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진정한 행복이란

▲ 강민혜 기자

“내가 쓸데없이 신의 뜻을 거슬렀네. 죽어가던 놈은 죽어가던 이유가 있었을 텐데.”

최근 화제의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나오는 대사다. 특전사인 주인공은 갱단두목이 된 옛 동료를 위기에서 구한 바 있다. 그의 독백에 따르면 인간의 생사는 신의 영역이다. 죽음을 앞둔 동료를 살린 것은 신에 대한 도전으로 비쳐진다.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국가 우룩을 다스린 왕 길가메시도 신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길가메시는 영생을 꿈꿨다. 친구 엔키두의 죽음을 겪은 이후부터다. 절망과 공포의 그림자가 그의 정신을 뒤덮었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날로 길가메시는 영생의 비밀을 찾아 떠난다. 신에게 영생을 허락받은 유일한 인간 우트나피쉬팀을 만나기 위해서다.

영생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다. 진시황은 평생 불로초를 찾아 헤맸고, 알렉산더 대왕은 젊음의 샘을 찾기 위해 원정대까지 파견하지 않았던가. 최근 등장한 인공지능 ‘알파고’는 인간이 원초적 욕망을 향해 던진 힘 있는 한 수다.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신의 영역을 넘보는 인간의 도전 역시 도를 더해간다. 최근 영국 BBC는 ‘디지털 영생’을 목표로 두뇌 복제 연구를 추진하는 러시아의 한 억만장자 소식을 다뤘다. 만약 그의 꿈이 이뤄진다면 몸을 바꾸면서 영원히 살 길이 열린다. 인간은 이제 신으로의 진화를 꿈꾸고 있다.

영생은 인간의 행복을 보장할까? 헬레니즘 시대 철학의 한 갈래이던 스토아학파는 삶의 목적을 행복에 뒀다. 욕망을 버리고 마음의 평정을 얻을 때 진정한 행복이 구현된다고 봤다. 이러한 상태를 ‘아파테이아(apatheia)’라고 부른다. 다시 메소포타미아로 가보자. 길가메시는 우트나피쉬팀에게 불로초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영생에 실패한다. 뱀에게 불로초를 도둑맞았기 때문이다. 미래를 고민하며 울부짖던 길가메시는 술의 여신 시두리를 떠올린다. 죽음을 이기는 것은 현재에 충실한 삶이라는 충고의 참 의미를 그제야 깨닫는다.

▲ 루브르 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길가메시 부조. ⓒ Urban

길가메시의 남은 인생은 불행하지 않았다. 영생 대신 인간의 삶과 행복을 선택한 덕분이다. 초야권을 행사하는 폭압적 왕이었던 그는 욕망을 버린 뒤,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이룩한다. 사람들은 길가메시를 ‘심연(가장 깊은 곳)을 본 자’라고 불렀다. 영생이라는 욕망의 늪을 경험하고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이는 ‘아파테이아(평정심)’에 이른 인간과 맥이 닿는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방황했지만 욕망을 버리고 인간을 선택한 길가메시. 끊임없는 과학발전을 통해 신으로의 진화를 꿈꾸는 현대인.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길가메시를 깨우쳤던 술의 여신 시두리의 말이 오래도록 귓전에 남는다.

“길가메시. 영생은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신이 사람을 만들 때 생명과 함께 필멸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돌아가 배를 채우고, 기쁘게 살고, 춤추고 즐기며, 아내와 아이들을 소중히 생각하세요. 그것이 인간이 해야 할 일입니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1학기에 개설되는 인문교양수업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담당교수 김문환)].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한 서양 문명사 강의가 펼쳐집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 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박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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