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서열화와 입시에 매몰된 교육

▲ 민수아 기자

2009년 2월 부산국제고 졸업. 입사지원서를 쓸 때마다 이 대목에서 멈칫한다. 나는 특목고를 나왔다. 부끄럽지만 국제고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우월감에 빠졌다. 물론 이 우월감은 학교에 다니면서 우수한 친구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는 과정을 거치며 산산조각 났다. 오히려 스스로 부족하다는 콤플렉스 때문에 학교생활이 힘들어졌다.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고등학교를 조금 특이한 곳을 다닌 것뿐인데도 학교가 단순히 배움을 얻는 장소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감수성이 예민할 시기에 서열 따지기의 구렁텅이에 내던져져 고등학교 진학에 의미부여를 하고 있을 내 모습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 학교는 ‘교육의 현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학교 자체가 한 무리가 되기도 하고 학생들을 성적에 따라 순번을 매긴다. 세속적 경제의 가치가 ‘교육의 현장’에 뒤섞였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지식과 지혜를 주고받는 데 왜 순서가 필요할까? 교육이 세속적인 범주에 갇히면서 우리가 떠안게 되는 기회비용은 정확한 수치로 계산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 삶이 얼마나 큰 타격을 받을지는 굳이 상상하지 않더라도 쉽게 눈에 들어온다. 역사는 지혜를, 시작(詩作)은 감수성을, 수학은 섬세함을, 윤리학은 중후함을, 논리학과 수사학은 담론 능력을 준다. 세속적인 울타리 안에 있는 교육은 이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 일부에서는 소위 명문대라고 불리는 대학에 입학한 학생수로 매년 고등학교 서열을 매기기도 한다. ⓒ 구글 이미지

지난 2010년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학습부진 학생에 대한 수준별 하반 편성 및 특별보충수업의 교육적 효과>라는 제목의 논문이 나왔다. 백병부 당시 경희중학교 교사가 제출한 이 논문은 수준별 상하 분반 수업의 역효과를 보여준다. 교사가 학생의 학력 수준에 맞춰 수업을 하자 성적이 더 낮아지는 현상을 밝혀냈다. 백 선생은 이를 실증하기 위해 중2 때 학업 성취도가 하위 20%에 속한 학생들(표본 수 6,172명)의 1년 뒤 성적 향상도를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하반’에 속해 수준별 이동 수업을 받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영어는 4점, 수학은 7점이나 낮게 나왔다. 수준별 분반 수업은 한 학교 안에서 이루어진 서열화 교육의 방법이다. 분반 수업의 확대판인 고등교육의 서열화 환경에서 교육의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자못 우려스럽다.

▲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는 사회학습이론에서 자기효능의 역할을 강조해왔다. ⓒ 구글 이미지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는 사회학습이론에서 자기효능의 역할을 강조해왔다. 반두라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자기조절 과정의 하나로 자기효능감을 들었다. 자기효능감이란 자신이 어떤 일을 잘해낼 수 있다는 개인적 신념이다. 이는 사고 양식과 정서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결점들을 곰곰이 생각하고 과제가 실제보다 어렵다고 여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결점들에 주의를 집중하며, 정작 눈앞의 과제에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된다. 이런 경우 실패의 가능성이 커진다.

자기효능감을 키워주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교육 서열화는 입시에 매몰된 교육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구조가 왜곡되어 자기효능감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학생에게 ‘네가 자신감이 없어서 그래’라고 말할 수 없다. 대신에 교육에 대한 철학 자체를 재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교육에 대한 개혁을 시도하려면 직업에 대한 인식, 복지 정책 변화 등 여러 분야의 논의가 뒤따라온다. 하지만 ‘19살에 인생이 결정되는 나라’, ‘전 국민이 콤플렉스를 가지게 만드는 나라’가 지니는 잠재적인 문제의 해결비용이 교육 개혁에 필요한 노력보다 훨씬 커 보인다. 실패에서 인생의 교훈을 얻기도 하지만 성취의 경험에서 삶의 동기를 찾을 수도 있다. 일렬종대로 선 대한민국의 학생들에게는 성취를 통한 삶의 동기가 필요한 게 아닐까?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1학기에 개설되는 인문교양수업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담당교수 김문환)].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한 서양 문명사 강의가 펼쳐집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 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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