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지중해 모자이크 문명기행] ⑤ 아킬레스

로마요새가 한가운데 솟아 위용을 한껏 살려 주는 고풍스런 도시 가지안테프(Gaziantep). 가지안테프 박물관에는 빼어나게 아름다운 모자이크들이 탐방객을 기다려요. 작품성은 물론 다양한 소재 측면에서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을 만큼 흥미만점이에요. 유적지 제우그마(Zeugma)에서 발굴해온 작품들인데요. 제우그마는 B.C 300년 알렉산더의 휘하 셀레우코스 장군(셀레우코스 1세)이 유프라테스 강가에 세운 도시죠. 처음에 '셀레우코스-유프라테스'라고 이름 붙였어요. 강 건너편에는 자매도시를 짓고 이름을 '아파미아'라고 불렀고요. 셀레우코스의 아내 이름이죠. 셀레우코스가 알렉산더의 동서 결혼 정책에 따라 짝으로 맞은 페르시아 박트리아 출신 공주랍니다. 알렉산더가 죽고 나서 많은 장군들이 페르시아 여성과 이혼하는데요. 셀레우코스는 끝까지 해로할 만큼 금슬이 좋았어요. 애정이 도탑던 부부만큼이나 두 도시도 다리로 연결돼 하나처럼 발전하죠. B.C 64년 로마가 접수한 뒤 이름을 제우그마로 고쳐 중국과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하면서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립니다. 부유층은 유프라테스 강이 내려다보이는 터에 호화 빌라를 지었어요. 바닥은 화려한 모자이크, 벽은 프레스코로 장식했고요. 그때 바닥을 장식하던 모자이크들이 지금 가지안테프 박물관을 모자이크의 보고로 자리매김하는 거예요. 

▲ 셀레우코스 1세. 루브르 박물관. ⓒ 김문환

박물관을 수놓는 인상적인 작품들 가운데 먼저 '포세이돈의 집' 임플루비움(빗물 저수조) 바닥을 장식하던 흥미로운 작품 <발각되는 아킬레스>를 보죠. 무슨 발각일까요. 트로이 전쟁.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 왕비 헬레네를 유혹해 데려가자, 왕비를 잃은 메넬라오스 왕이 형 미케네왕 아가멤논과 그리스 연합군을 조직해 일으킨 전쟁이요. 예언자 칼카스는 승리하려면 아킬레스가 반드시 참전해야 한다는 점괘를 내놓습니다. 아킬레스의 아버지 펠레우스는 아들이 트로이전에 참가해 공을 세우고 돌아오면 아들의 머리털을 자기 왕국에 흐르는 스페르케이오스 강에 뿌리겠다고 맹세해요. 트로이 전쟁에서 아들이 죽을 것이란 운명에 대해 모르고요. 하지만 아킬레스의 어머니 요정 테티스는 아들의 운명을 알고 있었어요. 남편 펠레우스와는 성격 차로 별거하지만, 아들을 끔찍이 아끼던 테티스의 모정이 묘책을 내놓습니다.

▲ 발각되는 아킬레스 전경. 가운데 창을 든 아킬레스, 2-3c. 가지안테프 박물관. ⓒ 김문환

아킬레스를 스키로스의 리코메데스왕에게 보낸 거예요. 리코메데스 궁정에서 아킬레스를 여자로 변장시키죠. 리코메데스의 딸들과 함께 살도록 해요.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에서 공주들과 뒤섞여 지내면 그리스 연합군이 아킬레스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고, 결국 아킬레스가 트로이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돼 목숨을 보전할 것이라는 계책이에요. 병역을 피하며 스키로스 궁정에서 리코메데스의 딸들과 보낸 기간은 무려 9년. 아킬레스가 청년 시절을 전쟁 연습이 아닌 여자들과 소꿉장난하면서 보낸 내용. 뜻밖이죠. 어머니의 의지로 병역을 기피한 아킬레스는 현대판 한국의 병역 기피와 닮은꼴이에요. 사랑스러운 자식의 운명을 걱정해 소변에 알부민 넣고, 간장 마시게 하고... 무엇보다 미국 가서 출산해 미국 시민권 얻고. 미국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미국으로 가 청년 시절 빈둥대다 나이 차 들어오고...

▲ 아킬레스. 2-3c. 가지안테프 박물관. ⓒ 김문환

아킬레스의 병역기피 사실이 들통 난 사연은 무엇일까요. 아킬레스를 찾기 위해 혈안이 돼 있던 그리스 연합군의 오디세우스 일행은 테티스가 스키로스 왕국에 다녀왔다는 소문을 확인하고, 한걸음에 스키로스로 내달립니다. 신의 아들이니 저잣거리에 있을리 만무하고, 왕궁에 숨어 있을 게 분명했죠. 일행은 리코메데스 왕을 다그치며 아킬레스의 행방을 대라고 다그칩니다. 리코메데스가 뚝 잡아떼는 바람에 난감해져요. 명탐정의 자질이 흘러넘쳤던 꾀 많은 오디세우스의 머리에 뭔가 스치네요. 오디세우스는 후궁으로 달려가요. 범죄수사는 변장이 필수, 방물장수로 둔갑합니다.


편집 : 박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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