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의 유혹하는 에디터2] ⑥ 토요판 1면의 틀을 찾아

▲ 고경태

사람이 뉴스다. 

아무 종이신문이나 펼쳐놓고 1면을 본다. 그곳엔 늘 사람이 있다. 기사엔 누군가의 이름이 등장하고, 사진에선 누군가의 얼굴이 드러난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에 관해서만 말한다면 자초지종은 안개에 덮여 몽롱할 뿐이다. '누구인가, 누가 얽혀있는가?' 그것이 밝혀져야 시간과 장소와 이유와 방법의 맥락이 명쾌해진다. 사람이 뉴스다. 뉴스가 사람이다.

한때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으로 통했던 박노해가 1997년 구속 중에 펴낸 에세이집 제목은 ‘사람만이 희망이다’였다. 2012년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캐치프레이즈는 ‘사람이 먼저다’였다. 정말 사람만이 희망인가. 사람이 절망일 때는 없는가. 진짜 사람이 먼저인가. 먼저인 사람만 늘 먼저인 세상은 아닌가. 사람은 사람에 살고, 사람에 죽는다. 사람에 환호하고, 사람에 위로받고, 사람에 슬퍼하고, 사람에 분노한다. 그리하여 사랑하거나 저주하거나.

- 윤이상. 최근 '통영의 딸' 건으로 재조명. 1995년 사망. 2006년 과거사위 동백림사건 재심.
- 김현종/김종훈. 그놈의 FTA가 뭔지. 김현종은 최근 삼성에서 잘림. 김종훈은 <한겨레>와 송사 중.
- 남기춘 검사. 2010.1.29. 한화 수사 도중 사퇴. ‘재벌 잡는 검객’. 4월에 학동사거리에 변호사 개업. 5월 오리온 비자금 사건(홍송원) 수임으로 화제.
-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 MB, 한상률, 홍라희, 담철곤 등 두루 안 엮이는 데 없음. 10월엔 홍라희 고소 전격 취하. 배경?
- 박연차. 10.13. 대법원 선고공판 파기환송. 변호인 접촉 중.
- 선박왕 권혁. 안강민, 천성관 등 호화 변호인단.
- 푸틴. 내년 3월 치러지는 대선에서 3선에 도전. 최근 그의 대선 행보와 관련해 러시아 내 민주화운동이 격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박정희를 연상케 함.
- ‘종편 도우미’ 최시중. 종편 개국과 함께 역할 잃었다는 분석. 언론단체 등에선 종편 특혜와 방송 공공성 후퇴 등 책임 물어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
- 최고은. 내년 1월 29일이면 생활고 끝에 숨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의 사망 1주기가 됨.

뭔가 한가지로 가야 한다

위 메모가 담긴 내 컴퓨터 속 파일의 제목은 ‘1면 아이디어’로 돼 있다. 토요판 발행을 앞두고 기획회의를 하며 여러 팀원이 낸 발제문을 취합한 것 중 일부다. 1면뿐 아니라 두 개면 정도 안으로 이어져야 할 커버스토리(커버) 아이템 후보로 회의 석상에 올랐다. 찬찬히 읽어보면 아이템의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바로 사람이다.

2011년 12월이었다. 토요판 첫 호가 나오기로 한 날은 2012년 1월 28일. 한 달여쯤 남아있었다. 지난번 글에서 밝혔지만, 가장 큰 고민은 신문의 얼굴인 1면이었다. 토요판 전체에서 얼굴의 질과 품격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90%를 넘는다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한데 백지상태였고, 그 백지에서 괴물이 출현할까 잠 못 이루던 나날이 꽤 흘렀다. 1면 머리를 평일치처럼 건조한 팩트 기사로만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사실을 넘어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한겨레21> 같은 시사주간지처럼 표지를 다양하게 변주할 필요도 없었다. 토요판이 잡지의 느낌을 차용한다 해도 기존 시사주간지와는 차별점이 분명해야 했다. 타블로이드 주간신문처럼 정치인물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되었다.

▲ 미국의 타블로이드 신문은 정치인물을 그래픽으로 합성하기도 한다. ⓒ flickr

일단 머릿속에 떠오른 1면 커버의 몇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뭔가 한 가지로 가야 한다. 고집스레 일관된 포맷이 필요하다. 둘째, 신문과도, 잡지와도 달라야 한다. 어쩌면 그 경계에 있어야 한다. 셋째, 선이 굵어야 한다. 편집과 기사작성은 대담하게 가야 한다. 그러려면 가급적 여러 꼭지가 아닌 단일 꼭지의 커버로 가야 한다. 넷째, 이야기 기사로 흥미를 끌어야 한다. 네 가지 원칙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고민과 팀 내 논의를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은 사람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물 커버'였다.

다시 컴퓨터 속의 옛 자료를 뒤적여 본다. 회사 안에서 설명회를 하기 위해 작성한 피피티(PPT) 파일이다. 1면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예시가 적혀 있다.

1. 핫이슈형 : 커렌트 이슈 속 인물
(ex 조광래, 김인주, 박태준, 황운하, 조현오, 박지원, 정명훈)
2. 기획형 : 중장기 기획 피플스토리
(ex 최시중, 김종필, 윤이상, 김현종/김종훈, 이헌재, 김근태, 에릭 홉스봄, 이수만, 서태지, 안철수, 이재용, 김어준, 미 공화당 대선후보, 제2 최고은 ##총선, 대선용 아이템 포괄)
3. 발굴형 :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무명 인물 소개, 또는 지나간 인물 중 뉴스거리 찾기
(ex 박연차, 대학 청소노동자(3월), FTA 농민, 한상률, 홍송원, 장영자)
4. 틈새형 : 이면 스토리에서 새롭게 떠오른 인물 정도
(ex 뿌리 깊은 나무 장태유 피디, 김진숙 크레인에 밥 올려주던 여성활동가)

2011년 대한축구협회와 갈등을 빚은 전 국가대표축구팀 감독 조광래든, 한진중공업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는 김진숙에게 밥을 올려준 활동가든 '주인공이 확실한 1면'이 목표였다. 대중들로부터 폭발적 관심을 끌고 있거나, 하나의 이슈를 대표하고 상징할 만하거나, 전혀 다른 측면에서 사안을 보게 해주거나 하는 한 명을 확실하게 밀어주기로 했다. 그가 이 시점에서 무어라 말할지 궁금한 사람, 제목에 박히는 이름 석자 만으로도 지면을 강렬하게 빛내줄 인물이면 더할 나위 없다고 보았다. 시각물도 인물사진을 기본으로 잡았다.

히스테리 또는 판타스틱

왜 사람인가. 맨 앞에서 썼듯이, 사람이야말로 뉴스이기 때문이다. 그냥 뉴스가 아니라 가장 생동감 있는 뉴스이기 때문이다. 뉴스인물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그를 둘러싼 사건을 ‘보고서’가 아닌 ‘이야기’의 틀로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서사다. 영어로는 ‘내러티브’(narrative)라고 한다. 나는 ‘서사’라는 말의 감촉을 더 좋아한다. 서사는 1면을 넘어 토요판 전체 지면을 꿰뚫는 핵심 단어였다. 물론 사람은 불완전하다. 기억력도 엉성하다. 거짓말도 한다. 인터뷰 땐 맹신을 경계하며 인터뷰이와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 사람을 취재하되, 사람만 취재하면 안 되는 이유다.

나는 2005~2006년 <한겨레21> 편집장으로 일할 때도 ‘인물 표지’를 선호했다. 일종의 ‘기획 취향’이라고나 할까. 2005년 가을 파리에서 이민자들의 데모가 터졌을 때 현지로 출장 가는 후배에게 이민자 중 전형적인 주인공을 찾아보라고 주문했다. 결국 알제리계 이민 2세대 청년을 인터뷰해 표지에 올렸다. 광복 60주년이던 2005년 8월에는 일본의 평범한 가족을 찾아 취재를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일본 출장을 간 후배는 1940년대 태평양전쟁에 병사로 참전한 70대 할아버지, 1960년대에 대학생으로서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 데모를 목도하고 경험한 50대 아들, 전쟁을 전혀 모르는 20대 손자로 구성된 가족을 섭외했다. 표지는 3대가 함께 한 사진으로 장식했고 제목은 그들의 성을 따 ‘시노하라의 8·15’로 뽑았다. 이들의 가족사는 일본 현대사를 압축한 재미있는 텍스트로 읽혔다. 이런 경험은 수년 뒤 토요판에서 1면을 비롯해 여러 연재를 현대사물로 꾸미는 단초가 됐다. 역사물이 과잉이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한 일본 학자는 “역사가 히스토리(history)라면 미래는 미스터리(mystery)”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미래는 모른다. 비밀을 품은 내일이다. 그래서 ‘과거’라는 거울을 본다.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가 히스토리라는 얘기다. 그 히스토리의 심장부에서 불꽃을 일으키는 존재는 당연히 사람이다.

인터뷰 추진이 암초에 부딪치면 ‘히스테리’에 걸리지만, 끝내 성사되면 판타스틱하다. 사건이나 갈등의 한복판에 선 당사자의 내밀한 이야기는 ‘단독’이라는 수식어를 단 탐사보도의 싱싱한 재료가 된다. 설사 인터뷰가 안 돼도 방법은 있다. 가령 러시아 대통령 푸틴을 인터뷰하기는 어렵다. 가수 서태지를 인터뷰하기도 만만치 않다. 역사 속 셀러브리티(명사)를 만나려면 타임머신을 타야 한다. 핸드폰을 끄고 ‘잠수를 타는’ 이도 있다. 그들이 품은 뉴스의 위력이 충분하다면 주변취재와 자료조사를 통해 인터뷰 없이도 인물기사를 구성할 수 있다.

▲ <한겨레> 토요판 2012년 12월29일치 송년호. 1년간 보도했던 커버스토리 인물 중 10명을 골라 특집으로 꾸몄다. ⓒ 한겨레

한국 종이매체의 역사에서 인물 커버스토리의 전통은 연예인이나 정치인에 한정된 편이었다. 1991년까지 대중잡지로 사랑받았던 <선데이서울> 같은 매체는 유명 연예인의 얼굴을 표지에 담아 팔았고, 1980년대 <주간한국> <주간조선> 등의 시사주간지들은 정치인의 얼굴 사진을 내보냈다. 그 얼굴값을 뒷받침하는 심층기사는 없었다. 본문에 고작 1~2쪽의 관련기사가 실렸을 뿐이다. 표지인물은 가판을 위한 마케팅용이었다. 1990년대 초반 <시사저널>과 <한겨레21>이 창간하며 시사주간지 저널리즘의 시대가 오자 정치인물 표지는 구시대의 관성으로 밀려났다. 미국 타임워너사가 1974년 창간한 주간지 <피플>(People)을 벤치마킹한 듯한 시사주간지 <뉴스피플>이 1992년 서울신문사에서 창간되기도 했다. 사람 중심의 보도를 하려는 의욕이 높아 보였지만 콘텐츠의 긴장감은 눈에 띄지 않았다. 몇 년 뒤 폐간됐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 토요판의 인물 커버스토리는 충분히 뜻깊은 시도가 될 것 같았다. 단, 어떤 주인공을 찾아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였다.

지속가능성이 걱정되기는 했다. 사내 설명회 자리에서도 그런 지적이 나왔다. 일간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한 사람을 등장시켜 스포트라이트를 줄 정도면 그만한 명망이나 그가 처한 사건의 무게감이 받쳐줘야 한다고 말이다. 인터뷰 섭외란 얼마나 피 말리는 일인가. 그걸 매주 할 수 있을까. 섭외 없이 쓴다 해도 누구든 고개를 끄덕거릴 인물을 발굴해 이야기 기사로 풀어낼 수 있을까. 출입처의 끈 없이 취재하는 토요판 팀원들이 계속해낼 수 있겠냐고 걱정하는 이도 있었다. 2011년 12월 31일 자정이 다 되도록, 토요판 첫 회 커버 인물 섭외는 성공하지 못한 상태였다. 첫 회는 무조건 단독 인터뷰여야 했다. 속이 타들어 갔다.

<디 짜이트>식 모델

그 와중에 1면 디자인 컨셉이 결정되었다. 신문을 반으로 접을 경우 잡지가 되는 거였다. 요약하면 이렇다. 맨 위엔 ‘한겨레’라는 제호와 함께 ‘토요판’이라는 빨간 글씨가 작게 들어간다. 바로 밑엔 전체를 꽉 채운 사진(또는 그림)과 큰 제목이 조합된 커버 시각물이 잡지 형식으로 디자인된다. 신문을 펴면 숨어있던 하단이 드러난다. 이곳엔 200자 원고지 기준 6매가량의 커버 본문기사가 전문으로 들어가고, 밑엔 당일 스트레이트 기사가 실린다. 평일치 신문이라면 1면 톱으로 걸릴 사건발생 기사가 토요판에 한해서만 커버 사진과 기사 아래 자리 잡는다.

▲ 2015년 6월 11일자 디 짜이트(Die Zeit). ⓒ 디 짜이트

이 디자인 설계는 당시 디자인부문장이던 김경래 부장이 했다. 그는 독일의 전통 있는 고급 주간신문 <디 짜이트>(Die Zeit)의 1면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디자인 포맷은 커버 기획기사와 스트레이트 기사를 절묘하게 양분해주었다. 신문의 절반을 커버 시각물이 잡아먹는 파격이었다. 비효율적 구도라는 비판이 쏟아질지도 몰랐다. 의외로 편집국장단에서는 반대가 별로 없었다. 다만 이런 전제를 깔았다. “전날 발생한 스트레이트 뉴스가 대형 사안이거나 파급력이 큰 단독취재일 경우 그 경중에 따라 융통성 있게 지면을 안배한다.” 예를 들어 수천 명이 희생된 2011년 3월의 일본 후쿠시마 지진이나 5백여 명이 죽은 1995년 6월의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같은 것이 금요일에 터진다면 토요판에서 준비한 커버는 밑으로 내리거나 철수한다는 거다. 후쿠시마나 삼풍백화점은 논쟁의 여지 없이 명백한 대형재난이다. 한데 때로는 ‘초특급 뉴스’인지 아닌지의 평가 기준이 모호할 수 있었다. 뉴스가치의 잣대란 대단히 주관적이니까.

2012년 1월 1일 새해가 밝고 일주일쯤 지나 첫 호의 커버스토리 주인공 섭외에 성공했다. 당시 보수신문의 지면을 도배하던 ‘통영의 딸’ 논란으로 불쾌한 조명을 받던 고 윤이상 선생의 유족이었다. 부인 이수자 씨는 “자신의 3모녀를 고 윤이상 선생이 북한에 보내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하는 독일 유학생 출신 오길남 씨를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형사고발했다. 마침 2011년 12월 17일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조문을 위해 평양을 방문하고 통영 집으로 돌아온 직후였다. 수소문을 거듭한 끝에 윤이상 선생의 딸 윤정 씨와 연락이 닿았고, 이메일로 어머니 이수자 씨와 함께 인터뷰에 응해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승낙한다는 답신을 받던 날, 식도를 막고 있던 큰 돌멩이 하나가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꼬여있던 실마리가 드디어 풀린다는 감이 왔다. 자, 정말 사람만이 희망일까. 인물 커버는 토요판의 희망이 될까. 아직은 모르는 일이었다. 


고경태. 한겨레 편집국 신문부문장. <유혹하는 에디터>에서 <1968년 2월 12일>까지 4권의 책을 썼다. 2009년에 낸 <유혹하는 에디터>가 편집자를 다뤘다면, 2016년의 이 연재물은 편집장 이야기다. <한겨레21> 편집장, <씨네21> 편집장, esc 팀장,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문화스포츠 에디터, 토요판 에디터 시절의 에피소드로 버무릴 예정이다. 격주 연재.  

편집 :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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