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역사란 무엇인가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1학기에 개설되는 인문교양수업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담당교수 김문환)].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한 서양 문명사 강의가 펼쳐집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 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 강민혜 기자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의 재상 상앙은 변법(變法)을 통해 혁명적 개혁을 이뤄냈다. 변법은 단순한 법령의 개정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망라하는 혁신이다. 진나라는 변법 개혁 이후 오랑캐 문화와 풍속을 탈피해 남녀를 구분했고, 같은 집에 거주하던 여러 세대를 분리했다. 이에 따라 노동력과 병역 자원의 효율적 확보가 가능해졌다.

상앙의 개혁은 계속됐다. 귀족의 토지세습특권을 축소하는 한편, 백성들에겐 토지소유와 매매의 권리를 나눠주었다. 법과 상벌의 엄격한 집행을 위해 백성 간 상호 감시 체제도 세웠다. 군현제와 관료제를 시행해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를 다졌다. 반대파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상앙이 제시한 변법은 세상을 바꿔놓았다. 약소국이었던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발돋움시켰고, 장차 천하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 역사에서도 상앙과 비슷한 개혁가와 만난다.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세운 정도전이다. 그는 민본 위주의 정치체제를 만들어 강력한 개혁을 밀어붙였다. 정도전의 개혁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전혁파와 토지개혁 단행이다. 권문세족의 토지를 몰수해 나라의 공전과 균전을 확대했다. 귀족이 아닌 국가와 백성 소유의 토지를 늘렸다.

부국강병을 꿈꿨던 정도전은 병제개혁에도 손을 댔다. 귀족과 종친이 보유한 군대를 중앙정부군으로 편입해 강력한 중앙집권을 꾀했다. 사병혁파에 반발한 이방원의 칼 앞에 목숨을 잃었지만, 훗날 그는 고종으로부터 건국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상앙과 정도전의 개혁은 유사하다. 하지만 그사이엔 1,700여 년의 간격이 있다. 시간을 뛰어넘은 역사의 순환과 반복이 경이롭다.

▲ 로마시대 4세기 초 모자이크. 이탈리아 시칠리아 피아짜아르메리나 카살레 빌라. © 김문환

2,000년 전, 로마시대의 여성들이 즐겨 입은 비키니의 존재도 그렇다. 이탈리아 시칠리에 있는 4세기 로마 저택 '카살레 로마 빌라(Villa Romana del Casale)'에 가면 속칭 '비키니 소녀들'이라 불리는 모자이크가 탐방객을 맞는다. 모자이크 속 여성들이 입은 공놀이 의상은 ‘스트로피움’과 ‘수블리가쿨룸’이다. 이름은 생소하지만 형태는 전혀 낯설지 않다. 여름철, 바닷가에 등장하는 비키니 수영복과 매우 흡사하다. 오히려 더 세련된 느낌을 준다.

비키니는 1946년 프랑스의 디자이너 루이 레아르(Louis Reard) 손에서 다시 태어났다. 당시 비키니의 등장은 세상을 혼란과 논란에 빠트렸다.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이나 미국의 수영복 형태는 발목까지 가리는 치마였다. 몸을 노출하는 것은 외설이었다. 때문에 로마 교황청에서는 비키니를 ‘부도덕한 의상’이라며 비난했고, 이탈리아, 스페인에서는 착용금지조치를 내렸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들이 로마시대 비키니의 존재를 알았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비키니에 대한 처우가 조금은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키케로는 <De Oratore>에서 “역사는 시간의 흐름을 증언하는 증언이며, 진실의 빛이며, 기억의 생명이고, 과거의 소식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고 미래를 예견하는 기록이다. 로마시대 공놀이 의상 ‘스트로피움’과 ‘수블리가쿨룸’은 자신을 표현하는 패션아이템인 비키니로 다시 태어났다. 순환과 반복을 통해 역사는 진보한다. 그리고 미래를 비춘다.

영국의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고 탄생하기 때문에 역사는 죽은 기록이 아니다.


편집 :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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