무인 근거다.

협치 정국에서는 정부·여당의 일방적인 목소리에 가렸던 주장이 무대 위로 올라온다. 야당이 준비 중인 세월호, 어버이연합, 가습기 청문회가 첫 등장순서다. 투표결과는 정부의 일방적 국정운영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야당의 주장을 ‘협치’정신을 져버리는 사안이라고 비판하지만 방법이 없다. 협치는 여·야가 똑같이 양보하라는 의미보다는 정부·여당이 국정운영에 야당주장과 민심을 더 반영하라는 의미다. 서울대정치연구소는 지난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이탈자와 잔류자를 가른 이슈가 교과서 국정화와 국가주의적 문제라고 밝혔다. 민생을 외면하고 이념 문제에 집착한 패착이란 분석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야당이 구조조정, 경제를 회복시킬 민생사안에 정부 여당과 협치하라는 압박으로도 다가온다.

▲ 일자리와 임금이라는 민생 문제에서 협치를 이룬다면 국민의 반향이 더 크게 울려퍼질 것이다. Ⓒ flickr

정부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청요구를 거부하고, 상시청문회 거부권 카드를 빼들었다. 협치가 아닌 마이웨이를 가겠다는 의도로 비친다. 여당은 친박·비박 권력 싸움이 끝나지 않은 채 혼전이다. 이런 상황에서 협치 성공여부는 야당의 능력에 달렸다. 야3당은 공동으로 법안을 내놓으며 청와대와 여당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을까. 최근 야3당이 세월호, 법조비리, 백남기 농민 진상조사 등 5가지 사안에 합의한 것은 긍정적인 신호탄이다. 다만, 민생 문제부터 합의했다면 국민의 반향이 더 크게 울려 퍼졌을 게 틀림없다. 구조조정, 청년 일자리, 가계부채, 주택문제 등에 야당의 요구를 정교화해서 협치 정국을 이용한다면 정부·여당의 변화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더 커진다. 이런 기초위에 야3당이 5가지 합의를 이끌어 갈 여론을 형성한다면 합리적 민심과의 교집합은 더 넓어진다.

야당은 조광조가 아닌 김육의 길을 거울삼을 때다. 조광조는 백성의 민생문제보다 이념문제에 가까운 소격소 혁파를 밀어붙이다가 무너졌다. 지조 있게 죽은 조광조가 멋있을 순 있지만, 조광조 개혁 때문에 사림은 피바람에 휩싸였다. 김육의 대동법은 백성들에게 직접 연관된 삶의 문제였다. 왕과 반대파들을 시간을 두고 단계별로 설득하며 제도로 안착시켰다. 누구든 민생문제를 거부할 명분을 찾기는 어렵다. 야당이 김육의 길을 걸을 때, 민생협치는 물론 야당발 개혁정치도 성공의 길로 한발 더 다가선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1학기에 개설되는 인문교양수업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담당교수 김문환)].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한 서양 문명사 강의가 펼쳐집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 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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