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의 유혹하는 에디터2] ④ 당사자도 알쏭달쏭한 개념에 관하여

▲ 고경태

<유혹하는 에디터>는 나의 첫 책이다. 2007년 봄에 쓰기로 결심해 2년 만인 2009년 9월에 출간했다. 책 집필을 추동한 힘은 2004년부터 시작한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의 편집 실무 강의였다. 그곳에서 수강생으로 만난 언론·출판 분야 현업 종사자들의 고충을 들으면서 사회 초년병 시절의 지독했던 외로움을 떠올렸다. 작은 신문사에서 ‘나 홀로 편집기자’로 첫발을 뗀 나에겐, 편집의 기본원리와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매뉴얼도 없었다. 그 어려움은 역설적으로 기회였다. 누구의 방식도 아닌 나만의 방식을 익혔기에 책까지 쓰게 되었던 것 같다.

책이 나오자 어머니도 당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셨다. 어머니는 아들의 책을 매일 밤 머리맡에 두고 주무셨다고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으려 노력했다는 말씀도 하셨다. 다만 머릿속에 쏙쏙 이해되지는 않으셨나 보다. 아들의 얼굴을 마주하고선 이렇게 일갈하셨기 때문이다. “얘, 네가 준 책을 읽는데 내용이 좀 어렵더라. 어려운 단어들이 많아.” 나는 무슨 단어가 이해되지 않느냐고 여쭈었다. 어머니는 이렇게 답하셨다. “그 말야. 에디터가 뭐냐?”

헉. 표지 제목이 외계어 같았다면, 본문은 더했을지 모른다. 어머니의 표정으로 볼 땐 ‘에디터, 그게 먹는 거니?’라고 묻는 듯했다. 책을 내기 전 담당 편집자와 함께 표지제목과 디자인을 상의할 때 ‘에디터’가 난해한 단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물론 어머니야 언론·출판 분야와는 거리가 먼 분이고 70대 중반의 고령이니 예외라고 볼 수도 있다. 당시엔 “에디터는 편집자라는 뜻이에요”라고 넘겼지만, 다시 곱씹어보면 그렇게 단순하게 풀이될 단어가 아니다. 나는 2011년 3월부터 2016년 3월까지 5년간 에디터로 일했다. 그 에디터는 2009년 책의 제목으로 써먹은 에디터와 같은 뜻인가? 아니다.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걸 설명하려니 머리가 아파온다. 간단하게 잘라 규정할 수 없다. 한국 신문의 역사와 복잡한 내부 사정을 배경으로 깔아야 한다. 내가 겪은 에피소드까지 함께.

외국계 라이센스 잡지의 경우

어머니에게 말했듯이, 에디터(editor)란 본래 책이나 신문·잡지 분야의 편집자를 일컫는 영어단어다. 뜻은 그렇지만 편집자들이 업무 현장에서 쓰지는 않는다. 일간신문 편집부에서 편집기자를 에디터라고 부를까? 전혀 아니다. 기자, 또는 편집기자다. 출판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출판사 편집자는 그냥 편집자다. 나는 편집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책 이름으로 굳이 ‘에디터’라는 용어를 선택했는데, 적절한 용어였는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

한국에서 에디터라는 호칭을 쓰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첫째는 <GQ> <맥심> 등의 외국계 라이센스 잡지 또는 패션 잡지의 일선 기자들이다. 둘째는 일간신문사의 어떤 직책에 있는 이들이다.

라이센스·패션 잡지에선 취재와 기사작성 업무를 하는 이들을 기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에디터라고 한다. 기사에 글쓴이를 표기할 때도 그렇게 쓴다. 왜 에디터인가. 취재와 편집은 물론 촬영 섭외까지 담당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외국 본사의 관습을 따라 하는 것일까. 정확히 알 길이 없어 라이센스 잡지에서 10여 년간 편집장을 했던 이에게 문의를 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저도 자세히 모릅니다. 알아보겠습니다.”

▲ 에디터의 기본 뜻은 ‘편집자’이지만 한가지로만 쓰여지지 않는다. 한겨레 편집국 7층에 있는 한 에디터석 표찰. ⓒ 고경태

아니 그것도 모릅니까, 라고 남을 타박할 처지가 아니다. 나도 그렇다. 오랫동안 에디터라는 명칭을 명함에 박아 왔으면서도, 에디터가 지면을 책임지는 역할이라고만 생각해왔지 자세한 기원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도대체 에디터란 무엇인가, 일간신문에서 에디터를 왜 에디터라 부르는가, 역할과 권한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이 글을 쓰며 비로소 에디터에 관해 본격 탐구해보았음을 고백한다.

일간신문 조직에서 에디터는 제도(editor system)의 문제다. 에디터 제도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대한민국 중앙일간지들의 화두였다. 여기서 에디터의 영어 뜻은 ‘편집자’가 아닌 ‘편집장’에 가깝다. <한겨레>의 경우 2006년 에디터제의 일종인 편집장제를 시행했고 조금씩 형태를 바꿔가면서 에디터제를 유지해오고 있다. 일도양단식 규정이 될 수도 있지만 <한겨레>의 경우 2006년부터는 부장이, 2011년부터는 부국장이, 2015년 10월부터는 다시 부장이 에디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각 언론사들은 2005~2006년부터 앞다퉈 에디터제를 시행했다. 종이신문이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 맞춰 조직변화를 최고의 혁신과제로 내세우던 시점이다. 독자들이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종이신문의 열독률이 떨어지던 와중이었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뉴스의 질을 높이려면 뉴스생산 공급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명의 편집국장을 중심으로 중앙집권적 수직 위계서열 구조를 갖춘 일본식 편집국 운영시스템은 청산해야 할 옛 모델로 지목됐다. 대신 서구식 에디터제도가 글로벌 스탠다드이자 새 모델로 떠올랐다. 서구의 에디터제도란 편집국장이 각 분야를 책임지는 여러 명의 에디터를 두고 이들을 일정한 권한을 지닌 소편집국장(편집장)으로 분권화해 전문성과 자율성을 높이는 구조다. 예전의 부장이 기사만 출고하면 됐다면, 새로운 제도 아래서 에디터는 사진과 그래픽 등의 지면 요소는 물론 디지털 기사 출고까지 책임지는 식이다. 더불어 편집기자까지 관할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부서 간 장벽을 깨고 취재·편집의 분절적 구조를 넘겠다는 취지다. 여기서 핵심은 조직의 유연성과 뉴스의 고급화다.

그러나!
한국언론의 에디터제는 초기 시행착오의 지난한 과정을 통과했다. 이에 관해서는 2006년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남재일 박사(현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연구 ‘신문뉴스 생산조직 합리화 방안 : 한국 신문의 에디터제 현황과 과제’가 있다. 남재일 박사는 <한겨레>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에디터제와 조직개편 사례연구 과정에서 각 언론사 기자들을 인터뷰해 에디터제 평가를 시도했다. 그 결과는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솔직히 뭔가 크게 달라졌는지 잘 모르겠다. 편집부를 분산 배치한 것 이외에 부 중심제를 이름만 에디터제로 바꾼 것 같은 느낌이 지배적이다.”(<한겨레> A기자) “편집장에게 전권을 주어서 책임감과 사내의 경쟁 관계를 유도하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실제로 편집장이 그런 권한을 갖지 못했다.”(<한겨레> B기자) “에디터제 말 자체는 좋다. 그러나 준비부족 때문인지 확실히 정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성공하는 제도가 되려면 거기에 맞는 권한과 실력이 있어야 한다.”(<중앙일보> A기자) “부국장에서 에디터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실제로 바뀐 것은 거의 없다.”(<중앙일보> B기자)

요약하면, 에디터제도가 껍데기만 요란했다는 평이다.

잊을 수 없는 살풍경

남재일 박사의 연구는 10년 전이다. 그 뒤엔 에디터제도가 뿌리를 내렸을까? <한겨레>에서 일하는 나는 2011년 3월부터 문화스포츠 에디터로 일했는데, 그해 10월 회사 노동조합 미디어팀이 작성한 문건인 ‘한겨레 콘텐츠 생산과정의 문제와 그 개선점’을 보면 다음과 같은 제목이 눈에 띈다. “현행 에디터제는 시급히 수술해야 한다.” 환부가 얼마나 위중하기에 수술까지 해야 한다는 말인가. 당시 에디터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한겨레 편집국에서 가장 핫한 이슈였다. 정치사회 에디터, 국제경제 에디터, 문화스포츠 에디터 등은 편집국 편재상 각 취재부서장과 편집팀장 위에 놓였지만 이들을 이끌며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힘은 없었다. 당시 회사가 마련한 에디터제 시행세칙에 따르면 각 에디터는 취재부서장과 지면의 출고계획을 ‘협의’하고, 산하 편집팀장 및 편집기자를 ‘지휘’함으로써 관할 지면의 제작과정을 전체적으로 ‘관리’하기로 돼 있었다. 협의·지휘·관리, 이 세 단어는 모호하다. “편집팀장을 지휘한다”는 규정이 개중엔 가장 명확해 보이지만, 지휘의 내용은 적시되지 않았다. 게다가 편집팀장은 에디터의 지휘권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잊을 수 없는 살풍경이 떠오른다. 편집국 인사 직후였던 2011년 5월경 편집국장은 에디터들과 편집팀장들끼리 이해도를 높이고 거리감을 좁혀보라며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그날 몇몇 에디터와 편집팀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언쟁을 벌였다. 에디터가 편집팀을 ‘지휘’하는 문제에 관해 편집팀장들의 거부감은 컸다. 편집팀 입장에선 독립부서로 존재해온 자신들의 오랜 전통을 훼손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편집 경험이 없는 대다수 에디터(나 역시 일간신문 편집팀에 적을 둔 적은 없다)가 편집팀을 지휘할 자격 또는 전문성이 있느냐고 따졌던 것 같다. 에디터들을 ‘취재 쪽 사람’이라 여기는 듯했다. 상호간의 격론은 상승작용을 일으켰고, 마침내 수위를 높이더니 고성과 삿대질로 이어졌다. 음식과 술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자리가 파할 때까지 훈훈한 덕담은 거의 오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편집국장은 처음엔 설전을 중재하려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역할분담이 명쾌하지 않은 제도 아래서 에디터와 편집팀장 모두 피해자였다.

다행히도 그 자리에서 문화스포츠 에디터였던 나와 해당 편집팀장이었던 후배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갈등의 여지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이미 그 후배는 장문의 긴 항의 이메일을 나에게 보낸 터였다. 제목에 관해 참견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미 피차 많은 말을 섞었고, 개인적 설득을 통한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체념하였기에 굳이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더 보탤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에디터와 취재부서장 사이는 어땠을까. 평화로운 편이었지만 분명한 관계 정립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앞에서 언급한 2011년 10월의 노동조합 문건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회사는 지난 5월 1일 에디터가 취재부장을 상대로 업무 ‘협의’를 한다는 것을 뼈대로 한 ‘에디터제 시행세칙’을 내놓으면서 사실상 취재부서에 대한 에디터의 권한을 무력화시켰다. 그에 따라 현재 에디터들의 역할은 크게 축소돼 애초 기대했던 취재와 편집 그리고 취재부서 사이의 의견 조율이라는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에디터제를 정착시키려면 에디터 시행세칙을 개정해 에디터들이 실질적으로 지면에 대한 최종 책임을 지는 쪽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하고, 그게 아니라면 하루빨리 이 제도를 포기하고 다시 부국장제로 돌아가야 한다.”

▲ 에디터제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취재와 편집이 결합된 상태에서 두 분야를 통합 관리하며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 위키피디아

<한겨레>는 2015년 10월부터 기사출고 권한을 지닌 부서장들에게 에디터라는 이름을 주었다. 각 에디터는 지면 기사는 물론 디지털 기사의 출고까지 맡는다. 편집팀은 그 안에 속해 있지 않다. 에디터제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취재와 편집이 결합된 상태에서 두 분야를 통합 관리하며 권한을 행사해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보자면 현 에디터제 역시 여전히 치명적 한계를 안고 있다.

편집장은 개뿔…

개인적으로는 에디터제의 명백한 한계가 다른 길을 꿈꾸게 했다. 에디터는 결국 편집장이라는데, 편집장은 개뿔… 그 이전엔 <한겨레21>과 <씨네21>과 <esc> 등 자기 완결성을 가진 조직에서만 일을 해보았기에 2011년 무기력하기만 했던 문화스포츠 에디터 역할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하루하루가 지루했다. 나는 토요판이라는, 미지의 신천지로 눈을 돌렸다. 만약에 토요판팀이라는 걸 만들면 취재·편집·사진·디자인이 유기적으로 하나가 될 것 같았다. 에디터 일도 기존과 다를 것이었다.

다시 어머니의 질문을 떠올려본다. “에디터가 무슨 뜻이니?” 이렇게 글도 썼으니 다음엔 상세하게 설명을 드려야겠다. “에디터는 편집자라는 뜻인데 좀 복잡하죠. 제목을 뽑거나 지면 따위를 만드는 일도 하지만 무수한 기삿거리 중에 무엇을 쓸지 취사선택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게 편집자의 본령이에요. 라이센스 잡지에서 일선 기자를 에디터로 부르거나 일간신문이 에디터 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그런 근본적 역할을 강조하려는 뜻일 거예요.” 한데 또 이런 답이 되돌아올 것만 같다. “뭔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먹겠구나.”


고경태. 한겨레 편집국 신문부문장. <유혹하는 에디터>에서 <1968년 2월 12일>까지 4권의 책을 썼다. 2009년에 낸 <유혹하는 에디터>가 편집자를 다뤘다면, 2016년의 이 연재물은 편집장 이야기다. <한겨레21> 편집장, <씨네21> 편집장, esc 팀장,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문화스포츠 에디터, 토요판 에디터 시절의 에피소드로 버무릴 예정이다. 격주 연재.  

편집 : 유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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